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간신>의 포스터

영화 <간신>의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사극의 시대가 저물 줄 모른다. 지난 2012년 9월에 개봉한 추창민 감독의 <광해, 왕이 된 남자>가 CJ CGV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1000만 관객을 달성한 이래 지난 3년은 사극의 시대라 불러도 좋을 시기였다. 2013년 가을 개봉한 한재림 감독의 <관상>이 흥행의 바통을 이어받더니 대한민국의 모든 영화제작사가 사극 제작에 뛰어든다는 풍문이 나돌 정도의 열풍이 불었으니 말이다.

그 결과로 2014년 <조선미녀삼총사>부터 <역린> <군도> <명량> <해적> <상의원> 등이 쏟아졌고 그중에서 CJ엔터테인먼트의 <명량>과 롯데엔터테인먼트의 <해적>이 돋보이는 성적을 거뒀다. 2015년에는 일찌감치 <조선명탐정 : 사라진 놉의 딸>과 <순수의 시대>가, 이달에는 민규동 감독의 <간신>이 개봉했다.

그뿐만 아니다. <협녀, 칼의 기억> <사도> <도리화가> 등 주목받는 사극이 줄을 이어 대기 중이다. 2012년 <광해, 왕이 된 남자>, 2013년 <관상>, 2014년 <명량>에 이어 2015년에는 어느 영화가 왕좌를 차지할지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간신>, 민규동 감독과 롯데엔터테인먼트의 회심의 카드

 <간신>에서 단희 역을 맡아 농도 짙은 연기를 펼친 임지연

<간신>에서 단희 역을 맡아 농도 짙은 연기를 펼친 임지연 ⓒ 롯데엔터테인먼트


민규동 감독의 <간신>은 롯데엔터테인먼트가 꺼내 든 회심의 카드다. 지난 2014년 친구들의 우정과 파멸을 다룬 누아르 영화 <좋은 친구들>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주지훈과 절치부심의 마음으로 작품을 선택했을 김강우, <인간중독>을 통해 강렬하게 데뷔한 임지연 등이 함께 출연한다.

더불어 <봄>을 통해 2014 밀라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이유영과 뮤지컬 <드림걸즈>에서 활약하는 차지연, 언제나 안정된 연기를 펼치는 천호진 등이 조연으로 자리 잡아 무게를 더한다. 2005년 옴니버스 영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과 2012년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민규동 감독이 의외의 장르를 선택했다는 점도 볼거리다.

<간신>은 사극의 배경으로 인기 있는 시대 중 하나인 연산군 시절을 다룬다. 연산군 11년, 각지의 미녀를 색출해 궁으로 들이기 위한 채홍사라는 기관이 운영되었다는 사료를 토대로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감독은 이 이야기가 전국에서 1만 명가량의 처녀를 궁으로 끌고 온 희대의 사건임에도 그간 영화의 소재로 쓰이지 않았던 점에 주목했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당대 최고의 간신인 임사홍, 임숭재 부자를 주요한 캐릭터로 등장시키고 극적 재미를 위해 상상력을 가미했다.

영화는 기존 연산군 시대를 다룬 사극과 조금쯤 궤를 달리한다. 기존 사극이 비틀린 분노와 욕망, 두려움 등 연산군의 내면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영화는 시야를 넓혀 그를 둘러싼 신하와 몇몇 인물의 내면에까지 관심을 둔다. 더불어 권력의 향배뿐 아니라 채홍사에 의해 궁으로 들어온 여인들이 방중술 등을 겨루는 과정을 마치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흥미롭게 그려낸다. <간신>은 전형적인 상업영화로써 주제의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보다 흥미 위주의 구성과 연출에 집중하고 있다.

역사극을 가장한 치정극, <순수의 시대> 시즌2?

 <간신>에서 도전적인 역할을 맡아 대비되는 성취를 보인 김강우와 주지훈

<간신>에서 도전적인 역할을 맡아 대비되는 성취를 보인 김강우와 주지훈 ⓒ 롯데엔터테인먼트


사실 영화가 그려내는 캐릭터는 그리 새롭지 않다. 임사홍과 임숭재 부자의 갈등, 연산군의 왜곡된 내면, 음모와 사랑 등이 복잡하게 그려지지만 심도 깊은 해석이나 참신한 연기가 이뤄지지 못해 별다른 감흥은 없다. 특히 중반 이후에는 임숭재와 단희 사이의 비극적 사랑으로 서사의 중심이 급격하게 기운다. 이때문에 지난 3월 개봉한 <순수의 시대>와 같이 역사극을 가장한 치정극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펼쳐놓은 이야기를 수습하는데 실패한 상태에서 남녀의 감정에 기대어 영화를 갈무리한 것은 무책임한 선택이다.

기대를 모은 김강우의 연산군 연기는 실망스럽다. 외로움에서 배어나는 잔혹하고 무절제한 성정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관객을 압도하거나 공감하게 하는 데 실패했다. 임지연, 이유영, 차지연 등 여성 트리오도 실망스러운 모습으로 일관했다. 다른 작품에선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옛말대로 졸장 아래 강병 없는 법이다. 이들은 지극히 제한적인 역할 안에서 역량을 펼칠 기회를 잡지 못했다.

반면 주지훈은 러닝타임 전반에서 빛났다. 그는 <좋은 친구들>에 이어 <간신>에서 전보다 한층 깊어진 연기력을 과시했다. 그가 없었다면 영화는 자극적이기만 한 싸구려 치정극이라는 평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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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엄과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간직하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 팟캐스트 '김성호의 블랙리스트' 진행 / 인스타 @blly_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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