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장>의 한 장면.

영화 <화장>의 한 장면. ⓒ 명필름


많은 사람들이 소설가 김훈의 장편 <칼의 노래> <남한산성> 등을 좋아하지만, 골수팬이라면 단연 꼽는 작품이 단편 <화장>이다. 불치병을 앓고 있는 아내를 둔 중노인의 이야기, 그 삶의 무게는 김훈의 짧고 힘 있는 문장과 만나 독자들의 마음을 건드렸다.

소설이 영화로 다시 태어났다. 그것도 한국 영화사 그 자체인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작품으로. 왜 하필 <화장>이었을까. 임권택 감독 스스로도 "그 힘찬 문장을 영상에 어떻게 옮길까 큰 과제였다. 그걸 해내지 못했을 때 오는 내 자신의 열패감이 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찍었다"고 할 만큼 부담을 갖고 있었는데 말이다.

노년에 찾아온 또 다른 사랑 이야기, 자칫 삼류 내지는 통속으로 치부될 이 이야기는 동시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품고 있는 욕망의 한 유형이기도 하다. 문학이 위대한 건 특유의 통찰력을 담아 그 삶을 진지하게 바라봤기 때문이다. 임권택 감독 역시 그 지점에 매료됐을 것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화장>이 첫 공개됐을 때 임권택 감독은 "100여 편의 영화를 만들었지만 <화장>은 그간 해왔던 작품의 흐름에서 벗어날 작품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삶과 죽음을 대비시킨다는 설정만 놓고 보자면 임권택 감독의 <축제>(1996)와 닮아있지만 욕망에 천착하고 남은 생에 대한 무게를 표현했다는 점에서 <화장>은 크게 다르다. 속에 담고 있지만 차마 내놓지 못하는 인간들의 욕망을 임권택 감독이 영화로 풀어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화장>은 매우 사실적이다. 안성기-김호정이 표현한 노년의 삶은 지금 현재 우리가 만날 법한 그것이다. 물고기로 치면 양식이 아닌 활어 그대로를 낚아 스크린에 담았다고 할 수 있겠다. '얼굴을 꾸민다'는 의미와 '시체를 불태운다'는 중의적 제목은 인간이 품고 있는 삶과 욕망이라는 활어를 그럴싸하게 담아낸 그릇과도 같다.

양식에 길들여진 요즘 관객들에게 다소 질겨 보일 수도 있고, 심심해 보일 수는 있다. 영화의 존재 이유가 단지 재미가 있고 없음에 국한한다 생각한다면 <화장>을 볼 이유는 없다. 그만큼 <화장>은 그간 한국 관객이 잊고 있었던 영화의 존재 이유를 돌아보게 할 작품이 될 것이다.

소위 말하는 흥행공식을 철저히 따른 상업영화 일색에서 임권택 감독의 존재는 그만큼 소중하다.  나이가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달려드는 욕망, 그리고 이성으로 그걸 절제하려는 게 우리 삶이다. 노구의 거장이 온 몸으로 그 내적 싸움을 표현했다. 이제 관객이 응답할 차례다.

영화 <화장> 관련 정보

원작 : 김훈
각본 : 송윤희
각색 : 육상효
출연 : 안성기, 김규리, 김호정 등
상영시간 : 94분
관람등급 : 청소년관람불가
제작 : 명필름
배급 : 리틀빅픽처스
개봉 : 2015년 4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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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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