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너무 사람다워진 것 같다. 돌아이로 돌아가고 싶다."(뮤직비디오 연출팀 디지페디에게 주문한 내용 중)

노라조가 독해졌다. 아니, 잠시 희석되었던 자신들의 색깔을 다시 한 번 선명하게 내보였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겠다. 슈퍼맨 복장으로 무대에 등장하고, 수산시장에서 노래했던 노라조는 '니 팔자야'에 이르러 사람들에게 최면을 건다. "들려주는 만큼 돈이 쌓인다" "나는 대박난다"고 읊조리며 시작하는 뮤직비디오(https://www.youtube.com/watch?v=s0UjELAUMjE)에서 두 사람은 "걱정은 개나 줘"라고 외친다. 

할머니가 데굴데굴 구르고, 이혁의 눈에서 손바닥이 나오는 이 뮤직비디오는 유투브 조회수 230만 건을 넘어섰다. 등장인물은 단 3명뿐인데 100명 이상이 나오는 느낌이다. 지상파 방송은커녕 음원 사이트의 심의도 통과하지 못한 '니 팔자야'의 뮤직비디오는 오로지 유투브를 통해서만 공개됐다. 100% 크로마키를 이용해 특수효과를 구현한 뮤직비디오는 오렌지캬라멜의 '까탈레나', 에픽하이의 'Born Hater(본 헤이터)' 등을 연출한 디지페디의 작품이다.


"'야생마'가 약한 음악은 아니었지만 내성이 생겨서인지 웬만해선 사람들이 타격을 못 받더라. 날이 무뎌진 것 같다는 느낌도 좀 있었다. '독하게 만들어보자' 했는데 기대만큼 독한 게 나와서 심의도 통과하지 못했다. 그 덕에 더 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것 같기도 하다. 디지페디는 소개를 받아서 만났다. 방송 심의에 대해 묻기에 '상관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이혁의 조빈화'가 걱정되긴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몇 배 이상 표현이 잘된 것 같다."(조빈)

밴드 외도도 했지만 결국은 노라조..."책임감도 느꼈다"

뮤직비디오를 찍었지만 '최면 효과는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는 문구를 넣지 않았다는 이유로 포털 사이트에도 노출되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은 SNS와 입소문에 철저하게 기댈 수밖에 없었다. "모든 환경이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은 조빈은 "'니 팔자야'는 이미 5년 전에 만들어졌지만 회사에서 '이건 뭐야'라는 평을 듣던 곡이었다"면서 "계약이 끝나고 독립한 뒤, 신년에 희망과 용기를 주는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고 밝혔다.

회사(노라조 프로덕션)를 차린 조빈과 이혁은 이후 '야생마'를 발표했고, 밴드도 결성해 활동했다. 조빈은 "밴드가 엄청 잘됐고, 해외에서 인정받고 그랬다면 밴드로 갔겠지만 다행히 대중은 우리의 기존 색깔에 익숙해져 있더라"면서 "하고 싶어하는 음악을 해본 것이고, 노라조는 늘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스타일을 다시 들려드리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10년을 버티면서 구축해온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버리기는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색깔이 진했나 보다. 밴드를 할 때도 많은 분들이 '노라조는 해체 안할 거죠?'라고 묻더라. 책임감 때문이라도 해체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기다릴 테니까."(이혁)

"'슈퍼맨' '카레' '고등어'가 주이고 다른 노래는 부록 같은 느낌이랄까. '형' 같은 진지한 곡도 불렀지만 앞의 것들이 있었기에 더 이득을 보지 않았을까. 주제 파악은 하고 있다. 즐겁고, 유쾌하고, B급 같지만 보기 싫지는 않은? 새로운 모습은 별책부록처럼 보여주고 꾸준히 가자고 생각했다."(조빈)

10년간 한우물 판 두 사람..."자랑할만한 B급 가수 될래"


방송 출연 횟수는 많지 않지만 뮤직비디오는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고, 두 사람은 화장품 CF를 찍기도 했다. 노라조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구절씩 불러 SNS에 올렸던 CF송의 풀 버전도 먼저 들을 수 있었다. '니 팔자야'에 각종 브랜드명을 넣어서 개사한 이 곡은 실제 '니 팔자야'의 가사보다 훨씬 길었다고. 상품의 종류를 하나도 겹치지 않게 하느라 오랜 시간 골머리를 앓은 결과물이었다.

어느덧 데뷔 10년을 맞은 노라조. "많은 분들이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 하나로 그때그때를 사느라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던 두 사람은 이제야 조금씩 앞날을 생각하게 됐다. "얼떨떨하기도 하고, 우리를 칭찬해주고 싶기도 하다"고 속내를 털어놓은 조빈과 이혁은 "우리가 지금까지 줬던 느낌들을 가져가면서 조금씩 진화했으면 좋겠다"면서 "'우리도 B급 있어' '대박이야'라고 자랑할 수 있을 만한 가수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10년 됐으니 시치미 뚝 떼고 거창하게 '10주년 골든 베스트' 음반을 내려고 한다. 올해 정규 6집 작업도 해야 하고, 조빈의 솔로 앨범도 나올 거다. 한 달에 한 장씩 7곡 정도 담은 앨범을 내서 연말에 10집 가수가 되려고 한다. 또 외전 격으로 '노라조 엑스포' 앨범도 낼 예정이다. 경기도 파주에 녹음실을 꾸려서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 재밌는 노래가 많을 거다. 우리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콘셉트인 것 같다. 다양한 노래를 계속 들려드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