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유령이 지금 한국을 떠돌고 있다. 혐오스러운 여성, 이름하야 '김치녀'라는 유령이.

2015년 현재, 한국에는 명확히 '차별금지법'이라 일컬을 수 있는 법이 없다. 수 차례의 제정 시도가 있었음에도 '사회경제적 부담의 우려'나 각계의 이해관계 충돌 탓에 매번 입법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한국에서 성별, 국적, 외모, 나이, 성적 지향 등 바꾸기 힘든 개인의 특질 탓에 차별의 대상이 되더라도 법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차별에 사회적으로 둔감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법에 걸리지 않으니, 차별 정도는 죄가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니까. 더 큰 문제는 무언가에 대한 혐오로부터 오는 이 차별 행위가 마치 취향의 발현처럼 여겨지는 데 있다. '어리고 잘생긴 남자'를 좋아하는 것은 취향이라 할 수 있지만, '나이 들고 못생긴 남자'를 드러내놓고 혐오하는 것을 취향이라 할 수 없다는 사실은 간과된다.

게다가 혐오를 정당화하기 위해 보다 조직적인 차별이 자행됨과 동시에, 어떤 집단이 오로지 한 특질만으로도 차별의 대상으로 묶이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목격된다. 누군가를 따돌리는 것이 옳지 않음을 알면서도, '그럴 만한 이유'를 만들어 차별을 합리화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남자 등쳐먹는 여성을 단죄하기 위해 이 나라 인구 절반의 대명사를 '김치녀'로 만든 것처럼 말이다.

최근에는 이 같은 혐오성 발언과 차별 행위들이 각종 미디어를 통해 별다른 문제 의식 없이 생산되고 있다. 특히 여성 혐오는 도를 넘은 수준이다. 고전적 단어인 '된장녀'에 '김치녀', '상폐녀(상장폐지녀)', '김여사' 따위의 말들이 예능적 소재로 각광받는 것은 물론이고 여성들이 스스로의 나이를 크리스마스 케이크에 비유하며 자조하는 장면이 드라마에 등장하기까지 한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옹달샘의 '여성 비하 발언'

 코엔스타즈와 재계약을 한 '옹달샘' 유세윤 유상무 장동민

인기 개그 그룹'옹달샘'의 유상무, 유세윤, 장동민(왼쪽부터) ⓒ 코엔스타즈


이 와중에 인기 개그 그룹 '옹달샘(개그맨 유상무, 장동민, 유세윤)'의 과거 여성 혐오 발언들까지 크게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유명인의 공개적 발언으로는 '독보적'인 수위다.

수많은 말들 중에서도 자신의 과거 연애사를 밝히지 않는 여성이 좋다는 내용의 팟캐스트가 문제가 됐다. 요약하자면 '여자들은 남자보다 멍청하기 때문에 애인에게 솔직해진답시고 과거를 미주알고주알 털어놓는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옹달샘'은 자위기구를 언급하며 여성을 조롱하거나, 여성을 성기로 표현한 욕설과 저급한 상황극 등을 하며 그 주장을 펼쳐 나갔다.

이러한 내용의 말들이 '취향 거론'으로 눙쳐질 수 있으려면, 그들은 "내 애인은 과거가 있어도 이를 솔직하게 언급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선에서 멈췄어야 한다. '한 번도 성경험이 없는 여성'이 취향이라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지만, 한 술 더 떠서 성경험이 있는 여성을 '창녀' 취급하는 것을 취향이라고 할 수 있을리 만무하다. '생각해 보니까 우리가 참을 수 없는 건 처녀가 아닌 여자야'라는 명백한 워딩이 존재하는 것이 슬플 지경이다.

당시 '옹달샘'은 팟캐스트에서 자신들의 발언을 1차적으로 사과했다. '컨디션이 너무 좋아서 음담패설을 과하게 했다', '모든 남자들의 성향이 아니라 우리('옹달샘')의 성향이니 오해 없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옹달샘'은 여성 혐오과 관련 없는 남성들이 자신들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는지, 문제가 된 발언의 주어를 수정하며 사과했다. 그러나 정작 비하의 대상이 된 여성들에 대한 사과는 '오해'나 '취향'이라는 말을 들어가며 흐지부지하고 넘어갔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일 년 후, 그대로 없었던 일이 될 줄 알았던 혐오의 언어들은 부메랑이 되어 '옹달샘'을 덮쳤다.

'옹달샘 논란, 모든 게 XXX 때문이다?' 자리 잃은 '음모론'

'옹달샘'의 멤버 장동민이 최근들어 더 많은 인기를 얻고 난 뒤 해당 발언들로 본격적으로 뭇매를 맞았음은 확실하다. 정확히는 장동민이 명실공히 한국 최고 예능 중 하나인 MBC <무한도전>의 여섯 번째 멤버, '식스맨' 후보로 꼽힌 시점부터다.

장동민은 지난해부터 tvN <더 지니어스3> 등의 프로그램에서 매력을 보여주며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중이었고, 그가 얻은 큰 인기는 과거 남발했던 차별적 발언들을 무마시키는 것은 물론 능력 이상의 평가까지 가능하게 했다.

<무한도전>의 정식 멤버로 거론된 것은 그 정점이라고 볼 수 있다. 최종 후보 5인 명단에까지 이름을 올렸고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기도 했지만, 작금의 상황에서 그가 과연 마지막 관문을 넘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가 됐다.

장동민이 보여준 여성 혐오적 발언과 태도에도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은 말마따나 '취향의 문제'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사과를 끝낸' 그의 발언이 '한참 뒤인' 1년 후에야 화제가 된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는 옹호 의견은 어불성설이다.

심지어는 <무한도전>이나 장동민의 말을 옮긴 네티즌들이 모든 논란의 촉매제인 양 책임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또 항간에는 이 모든 것이 누군가가-'식스맨' 최종 후보 중 한명이라든가-나는 새도 떨어뜨릴 장동민의 인기를 시기해 벌인 일이라든가, 정치권에서 터지는 사건들을 덮기 위해 한 일이라는 음모론이 횡행하기까지 한다.

"<무한도전>이 뭐기에 이 사단이 나는가"를 성토하기 전에, "대관절 장동민이 뭐기에 맥락까지 따져가며 혐오 발언을 이해해 주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하는 순간이다. 차라리 장동민이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고 한다면 납득할 수 있으리라. 여성 인권 따위는 언급도 되지 않았던 그 시절, 혹은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아서 무슨 소리를 해도 파급력이 크지 않았던 시절에 그가 태어나고 활동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질지도 모른다.

지금은 '핵심'이 들어간 '진정한 사과' 요구할 때

 MBC <무한도전> '식스맨 프로젝트'에 출연한 장동민의 모습

MBC <무한도전> '식스맨 프로젝트'에 출연한 장동민의 모습 ⓒ MBC


장동민이 '치기 어린 마음에' 했다고 한 발언들은 그가 <무한도전> '식스맨'의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를 넘어서, 각종 혐오를 가득 담은 가치관을 지닌 인물의 말들이 전파를 타도 되는가에 대한 우려를 낳았다. 비단 팟캐스트 발언 뿐만 아니라, 그가 출연한 예능에서 여성 동료들을 대하는 태도로도 그의 여성관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기했듯 장동민을 향한 문제 제기의 초점을 흐리는 발언들도 존재한다. '왜 이제 와서', '사과했으니 됐다'는 말들은 차별에 대한 감수성의 현 주소를 보여 주는 대목일 터다. 장동민의 발언 그 자체보다는 그 말이 왜 수면으로 올라왔는지만을 문제 삼는 것이다.

어떤 인류애적 관점 같은 것을 모두 차치하더라도, 혐오와 차별이 가능한 환경에서는 나 역시 언젠가 그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역지사지'마저도 불가능한 상황인 것일까. 공영방송 KBS에서도 여성 혐오와 지역 차별을 일삼던 이를 기자로 채용하는 마당이니 이 정도는 참고 넘겨야 하는 것일까.

일단 장동민과 유세윤이 2차적으로 사과 입장을 내놓았다. 1차 사과 때보다 사과문의 꼴은 갖추었지만, 역시 핵심은 빠져 있었다. 무슨 잘못을 했고, 누구에게 사과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그 '핵심'일 것이다.

'옹달샘'이 '방송에서는 쉽게 버럭하지만 평소에는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사과했으니까 좀 봐주자"는 말은 일단 그 사과의 질이 담보된 후에야 가능한 말이다. "앞으로 조심하겠지"나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봐 주자"는 말 역시 피해자의 용서 이후에 있을 수 있는 말이다.

'옹달샘'의 말들이 이토록 '뜨거운 감자'가 된 까닭은 '성녀'와 '창녀' 혹은 '김치녀'와 '개념녀'라는 두 허수아비 앞에 줄세워져 그 위치에 따르는 차별을 감내해야만 했던 여성들의 분노가 터져나왔기 때문이리라. 항상 정치적 이슈에 밀려나 뒷전에 머물러야만 했던 여성 인권 문제에 대해 더는 침묵할 수 없다는 움직임의 일환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도를 넘은 여성 혐오는 물론 패륜부터 군대 폭력까지 다양한 범위에서 충격을 주었던 그들의 발언에 대해 인간적으로 느끼는 반발심도 활활 타는 불길에 기름을 끼얹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불씨가 없었다면 불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 사태를 자초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옹달샘'이다.

물론 그들이 어떤 핵폐기물 같은 발언을 했다 하더라도 '옹달샘'에게 반성의 시간이나 새로워진 모습을 보여 줄 기회를 앗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지금은 여성들에게 용서를 강요하거나 <무한도전>의 탓을 할 때가 아니라, '옹달샘'을 향해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해야 할 때다.

옹달샘 장동민 무한도전 유세윤 유상무
댓글3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47,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