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왕 위의 왕 : 간신>에서 최악의 간신 임숭재 역의 배우 주지훈이 12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왕 위의 왕 : 간신>에서 최악의 간신 임숭재 역의 배우 주지훈이 12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위인이 아닌 간신이 주인공인 영화에서 주지훈은 희대의 간신이 됐다. 이미 역사의 심판을 받아 영영 손가락질 받는 간신, 왕을 홀리고 백성을 괴롭힌 그 인물이 된 심정이 어땠을까. 민규동 감독의 신작 <간신>에서 임숭재 역을 맡은 주지훈의 변이 궁금했다. 지난 12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우선 이번 작품에 주지훈은 단단히 코가 꿰인 격이다. 민규동 감독의 전작 <결혼전야> 촬영 때 다음 작품도 함께 하자는 말에 흔쾌히 응했다. "시나리오를 보고 결정했어야 했다"며 주지훈이 무릎을 쳤다. 역할이 난해한 것도 있었지만, 전체 중 약 90프로 이상의 화면에 나와야 했을 정도로 빡빡한 촬영 일정 때문이었다. 그래도 해내야 했다.

관계의 고통 느끼며 간신 임숭재가 변했다

민규동 감독은 <간신>을 임숭재의 시선으로 담고자 했다. 연산군(김강우 분) 곁에서 온갖 아첨을 하며, 채홍사에 전국의 미인을 모아다 놓고 왕의 노리개로 만드는 등 악행을 일삼지만 돌연 영화 후반부에서는 왕의 반대편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간신 임숭재와 속죄 의지를 보이며 홀연히 궁에서 사라지는 임숭재 사이의 간극을 주지훈이 채워야 했다.

"채홍사에 들어온 단희(임지연 분)와의 멜로는 많이 뺐다. 임숭재가 독립투사는 아니잖나. 감독님이 사랑 하나에 사람이 변하기엔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거 같다. 대신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강화했다. 간신이었던 아버지가 가족을 등지는 모습에 정의가 무너지는 걸 봤고, 간신 체제에 순응해야 했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싫었겠나. 그게 작은 불씨였다. 그게 점점 커지며 숭재도 변하는 거라고 해석했다. 간신이라고 하지만 임숭재 입장에선 충신일 수 있다. 전쟁도 곧 이데올로기 싸움이잖나. 영화에선 왕이 잘못된 길 갈 때 직언하는 게 충신이냐, 순종하는 게 충신이냐 묻는데 그걸 분명히 가를 기준은 없을 거다."

 영화<왕 위의 왕 : 간신>에서 최악의 간신 임숭재 역의 배우 주지훈이 12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역사에서 명멸했던 수많은 간신들이 있었지만 주지훈은 애써 참고하진 않았다. 그저 민규동 감독이 추천한 책만 봤을 뿐이다. "감독님이 내 지적 수준에 맞춰 '만화 조선왕조실록'을 권했다"며 그가 웃었다. 주지훈은 "인물들의 미묘한 심리 묘사도 중요했지만, 그 어떤 작품보다도 세밀했던 감독님의 연출과 카메라 움직임도 봐 달라"고 관전 포인트를 짚었다.

불가능해 보였던 지시도 민규동 감독 때문에 해내게 됐단다. 예를 들면, '말을 타고 가는데 고개를 흔들지 말라' 같은 거다. "커피에서 오렌지 맛이 나게 해달라는 주문이잖나"라며 주지훈은 취재진에게 농담조로 하소연했지만 그만큼 영화에 전부를 걸었던 감독과 배우의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영화의 의미는 반성케 하는 것 "내 몸에 맞는 옷 항상 꿈꾼다"

주지훈에게 <간신>이 사극 첫 경험은 아니다. 2년 전 <나는 왕이로소이다>의 기억을 물으니 "별로 접점이 없다"며 "그건 스포츠카고 이건 승용차 같은 것"이라 비유했다. 전혀 다른 느낌으로 임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작품에 임하는 마음 자세는 같다. "장르를 불문하고 영화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메시지를 만드는 이유는 어찌됐든 반성하게 하자는 의미가 큰 거 같다"고 그가 덧붙였다.

"다들 세상을 자기 눈으로 본다. <간신>에 출연해서인지 부쩍 요즘 세대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한국은 전쟁세대와 전후세대가 함께 살고 있잖나. 모두가 밝은 사회, 불법 없는 사회를 꿈꾸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다. 서로 욕하기도 하는데 이런 작품 등을 통해 과거든 미래든 제대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영화는 내겐 성장기 같다. 전에 출연했던 영화 <좋은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나쁜 짓이긴 한데 당신이 그 상황에 몰리면 어떻게 할 건데?'라고 묻잖나. 욕망과 인간관계의 괴리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거 같다. 도덕과 미덕인 걸 알면서도 가끔 실천하기 싫을 때 있잖나. 영화가 그런 지점들을 표현하는 거지."

 영화<왕 위의 왕 : 간신>에서 최악의 간신 임숭재 역의 배우 주지훈이 12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어느 순간 주지훈에게 '모델 출신'(2003년까지 톱모델로 활동하다 2004년 시트콤 <압구정 종갓집>부터 연기 시작-기자 주)이라는 수식어가 사라졌다. 매 작품 성장한 모습을 보여서일까. "자기 몸에 맞는 옷을 잘 취해서 입는 게 진짜 멋인 거 같다"며 "노인 분들의 정장이 멋있어 보이는 이유는 그분들이 자신에게 맞는 옷이 뭔지를 오랜 시간의 경험으로 알아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배우인 만큼 자신에게 맞을 만한 역할을 잘 해나가겠다는 말이다.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는 원 안에 다 들어가지 못하고 한 발만 얹은 거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작품 수를 늘리는데 어느 순간 현장이 좋더라. 그렇다고 힘들지 않은 건 아니다. 매번 연기의 쓴 맛을 본다. 그걸 견디면 한 단계 성장하더라. 이번에 다시 만난 민규동 감독님도 사실 쉽지 않은 분이다. 나에 대한 애정이 깊어서 힘든 주문을 하는 거라는데 그게 부모 같은 마음인 건가? 그 분을 겪었으니 또 성장할 거 같다(웃음)."

○ 편집ㅣ이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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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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