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스물>의 이병헌 감독이 20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스물>의 이병헌 감독이 20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영화계에 입문한 지 약 10년이다. 그것도 연출이 아닌 시나리오 각색 및 작가 위치로 들어온 이병헌 감독이 상업영화 <스물>의 메가폰을 잡게 됐다. 강형철 감독의 <과속 스캔들>(2008) <써니>(2011) <타짜-신의 손>(2014) 각색으로 업계에서 꽤 알려졌다지만 대중 입장에서 가장 먼저 들어오는 건 일단 '익숙한' 그의 이름이다.

이름에 대한 농담 섞인 말에 이병헌 감독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배우) 이병헌씨가 데뷔했는데 나쁠 것도 없고 좋을 것도 없다"며 "고등학생 때 이름 덕에 주위 여자들에게 말 붙이기 편할 정도?"라고 대수롭지 않은 듯 답한다. 외모 역시 실제 배우 뺨 칠 정도로 잘생겼기에 가능했다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이다.

전작 <힘내요, 병헌씨>를 통해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던 자전적 이야기를 웃기고도 슬프게 풀어냈던 이병헌 감독은 <스물>을 통해 보다 과거로 들어갔다. 굳이 규정해본다면 <힘내요, 병헌씨>의 프리퀄이 <스물>이 될 법했다.

엎어질 뻔 했던 이야기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영화<스물>의 이병헌 감독이 20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갓 고교를 졸업하고 스무 살을 맞이한 세 청년의 우정과 고민들'이라고 짧게 영화 <스물>을 설명할 수 있다. 성격과 삶에 대한 자세가 너무도 다른 치호(김우빈 분), 동우(이준호 분), 경재(강하늘 분)가 중심인물이다. 철없어 보이는 행동을 하며 부모님 용돈만 축내는 치호와 만화가를 꿈꾸지만 생활고에 시달리는 동우, 진로를 고민하고 주어진 현실에 충실한 경재는 곧 이병헌 감독의 일부를 반영한 캐릭터기도 하다.

이병헌 감독 스스로 "청춘의 이야기라 쓰는데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고 말했지만 영화화되기까지 과정은 지난했다. 작가로 9년 전 <스물> 시나리오를 썼고, 제작사에 팔았지만 투자 문제 등으로 정작 제작이 지연됐다. 그러다 지금의 제작사가 이병헌 감독에게 직접 연출 제안을 하고 투자사까지 붙은 게 2014년 1월이었다.

"연출 제안을 받았을 때 당연히 생각이 있다고 했죠. 최초 버전은 세 남자를 중심으로 그들의 20대를 다룬 이야기였어요. 우정에 집중한 버전도 있고, 버킷리스트(꼭 하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에 집중한 버전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스무 살이라는 단어가 떠올라 거기에 초점을 두게 됐어요. 의미도 있잖아요. 인물들이 하는 행동들이 못나고 찌질한데 스무 살이면 다 용서가 될 거 같았어요.

일단 세 캐릭터를 중심에 두고 영화 속 사건들을 맞춰서 만든 거예요. 물론 실제 제 친구들 이름을 사용했고, 그들이 진짜 겪었던 일도 일부 담았지만 과장은 좀 했죠. 그래서 제 자전적 이야기라고 한정하고 싶진 않아요. <힘내요, 병헌씨>와의 연관성은 아무래도 꿈을 다뤘다는 점에서 나오는 얘기 같군요. 하고 싶은 걸 찾은 병헌씨가 등장하는 게 전자라면, 아직 하고 싶은 걸 못 찾은 '병헌씨들'이 나오는 게 <스물>인 거죠. 치호나 경재, 동우를 보면 제가 겪지 못한 무언가가 있거든요. 관객 입장에선 다들 자기 이야기라 느끼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특히 남자 입장에서."

"'병맛 성애자'지만 영화인으로서는 운이 참 좋아"

 영화<스물>의 이병헌 감독이 20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일본 만화 <멋지다 마사루>를 좋아한다는 지점에서 예상할 수 있듯 이병헌 감독은 흔히 말하는 'B급 감성', 나아가 '병맛 문화'를 좋아하며 동경한다. 청춘스타 김우빈, 아이돌 가수 이준호 등을 두고도 "'내가 캐스팅 안 하면 누가 하겠어'라는 마음이었다"고 스스럼없이 말할 정도다. 기존 관념을 약간 비틀어 바라보고 그걸 재치로 승화하려는 본성을 이병헌 감독은 애써 숨기지 않았다. 

"대학 전공이 국제통상학이었는데 전혀 공부하고 싶던 분야는 아니었어요. 굉장히 힘들게 졸업했죠. 친구도 별로 없었고(웃음). 영화 쪽 인맥도 전혀 없었는데 우연히 글을 쓰게 돼서 그때부터 계획을 세웠던 거 같아요. 영화는 원래 좋아했고, 이 꿈을 좀 더 빨리 발견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어요. 집에서 잉여인간처럼 지내다가 시나리오 공모전이 있다는 걸 알고 술값을 노리고 응모하기 시작했죠.

공모전은 떨어졌지만 강형철 감독님 제작사 쪽에서 일을 하게 됐어요. 그때 <과속 스캔들>을 한창 준비 중이었는데 캐스팅 과정이 좀 지지부진했었죠. 제가 왔다 갔다 하니까 각색 과정에 참여해보라는 제안이 있었고, 그때부터 배울 기회를 얻었어요. 연출부 경험을 쌓으면 나중에 단편도 만들고, 독립영화도 찍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하나씩 했는데 그때마다 결과물을 냈어요. 우연찮게도 단계를 하나씩 밟은 꼴이 됐네요(웃음) 그만큼 책임감도 느끼죠."

분명 좋은 기회를 잡은 건 사실이다. 이병헌 감독 역시 "운이 좋은 사례고 신인 감독 치고는 <스물>은 좋은 여건에서 만들 수 있었다"며 "다른 건 몰라도 영화 작업이 힘들긴 해도 지겹지 않은 걸 보면 참 다행인 일"이라 속마음을 내비쳤다.

공교롭게도 그가 선보인 독립영화와 상업영화가 '과거'의 어느 지점을 살고 있는 인물들 이야기였다. 이 작품들이 단순히 '추억팔이'에 그치지 않고 관객들에게 회자되는 건 결국 그 안에서 미래를 꿈꾸려 하는 현재 젊은이들의 치열함이 반영됐기 때문은 아닐까.

이병헌 감독에게 과거란 무엇일까. 선문답 같은 이 말에 이병헌 감독은 "왠지 멋있게 말하기 싫어진다"고 응수했다. "과거 일에 후회하는 성격도 아니고, 그 안에서 재미를 찾는 편"이라며 그는 "죽어가는 과정에 있던 시간"이라고 답했다. 여전히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음주 외엔 특별한 취미랄 것도 없다지만, 어느새 이병헌 감독의 눈은 자신이 보이고 싶은 또 다른 이야기를 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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