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내게 오나봐, 봄 향기가 보여'

SBS 수목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 OST '우연히 봄'이라는 노래의 가사 일부다. 노래 속 봄 향기처럼, 최무각(박유천 분)에게 '동생'이 왔다. 물론 지금은 '아는'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동생이다. 처음 그저 '아는 여자' 였던 관계는 이제 스며드는 향기처럼 '동생'에 방점이 찍혀간다.

최무각에게 동생이란 어떤 존재일까? 제주도에서 살던 시절, 수족관에 찾아와 상장을 자랑하던 동생 최은설(김소현 분)에게 최무각은 '아유, 내 새끼'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내가 오빠 자식이냐'고, '그래서야 장가는 가겠냐'고 핀잔을 주는 동생에게 최무각은 '너를 시집보내놓고, 나는 장가를 가든가 말든가' 하는 동생 바보였다. 아니, 그에게 동생은 정말 자식같은 존재였다.

그런 동생이 작은 상처로 간 응급실에서 비명횡사하고 말았다. 더 억울한 건 도대체 누가, 왜, 동생을 죽였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동생을 잃은 상실감에 잠도 잘 수 없었던 최무각은 며칠이고 잠을 못 이루며 괴로워하다 수족관에서 정신을 잃었고, 그 후유증으로 감각을 잃었다. 그리고 무능한 경찰이 원망스러웠던 최무각은 스스로 범인을 잡아죽이겠다며 경찰이 되었다.

'무감각남' 최무각, '초감각녀' 오초림을 만나다

 SBS <냄새를 보는 소녀> 5회의 한 장면

SBS <냄새를 보는 소녀> 5회의 한 장면 ⓒ SBS


그리고 3년이 흘러 최무각 앞에 어떤 여자가 나타났다. 동생을 살해한 범인에 대한 정보에 접근하기 위해 강력반에 들어가려 노심초사하던 그의 앞에 '수사를 도울 테니 만담을 해 달라'는 이상한 여자 오초림(신세경 분) 말이다. '이 여자야, 지금이 그럴 때니!'라며 힐난하던 최무각은 그녀의 냄새를 보는 능력이 범인을 잡는데 매우 탁월한 힌트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냥개처럼 그녀를 데리고 범죄 현장으로 향한다. 대신 만담 파트너를 해주기로 하고.

그렇게 쌍방간의 이해 관계로 만났던 두 사람의 마음이 5회에 들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첫 만남부터 자신을 질주하는 차로부터 구해주던 최무각에게 눈빛이 흔들린, 그리고 자신의 본래 눈빛을 보고 '자신 역시 괴물이며 외계인이'라 말해주는 최무각에게 감동한 오초림이야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밥을 먹어도 배부른 걸 느끼지 못한다는, 그리고 상대에게 진탕 얻어 맞아도 눈빛하나 흔들리지 않던 최무각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최무각과의 만담이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였다는 오초림의 말에 최무각의 눈빛이 달라진다. 약속을 어긴 최무각 때문에 개그 극단에서 쫓겨나고, 술에 취해 경찰서까지 데리고 온 오초림을 최무각은 한참이나 들여다 본다. 그리고 다음 날 그녀를 '아는 동생'이라고 소개하더니, 이제 5회에서는 그 예전 동생에게 주었던 인형을, 동생을 생각하며 그녀의 납골당에 다시 갖다 놓았던 인형을 1*1이라는 핑계를 대며 오초림에게 준다. 무엇보다 동생을 잡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던 최무각이 그의 최고의 수사 비법이던 오초림을 포기하겠단다. 그녀가 위험에 빠질까봐.

뿐만 아니다. 눈에 띄게 최무각의 변화가 보이기 시작한다. 드링크제를 사들고 경찰서로 찾아온 그녀가 신경쓰이고, 그녀가 다른 남자들에게 관심을 보이면 더 신경이 쓰인다. 어느새, 호칭은 '우리 오초림'이 됐다. 그러곤 언제나 오초림 앞에선 타박이다. 혼자서 사건을 쫓았다고 야단치고, 그래서 무릎에 난 상처를 보고 야단치고, 그래도 안쓰러워 약을 사다줘놓고서는 약을 발라주지는 않고 바쁘다며 휭 하니 가버린다.

이건 딱, 무뚝뚝한 오빠 모습 그대로다. 물론 '오빠 구려'란 동생의 말에, '넌 예뻐'라고 응대하는 동생 바보 오빠의 모습 그대로는 아니지만, 자꾸 '아는 동생' 오초림에게 최무각의 경계는 풀려가고 걱정인지 사랑인지 그녀에게 신경을 쓴다. 술김에 머리에 국물이 튀었다며 머리를 쓰다듬기까지 한다.

동생을 사랑하는 것을 자기 삶의 존재 이유로 삼았던 최무각. 그래서 삶의 이유를 잃고 '복수'만을 마음에 새겼던 최무각에게 '아는 동생' 오초림이 마음마저 굳었던 그의 감각을 조금씩 말랑말랑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이 사람이 무감각한 사람 맞나 싶게, 한결 부드러워진 최무각의 변화. 그의 치유의 시작이다.

'로맨틱 코미디 8, 수사 2'의 딜레마

 SBS <냄새를 보는 소녀> 스틸컷

SBS <냄새를 보는 소녀> 스틸컷 ⓒ SBS


그런데 아쉬운 것은, 이렇게 봄바람처럼 찾아온 최무각의 변화가 5회를 맞이한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충분히 만끽하기가 힘들었다는 것이다. 최무각에겐 동생 죽음의 실체를 알게 된 충격적인 한 회이자, 동시에 그 동생을 대신할 '아는 동생'이 한결 더 스며든 한 회였다. 하지만 한 회만에 숨도 쉴 틈 없이 종결된 레스토랑 살인 사건 탓에 주인공의 감정선에 집중할 여유가 크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앞서 제작발표회에서 백수찬 PD가 말했던 것처럼 '로맨틱 코미디 8에 수사 2'의 비중으로 드라마를 끌고 가고자 하니 자연스레 극중 수사는 구렁이 담 넘어 가는 식일 수밖에 없을 듯하다. 하지만 4회에 이어 5회에서 표현된 사건 수사 방식은 차라리 '수사'가 없는 게 낫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냄새를 보는 소녀>의 딜레마로 작용하고 있다.

물론 <냄새를 보는 소녀>의 수사가 기본적으로 어불성설인 것은 분명하다. 수사라고는 하지만 결국은 오초림의 냄새를 보는 능력이 결정적 힌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충 넘어가는 것에도 정도가 있어야 한다.

여기에 4회 가짜 바코드 살인사건에 이어, 5회 또 다시 최무각의 단정적인 언어로 모든 사건이 해결됐다. 뜬금없이 이렇게 '명탐정 코난'이 되어버린 최무각의 선견지명에도 이질가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의 수사에 대한 의지와 능력은 별개의 부분인데, 그의 입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되어 버리면 아무리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도 재미가 덜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5회 초반 홀로 범인을 쫓던 오초림 앞에 최무각이 슈퍼맨과 같이 등장하는 장면이나, 감자탕 집에서 쓰러지듯 자던 최무각이 다음 장면엔 대뜸 벚꽃 나무 아래서 자고 있는 모습 등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에선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어수선한 전개 속 허겁지겁 연결된 장면들이 나열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냄새를 보는 소녀>가 가진 두 주인공의 매력은 회를 거듭할수록 더해지고 있다. 오히려 단점이라면 이 두 사람의 호흡이 좋다 보니, 두 사람이 함께 있지 않은 장면들이 눈에 띄게 심심해 진다는 점이다. '두 사람의 호흡'이라는 장점을 잘 살려, 시청률에만 급급하지 않고 주인공 두 사람의 감정선이 제대로 살아난 치유의 드라마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냄새를 보는 소녀 박유천 신세경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