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틸 엘리스 포스터

스틸 엘리스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주)


루게릭 감독과 알츠하이머 주인공

줄리안 무어다. 그녀의 환한 웃음으로 시작한 영화는 다시 그녀의 환한 웃음으로 끝맺는다. 전체적으로도 그녀가 등장하지 않는 장면이 전체 영화를 통틀어 단 한 신(Scene)에 불과할 정도다. 철저하게 줄리안 무어에게 집중한 영화다.

이 영화를 통해 줄리안 무어는 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쥔다. 알츠하이머를 겪고 있는 어머니의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했다는 평이다. 수상소감을 통해 그녀는 알츠하이머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에게 그들이 '혼자가 아니며 우리가 함께 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정작 영화감독 리처드 글랫저는 그 자리에 함께 하지 못했다. 그는 당시 루게릭병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그는 영화가 촬영되는 동안 혼자서 먹거나 옷을 입는 것조차도 불가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현장을 지켰다.

줄리안 무어는 수상소감에서 그런 그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그 부분이 수상소감에서 가장 감정적으로 격한 부분이기도 했다. 그리고 한 달 뒤 3월 10일 리처드 글랫저는 세상을 떠났다. 63세의 나이였고, 스틸 앨리스는 그렇게 그의 유작이 되었다.

죽어가던 감독 리처드 글랫저가 선택한 주인공은 알츠하이머로 인해 기억을 잃어가는 한 여성이었다. 죽음과 상실이 완벽히 같다곤 할 순 없지만 무언가를 잃어간다는 점에서 감독리처드 글랫저가 앨리스의 입을 빌렸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실제 삶과 아주 유사한 상황에 처한 극 주인공. 과연 리처드 글랫저는 줄리아 무어의 입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달하고 싶어했을까?

어머니가 전해준 운명 같은 나비 목걸이

 좌 줄리안 무어, 우 리처드 글랫저

좌 줄리안 무어, 우 리처드 글랫저 ⓒ 그린나래미디어(주)


앨리스는 콜럼비아 대학 언어학 교수다. 유능한 남편에 변호사와 의사로 잘 자라준 자식까지. 그녀는 성공했다. 다만 한 가지 흠이 있다면 막내딸이 배우를 하길 원한다는 것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그런 그녀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잘 세팅된 고급 레스토랑의 만찬 위로 그녀의 생일을 위한 샴페인 잔을 부딪친다. 성공적인 커리어와 화목한 가족들 그리고 자식들이 선물로 준 베이지 색 니트까지. 막내딸 리디아가 그 자리에 없을 뿐 앨리스는 행복하다.

하지만 정확히 10분 후. 영화 속 앨리스에게 불행이 찾아온다. 알츠하이머다. 그녀의 주치의는 앨리스에게 이제 잊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말한다. 그 고통과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감독은 앨리스에게 또 하나의 시련을 부가한다. 자신이 걸린 알츠하이머가 자식들에게 유전될 수도 있다는 것. 영화 시작 불과 15분 만에 앨리스는 만신창이가 된다. 더 이상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없을 것 같은 극단적 상황. 앨리스가 서럽게 운다.

보통의 영화였다면 이 지점에서 앨리스의 '정신 승리' 혹은 극단적인 상황을 이겨내는 '가족애'에 초점을 맞춰 극을 진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 리처드 글랫저는 차갑도록 침착하고 현실적이게 앨리스의 삶을 담아낸다.

경제적 이유 때문에 더 이상 아내와 함께 거주하기를 포기한 남편의 선택에서부터, 소변을 보러가는 도중 집 화장실이 어디인지 까먹어 바지에 소변을 보는 앨리스의 수치심까지. 영화는 신파적 드라마를 거부하고 한 신, 한 신 상실의 삶을 받아들이고 살아가고 있는 앨리스의 삶을 잔잔하게 그려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앨리스의 삶은 아름답다. 짧지만 그 삶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나비'처럼 말이다. 이것은 어쩌면 어렸을 적부터 내재된 앨리스의 운명일 수도 있다. 앨리스의 어머니가 어린 앨리스에게 나비 목걸이를 선물로 주었던 것처럼 앨리스는 알츠하이머라는 유전병을 어렸을 때부터 간직해 왔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엄마처럼 앨리스 역시 역설적인 '나비의 운명'을 아이들에게 선물해야 한다. 첫 번째 신(Scene)에서 아이들이 생일 선물로 준 베이지 색 니트를 처음 입고 출근 하던 날. 앨리스는 자식들에게 알츠하이머가 유전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리디아 vs. 앨리스, 그녀가 잊을 수 없었던 유일한 한 가지

 좌 크리스틴 스튜어트, 우 줄리안 무어

좌 크리스틴 스튜어트, 우 줄리안 무어 ⓒ 그린나래미디어(주)


리디아(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앨리스와 대척하는 인물이다. 앨리스가 '상실의 방향'이라면 리디아는 '생성의 방향'이다. 앨리스 가족이 리디아의 연극무대를 관람하는 신(Scene)은 이러한 대척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리디아가 무대 위에서 '위 머스트 워크(We must work)'를 외치며 생의 의지를 외칠 때, 안타깝게도 앨리스는 리디아를 앞에 두고 그녀가 자신의 막내딸이란 사실조차 잊어버린다.

이러한 이 둘의 대척 관계는 극을 이끄는 중요한 동력으로 사용된다. 그 둘이 따로 거주하는 LA와 뉴욕의 거리만큼, 둘의 성격도 삶의 위치도 다르다. 하지만 영화는 역설적이게도 정반대에 있는 두 사람의 봉합을 통해 영화의 결말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남편도 다른 자식들도 일 때문에 앨리스와 함께 살지 못할 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 곁을 지켜주는 건 그동안 떨어져 살고 있었던 리디아다. 앨리스 옆에서 산책하며 책을 읽어주며 시간을 보내는 리디아. 막내딸 리디아가 엄마 앨리스에게 책을 읽어준다.

이어진 두 사람의 대화, 영화의 첫 장면처럼 앨리스가 환하게 웃는다. 1시간 30분의 런닝 타임 동안 앨리스는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것을 잃는다. 가족도, 커리어도, 일상의 언어들까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앨리스가 잊지 않고 있었던 단 한 가지가 있었다. '사랑'이었다. 고(故) 리처드 글랫저 감독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어 했던 그것은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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