배우 이수경

배우 이수경 ⓒ 이정민


'무서운 신인'이 나타났다. 해묵은 표현이지만 이 말을 다시 꺼내야겠다. tvN <호구의 사랑> 출연진이 공개됐을 때, 순진한 강호구(최우식 분)와 달리 연애에 능숙하고 계산이 빠른 쌍둥이 동생 강호경 역을 맡았다는 '이수경'이라는 배우는 낯설었다. 알고 보니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신인이었고, 심지어 <호구의 사랑>이 첫 드라마 출연작이라 했다.

강호경 역을 찾기 위한 오디션은 4차까지 이어진 데다, 많은 신인 배우들이 몰려들었다. 이 모든 과정을 통과한 그를 두고 많은 관계자는 방송 전부터 '만만치 않은 실력을 지녔더라'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풍문처럼 떠돌던 그의 실체를 확인한 뒤, 반가움은 커졌다. 드라마가 끝난 뒤 만난 이수경은 "호경의 활발한 성격은 평소 밝을 때 내 모습과 비슷했다"며 "집에서의 모습은 특히 실제와 비슷했다"고 했다.

"사실 바깥에서의 호경이는 굉장히 여성스럽고 성숙한 모습이어야 해서 제가 연기하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제 나이가 아직은 어리다 보니, 촬영에 들어가기 전 가장 큰 고민을 했던 것도 바로 이 부분이었죠. 하지만 표민수 PD님께서 '네가 그 캐릭터가 되지 말고 너의 모습을 그 캐릭터에 빌려 오라'는 말씀을 해주신 게 많은 도움이 됐어요."

"'호구의 사랑', 나에겐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작품으로 남을 것"

 배우 이수경

"올해는 운전 면허를 따볼까 해요. <호구의 사랑>에서 운전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전 면허가 없어 핸들 위에 손만 올려놓고 있었거든요. 그러고 보니 드라마로 배운 게 많네요. 무술 신도 사실 대본상에선 그리 거창하지 않았는데 무술 감독님께서 엄청 멋있게 짜 와주셔서 여섯 시간 동안 촬영했거든요. 그러면서 무술도 배웠고, 자전거도 원래 못 탔는데 촬영 때문에 이틀 만에 배웠어요." ⓒ 이정민


이 같은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강호경은 그가 잘 소화해 내야 하는 인물이 됐다.

그래서 그는 <호구의 사랑>을 준비하고 촬영하는 내내 강호경을 머릿속에 뛰어 놀게 했다. 혼자 길에서 누군가의 옷차림을 보며 강호경의 외양을 상상하고, 대본을 읽곤 강호경의 동작과 표정을 떠올리며 웃음이 터지길 여러 차례. "특히 집에서 판소리를 하고 랩을 하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는 그는 "모든 스태프가 '어떻게 하면 더 웃길 수 있을까' 하며 소품을 챙겨 주더라. 끝나곤 다들 빵 터졌다"고 했다. "누구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무한 매력의 소유자" 강호경은 그렇게 완성됐다.

변강철(임슬옹 분)에 대한 마음을 두고도 이수경은 "나라면 그 정도의 용기가 없어 못 했을 것"이라면서도 "호경의 사랑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역할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었다면 어려웠을 일이다.

이를 두고 "과거 강철에게 상처를 받고 '여자'가 되기로 결심했을 텐데, 그 과정에서 그에게 복수하고 싶다가도 다시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을 거다. 아마도 항상 남자를 만날 때마다 그를 생각했을 것"이라는 그는 "그동안 오빠를 비롯해 남들만 많이 챙겨줬던 호경이었으니 앞으로는 변강철과 행복하게, 스스로의 삶을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로 강호경의 행복을 빌었다.

"<호구의 사랑>은 저에겐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작품으로 남을 거예요.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어 (<호구의 사랑>으로) 첫 사회생활을 한 셈이니까요. 또 그동안 제가 제 나이 또래보다 훨씬 성숙하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도 확실히 알게 됐어요. '성숙'의 '성'자도 모르는 거였더라고요. (웃음)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나 많은 걸 배웠어요. 좋은 배우가 되는 건 물론이고, 그들처럼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작품이죠."

"나를 억지로 캐릭터에 끼워 맞추지 않는 개성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배우 이수경

"사실 낯을 가리는 성격 탓에 쉽게 사람들 속에 못섞일 때도 있어요. 나와 비슷한 분들을 보면서도 '내가 챙겨주는 게 자존심 상하는 일일 수도 있어'라는 생각에 선뜻 나서지도 못하고요. 그런데 이번에 좋은 사람들을 만나 잘 섞여 가면서 많은 걸 느꼈어요. 이 사람들이 처음에 날 챙겨줬던 것처럼, 저도 나중엔 다른 사람들을 잘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요." ⓒ 이정민


이수경은 사실 '덕후'(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을 이르는 일본말 '오타쿠'를 한국식으로 표현할 때 쓰는 인터넷 조어-기자 주)다. 영화나 각종 만화를 섭렵하는 것은 물론, 애니메이션 <디지몬> 시리즈를 좋아해 몇 편은 꼭 1년에 다섯 번씩 보면서도 "볼 때마다 새롭다"고 말하고, <이누야샤>를 두고는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내용이 담긴 이야기"라고 눈을 빛낼 정도다. <호구의 사랑> 오디션 때 "심사하는 분들 중 단 한 명만 누군지 알아챈" <디지몬> 캐릭터 성대모사를 개인기라며 선보였다는 일화에는 절로 웃음도 난다.

'덕후'는 한 번 '입덕'(특정 대상이나 인물에 빠지게 된다는 뜻의 인터넷 조어-기자 주)하면 그 애정이 쉬이 식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수경은 연기적으로도 훌륭한 덕후다.

중학교 2학년 때 연기를 접했지만, 워낙 낯을 가리는 성격인지라 처음엔 "안녕하세요"의 '안'자도 꺼내지 못해 한 시간을 아무 것도 못 하고 서 있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점점 이런 자신의 모습에 오기가 생겼다. "어느 날 한 번 대사를 뱉었는데 속이 다 시원했"고, 그 뒤로 연기는 그가 무섭게 집중할 만한 대상이 됐다.

그 결과가 <호구의 사랑>과 영화 <차이나타운>을 데뷔 첫 해에 해낸 것이다. 특히 <차이나타운> 속 붉은 머리의 쏭은 <호구의 사랑> 강호경과는 정반대 지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내 어두운 모습이 쏭 속에 있고, 그 중간 어디쯤에 진짜 내가 있을 것"이라는 그는 "올해 누가 봐도 매력 있는 캐릭터를 연기하게 되면서 덕을 본 것 같다"고 웃었다.

이어 "좋은 캐릭터들을 너무 처음에 만나서 앞으로 '이보다 좋은 캐릭터를 만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는 그는 그러면서도 "(좋은 캐릭터를) 만나지 못한다 해도 난 잘 해낼 거다"라며 굳은 각오를 내비쳤다. 그런 이수경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나를 억지로 캐릭터에 끼워 맞추지 않는, 나를 캐릭터로 승화시킬 수 있는 진짜 개성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거였다. 다시 한 번, '무서운 신인'이 나타났다. 

이수경 호구의 사랑 차이나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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