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물>의 한 장면.

영화 <스물>의 한 장면. ⓒ (주)영화나무


* 이 기사엔 영화의 일부 내용이 담겼습니다.

청춘 영화들의 특징 중 하나, '주인공은 철들며 성장한다'.  그러나 영화 <스물>은 그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청춘을 주인공으로 전면에 내세우지만 성장드라마는 아니다. 그렇기에 성장통이나 그 비슷한 슬픔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언론에서는 요즘의 젊은이들을 삼포세대나 88만원 세대로 규정하려 하지만, 스무 살에게는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랑'이나 '입영통지서'가 더 와 닿는 슬픔이다. 억지스럽지 않음, 이것이 <스물>이 갖는 매력이다.

<스물>은 스무 살의 '어떤 것'에 대해 이야기하려 하지 않고 스무 살 자체를 이야기한다. 기승전결의 방식보다는 세 명의 스무 살 남자가 각자 겪는 평범한 일상을 보여준다. <스물>이라는 제목만큼 신선하고 젊었던 것은 영화 전개 방식과 연출 방식이다. 보통의 한국영화는 '인물 설명-사건 발생-사건심화-해결' 류의 상투적인 플롯을 취하지만 <스물>은 다르다. 대신 특별하지 않은 유쾌한 일상을 빠른 호흡으로 보여준다. 이병헌 감독은 한국영화 특유 흥행공식을 답습하지 않으면서 '스물'이라는 이름처럼 젊은 영화를 만들어냈다.

동우(준호)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등록금을 벌기 위해 대학 진학을 미룬 채 아르바이트를 한다. 만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일 년 뒤 수능을 준비하지만, 엄마와 동생들에게 미안해서(그리고 새로 생긴 여자 친구를 위해) 수능을 치지 않고 큰아버지가 있는 공장에 취직하기로 한다.

"왜 포기하면 욕먹어야 돼? 김연아, 박태환 되려다 포기한 애들은 다 욕먹어야 돼? 포기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

만화가가 되려고 했던 동우(준호)는 자신을 다그치는 치호(김우빈)에게 울분을 토해낸다. 하지만 진지함도 거기까지다. "사실 울기엔 애매해"라며 대학은 산업체로 들어가면 되며, 만화는 계속 그릴 수 있다고 부연한다. 작위적인 상황으로 시종일관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려 했던 영화들과 다른 부분이다. 전체적으로 코미디를 내세우지만 간혹 내뱉는 짧은 진지함이 결코 가볍지 않다. 생각해보면 청춘은 비극이 아니라 희극이다. 삼포세대로 덧칠해져 있지만 청춘은 여전히 신세대나 X세대다

비극성보다는 희극성이 빛나는 청춘물

 영화 <스물>의 한 장면.

영화 <스물>의 한 장면. ⓒ (주)영화나무


청춘은 그 자체로 유쾌하다. 청춘이라는 시절을 영화장르에 비유하자면 희극과 비극이 섞여있을지언정 본질은 희극에 가깝다. 취업시장이 암울할지라도 젊은이들은 매일 슬픔에 빠져있지 않다. 하지만 세상은 지금의 청춘을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세대처럼 비추고 있다. 'X세대'나 '신세대' 같은 이름은 저 멀리 사라지고 삼포세대, 88만원 세대로 규정된다. '어른들은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노래 가사가 여전히 구전되는 이유는 자명하다. 항상 어른세대는 젊은 세대의 유쾌함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 평일 저녁엔 청춘시트콤이 버티고 있었다. 신방과 학생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남자셋 여자셋>이나 후속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은 <논스톱>시리즈는 많은 청춘스타들의 등용문이었다. 결국 모두가 커플이 되는 해피엔딩은 말도 안 되는 판타지였으나 그들이 보여준 코미디적 일상은 현실에 가까웠다. 간혹 청춘시트콤의 부재를 낭만이 사라진 대학캠퍼스에 대입하려 하는 자들도 있지만 현실의 캠퍼스는 여전히 <논스톱>처럼 발랄하다.

이병헌 감독은 어른들의 눈이 아닌 젊은이들의 눈으로 <스물>을 보여준다. 그 안에 멘토나  롤모델 따위는 없다. 가장 노릇하는 동우는 아르바이트하느라 바쁘지만 주눅 들지 않고, 꿈 없는 치호는 되고 싶은 게 없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장래희망이 없고 아르바이트하느라 힘들지만 또 한편 사랑하기에 바쁘고 놀기에도 바쁘다. 스무 살은 슬픔을 이야기하기에는 빛나는 나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석준 기자의 개인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스물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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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집 「안녕의 안녕」 작가. 대중문화에 대한 글을 씁니다. https://brunch.co.kr/@byul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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