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쳐나는 드라마들, 각종 장르의 드라마들이 하루에도 수십 편씩 쏟아져 나오니, 요즘 웬만한 아이덴티티를 지니지 않고선 감히 명함조차 들이밀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점점 볼만한 드라마들이 줄고 있다는 시청자들의 볼멘소리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인기와 화제를 그러모으고 있는 드라마들이 있다. 김혜자와 장미희, 채시라 등 관록의 배우들이 이끄는 KBS의 <착하지 않은 여자들>, 그리고 김희선이 고등학생으로 분해 파격을 뽐내는 MBC의 <앵그리맘> 등이 그렇다. 그리고 이제 그들 사이에 SBS의 <냄새를 보는 소녀>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냄새'가 주인공, 거기에 로맨스, 서스펜스, 미스터리를 담다

 SBS 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

SBS 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 ⓒ SBS


그 안에 '향기' 같은 매우 좋은 느낌의 단어 또한 포괄하긴 하지만, '냄새'라는 단어의 느낌은 통상적으로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런데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의 그것은 조금 다르다. 매우 예쁘고 신비한 느낌. 갖가지 냄새에 대한 다양한 시각적 효과는 그런 표현조차 기꺼이 허락한다.

냄새를 보는 소녀 오초림(신세경 분)과 더불어 극을 이끄는 이는 감각기관 이상으로 후각, 미각을 잃었고, 신경 이상으로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통각상실증(analgesia) 환자 최무각(박유천 분)이다. 초감각 여자와 무감각 남자가 벌이는 본격 로맨스 냄새 추리극! 미스터리 서스펜스 로맨틱 코미디 <냄새를 보는 소녀>, 설정 참 별나긴 하다.

<냄새를 보는 소녀>는 잔혹한 살인사건으로 그 서막을 열었다. 덕분에 꽤나 무겁게 진행되리라 여겨졌던 이 드라마는 그러나 다양한 설정을 판타지에 고루 섞어 우리 앞에 내밀었다. '냄새 난다'라는 말은 여러 가지의 뜻을 함축한다. 실제 냄새가 난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뭔가 미심쩍은 상황 속, 숨은 것들을 유추해 낼 때 하는 추상적 표현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 뭔가 '냄새'가 강하다!

감각을 찾아가는 여정, 우리는 동행할 준비가 되었다

 초감각 여자 오초림과 무감각 남자 최무각의 이야기. 그 합일점은 어디일까

초감각 여자 오초림과 무감각 남자 최무각의 이야기. 그 합일점은 어디일까 ⓒ SBS


화가 마크 샤갈이 반세기만에 그의 조국 러시아에 돌아왔을 때, 그의 옛 기억을 가장 선명하게 떠오르게 한 것은 바로 야생 오랑캐꽃의 강렬한 냄새였다고 한다. 그는 시든 두 송이의 꽃다발을 들고 "이 향기, 다른 어떤 꽃에서도 이런 냄새는 나지 않는다. 나는 50년 동안 이 냄새를 맡아보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어떤 특정한 냄새의 기억이 우리의 추억과 오감을 되살리는 경험. 누구나 한번쯤은 있지 않을까. 때로 우리에게 큰 의미를 전하는 바로 그것, 그런 면에서 <냄새를 보는 소녀>의 설정은 예사롭지 않다. 물론 그것은 무엇보다 '냄새'라는 감각적 특성, 그리고 그와 대조되는 무감함, 그리고 치유의 과정을 제대로 그려낼 때 가능한 얘기일 터이다.

그런데, 그게 참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가 보다. 가장 중요하달 수 있는 판타지적 설정이 첨단의 느낌이 아닌 그저 진부하게만 느껴지도록 표현되고 있다는 것. 특히 회상신의 지나친 남발, 설명조가 되어버린 주인공들의 과거 씬 등의 고루한 편집 등은 <냄새를 보는 소녀>의 신비함이 자체 발광할 수 있는 기회조차 잃어버리게 만들고 있다.

여러 아쉬운 점은 있지만, 싱그러운 봄날 같은 느낌의 박유천·신세경의 <냄새를 보는 소녀>는 일단 유리한 점을 지녔다. 말하자면, 본방을 사수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루트를 통해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사람들, 즉 적극적으로 드라마를 향유하고 소비하는 계층을 보다 많이 확보할 수 있다는 것. 잘만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얘기다.

'환상지(Phantom limb)'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사지 중 하나가 없어져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해도 계속적인 신체 개념이 분명하게 남아 있게 된다는 것. 어릴 때부터 지속적으로 기억되는 것으로, 멀쩡한 사지의 개념이 뇌에 남아 있어 만일 그것이 절단된 후일지라도 통증이나 압력 등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듯 현재는 잃어버렸지만 최무각 속에는 여전히 살아있을 감각, 그것을 되찾아 가는 것. 우리는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바로 그 여정을 함께 할 것이다. 그 길에는 초감각소녀 오초림이 동행할 터이다. 그 여정에 많은 추억이 떠올려지고, 그것에 치유의 기억들이 덧입혀지기를 바란다.

냄새를보는소녀 박유천 신세경 윤진서 남궁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