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훈 감독의 신작 <펑정지에는 펑정지에다>의 한 장면. 화면을 분할하는 기법을 사용했다.

민병훈 감독의 신작 <펑정지에는 펑정지에다>의 한 장면. 화면을 분할하는 기법을 사용했다. ⓒ 민병훈필름


영화 <포도나무를 베어라> <터치> <사랑이 이긴다> 등을 만든 민병훈 감독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신작 <펑정지에는 펑정지에다>를 공개했다. 펑정지에는 중국의 세계적인 화가다. 그의 도록만 해도 수천만 원에 달할 만큼 미술계에서 명성이 자자하다. 영화를 통해 도록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해보자는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 시작이었다.

<펑정지에는 펑정지에다>는 예술성과 실험성이 강하게 다가오는 영화다. 의자에 앉은 사람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나고, 얼굴을 감싼 베일을 풀어내는 순간 앞에 선 사람과 똑같은 얼굴이 드러난다. 마주 보는 두 사람은 어느 순간 젊은 남자와 여자로 바뀌기도 한다.

같은 공간에서 다르게 표현되는 세 사람은 때때로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무작정 어딘가를 걷고, 여성은 어느 순간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가까이 있는 것 같지만 존재하지 않는 듯하고 어딘가 존재하지만 나타나지 않는 그들의 모습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영화 속 그림과 풍경은 전시회를 연상케 하고, 대사가 거의 없이 이어지는 전개는 효과음과 표정으로 내면의 심리를 묘사한다. 유명 화가의 그림이 주요하게 작용하는데, 말 없는 그림을 영상으로 해석한 독특한 작품이다. 예술에 대한 감독의 고민이 펑정지에라는 화가와 그의 그림을 통해 드러난다.

"문화 생명은 다양성인데, 상업 영화가 예술성 꺾어"

 전주국제영화제 <펑정지에는 펑정지에다>가 첫 상영된 지난 1일, 관객과 이야기를 나누는 민병훈 감독

전주국제영화제 <펑정지에는 펑정지에다>가 첫 상영된 지난 1일, 관객과 이야기를 나누는 민병훈 감독 ⓒ 전주국제영화제


<펑정지에는 펑정지에다>의 첫 상영이 있던 지난 1일, 민병훈 감독을 만나 영화 이야기를 들어봤다.

민 감독은 "제작 과정에서 '왜 이런 영화를 만드느냐?''질문을 받기도 했다"면서 "그럴 때마다 '왜 이런 영화를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하느냐'고 되물었다"고 말했다.

"사실 이런 질문이 놀랍기도 해요. 카메라를 통해서 이야기하는 게 영화의 어법인데, 영화가 산업과 관객을 쫓다 보니 고유한 본질을 잃어버린 거예요. 저는 이런 작품을 통해 풍요로운 터전이 생길 거라고 봤습니다."

민 감독은 흥행이 중시되는 상업 영화 중심의 환경에서 예술 영화의 설 자리가 좁아지는 것을 매섭게 비판했다.

"문화의 생명은 다양성이고 꽃 중의 꽃은 영화 예술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산업을 강조해요. 다양하고 실험적인 영화들이 있어야 하는데 감독들이 스스로 검열을 하는 것이죠. 결국 상업성을 위해서 예술성을 꺾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민 감독이 상업성보다는 예술성을 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는 상업 영화를 찍을 때보다 행복했다고 말했다. 지친 심신을 치유하는 기회였다는 것이다. 

"영화를 만드는 것이 노동으로 느껴지는데, 이런 영화를 만들며 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어요. 노동을 보상받는 느낌이랄까. 저를 위해 만든 영화라고 할 수도 있어요. 저도 위로를 받아야 하는데 상업영화를 통해서는 보상을 못 받았어요. 영화를 통해서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상업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영화가 좋은 영화"

 <펑정지에는 펑정지에다>가 처음으로 상영된 지난 1일, 관객과 대화하는 민병훈 감독과 주연배우인 중국의 유명 화가 펑정지에

<펑정지에는 펑정지에다>가 처음으로 상영된 지난 1일, 관객과 대화하는 민병훈 감독과 주연배우인 중국의 유명 화가 펑정지에 ⓒ 전주국제영화제


민 감독은 또 "영화 예술이라는 애초의 그림이 중요하고 그걸 찾고 있는 과정"이라며 영화의 역할을 이렇게 강조했다.  

"사람들의 마음이 메말라 있는데 예술인이 촉촉하게 적셔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전 따뜻한 영화를 만들어 위로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현실을 직시하게 해서 위로를 줘야 한다고 봐요. 진실한 영화와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거든요. 영화가 단비가 돼야 해요."

영화 예술이라는 단비를 위해 감독은 화가와 그림을 활용했다. 민 감독은 "영화에 나오는 세 명이 인물은 한 운명체로, 각각의 분신"이라고 설명했다. "펑정지에가 그린 그림의 여인이 살아 있는 것이고, 또 다른 분신으로서 다른 형태의 분신과 분신이 만나서 헤어진다"는 것이다.

"내가 어떤 드라마를 썼다면 남을 쓰는 것 같았는데 결국은 자기 이야기였다는 의미죠. 공간과 시공간에 또 다른 분신이 있었다는 시네마적인 경험도 바탕이 됐어요. 글로서 표현은 안 되는 것을 영상으로 표현한 겁니다."

민 감독은 전문 배우가 아닌 유명 화가가 주연을 맡아 어렵지 않았냐는 물음에 "감독을 존중해줘서 불편함이 없었다"고 말했다.

"어떤 장면을 주문하면 왜 그래야 하는지 묻지 않고 그대로 따라줬어요. 계속 걸으라고 하면 그대로 따라 하지 한 번도 토를 달지 않았죠. 아마도 좋은 예술가여서 감독을 신뢰한 것 같아요."

민 감독은 이어 "시나리오 없이 가서 백지상태에서 만들었다"면서 "중국까지 가서 촬영했느냐고 묻는 경우가 있는데, 예술에 국가나 경계가 어디 있고, 유명 예술가냐 아니냐도 큰 의미가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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