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재윤

배우 이재윤 ⓒ 이정민


"굉장히 만족스러운 작품과 역할이었다"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그동안 '폭행과 살인 등 극악무도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삼류 인생'(SBS <야왕>), '승부사적 기질과 냉철한 두뇌로 무장한 엘리트 경찰'(JTBC <무정도시>), '비정한 겉모습과 달리 사랑하는 동생들에겐 한없이 너른 마음을 가진 속 깊은 남자'(MBC <황금무지개>) 등 이재윤이 연기했던 역할은 주로 남성성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tvN <하트 투 하트> 속 그의 얼굴에는 따뜻함과 섬세함이 더해졌다. 그가 맡은 장두수 형사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남과 얼굴을 맞대는 것을 극도로 어려워한다는 점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배려하는 남자다. 일부러 종이컵을 잔뜩 쌓아 그 앞에 벽을 만들어 주고, 친하게 지내는 형에게 사정해 가게 하나를 통째로 비우기도 한다. "늘 무게를 짊어지고 가는 사람을 연기했는데 이번엔 좀 달랐다"는 그는 "좀 더 나다운, 편안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평했다.

여기에는 "넓은 들판에서 뛰노는 양 한 마리 같은, 혹은 장난감 가게에 들어선 아이 같은" 느낌을 전해 준 촬영장의 분위기가 큰 몫을 했다. "원래 촬영장에선 카메라나 조명의 위치를 알고 움직여야 하고, 상대 배우와 서로 음향이 맞물리면 안 되는 등 어느 정도 제약이 있는 게 사실"이라는 이재윤은 "하지만 그러다 보면 연기가 자연스럽지 않을 때가 있기도 했는데 이번 이윤정 PD님은 그런 모든 것에 신경 쓰지 말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물론 주어진 상황과 대사가 있지만, 촬영할 때마다 매번 다르게 접근해 보라고 주문하셨죠. 정답은 없지만 늘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게 이윤정 PD님의 스타일이었어요. 그게 참 좋았어요. 그런 말을 들어본 것도 처음이었으니까요. (웃음) 실제로 매 테이크마다 호흡이나 표정 같은 것들이 달라지는데, 그러면서 새로운 게 나온다는 걸 경험했어요. 즉흥적으로 장면이 탄생할 때 큰 쾌감을 느꼈죠."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건 '모든 사람이 완벽할 순 없다'는 것"

 배우 이재윤

ⓒ 이정민


 배우 이재윤

"드라마 방영 중 제 모습을 보고 '대형견 같다'는 분들도 있었어요. 이윤정 PD님께서 그 얘기를 들으시곤 '푸하하' 웃으시더라고요. (웃음) 사실 옛날부터 곰 같다거나 대형견 같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무정도시> 때는 '성난 황소 같다'는 이야기도 들었죠. 거기서 '대형견'이면...(크기가) 많이 축소된 거네요. 마음에 들어요. (웃음)" ⓒ 이정민


자연스럽게 실제 이재윤과 장두수가 겹치는 지점도 생겨났다. 자신 앞에서 주저앉는 차홍도(최강희 분)를 따라 앉는 장면은 그의 과거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고세로(안소희 분)의 연이은 문자에 괴로운 듯 얼굴을 찌푸리는 장면도 실제 그의 표정이 묻어난 것이다. 특히 양 형사(김기방 분)와의 장면은 그가 "매 순간 다 나였다"고 말할 정도다.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평소의 모습을 포장 없이 내보이게 되더라"는 그의 표정에서 다시 한 번 작품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동시에 자신과 그 주변에 대한 이해도 넓어졌다. 자신을 구해 준 장두수를 위해 7년 동안 묵묵히 반찬을 챙겨 준 차홍도, 그리고 그 모든 배려가 사랑임을 모른 채 '눈치 없이' 받기만 했던 장두수에게선 자신을 아껴 주는 팬들이 떠올랐다고. "처음 장두수는 사랑에 서투른 사람이라 상대방이 자신을 그렇게까지 사랑한다는 걸 몰랐을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는 그는 "팬들에게도 나중의 장두수처럼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해 주고 감사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연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건 '모든 사람이 완벽할 순 없다'는 거였죠. 빈틈이 있는 사람,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게 세상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장두수가 홍도를 계속 밖으로 끄집어내려 했을 거예요. 그 장롱 같은 집 속에 숨어 세상 사람들과 맞서가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을 끌어내려 했던 건, '모두가 완벽하지 않으니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어서였다고요.

누구든 자신에 대해 100% 만족하며 사는 건 쉽지 않아요. 저도 나름대로 고민을 하고, 자격지심을 느끼는 부분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메시지 덕분에 <하트 투 하트>를 '힐링 드라마'라고 부를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서로 위로받았던 극중 인물들처럼, 촬영장도 서로 존중하며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덕분에 치유 받을 수 있었죠. 사실 무시당하는 것만큼 싫은 게 없잖아요. 어디서든 인정받고 싶은 게 특히 배우의 마음이니까요. (웃음)"

"'하트 투 하트'서 얻은 무기, 다음 작품서 써먹어야지"

 배우 이재윤

"제 애완견 '구마'는 유기견이었어요. 처음 보호소에 보냈는데 15일 내로 입양이 안 되면 안락사된다기에 제가 다시 데려왔요. 그 뒤로 6년쯤 됐는데...가끔 미안해요. 생일을 모르니 챙겨주기도 어렵고, 촬영하다 외박을 해야 할 땐 혼자 둬야 하니까요." ⓒ 이정민


덕분에 <하트 투 하트>는 이재윤에게 하나의 터닝 포인트로 기억될 만한 작품으로 남았다. "연기적인 발전이 컸다"는 그는 "이번 드라마를 통해 나도 몰랐던 스스로의 가능성을 많이 알게 됐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이윤정 PD님이 내 속에 있던 어떤 상자를 열어 주셨고 그걸 들여다보게 된 것 같다"고 털어놨다.

지금 그는 '다음'을 기다리는 중이다. "다음 작품으로 인연이 되는 사람들은 또 누굴까 설렌다"는 그는 "여기서 얻은 무기를 다음 작품에서 새롭게 사용할 수 있겠다 싶다"며 "물론 '또 잘해낼 수 있을까, 내가 이곳에서 배운 걸 써먹을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들지만 촬영을 모두 마치기 전 (최)강희 누나에게 '어딜 가도 또 좋은 걸 찾아내 배울 수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들은 것이 큰 위안이 됐다"고 덧붙였다.

"이걸 시작으로 올해 또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요. 단순히 또 다른 저의 모습을 보여 드리는 데 그치지 않고 제가 좀 더 느끼고 배울 수 있는, 성취감을 느끼는 기회가 있었으면 해요. 늘 '더 잘 할 걸'하는 아쉬움은 남죠. 하지만 그런 마음을 덜 가질수록 더 좋은 모습이 나오는 거라는 생각도 하게 됐어요. 운동도 경직된 상태에서 하면 더 좋지 않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배우인 이소룡의 말인데, 어디에 담아도 그 모양이 되는 물과 같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이재윤 하트 투 하트 야왕 무정도시 황금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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