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결의 마술쇼 <더 일루션>

이은결의 마술쇼 <더 일루션> ⓒ (주)이은결프로젝트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마술사는 '이은결'이라는 이름 석 자다. 올해로 마술 인생 19년 차인 이은결은 마술이 국내에 대중화되기 전인 2001년부터 남아시아 세계매직 콘테스트 1위, 남아공 SA 매직 챔피온쉽 대상, 라스베이거스 세계 매직세미나 황금사자상 그랑프리, 국제마술연합회 마술대전 아시아 최초 제너럴부문 1위 등 각종 국제대회에서 한국 마술의 기량을 뽐내왔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다양한 국제 대형 마술쇼에서 상을 긁어모은 덕에 대중은 이은결을 한국 마술의 대명사로 떠올릴 수 있다.

이런 그가 지난 2010년부터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로 내건 대형 마술 쇼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2010년 이전에도 마술 쇼를 하긴 했지만, '일루션'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본격적인 대형 마술 쇼를 선보인 건 2010년부터라고 봐야 한다. 2010년과 2012년에는 '연말 특수'를 겨냥하여 11월과 12월에 무대에 올렸지만, 올해로 세 번째 열리는 <더 일루션>은 연말이 아닌 봄이다. 그는 꽃이 피기 전에 마술의 꽃을 먼저 피운다.

<더 일루션>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1막이 '강' 또는 '긴장'이라면, 인터미션 이후 이어지는 2막은 '약' 혹은 '이완'이다. 1막이 숨 막히는 마술을 퍼레이드로 나열한다면 2막은 어린이와 엄마 관객을 무대로 데리고 나와 '관객친화형' 마술을 선보이고 그림자 매직으로 마무리한다. 1막에서 관객의 시선을 한 시도 뗄 수 없이 밀어붙이다가 2막에 와서는 숨 돌릴 여유를 찾는다고 할까.

 이은결 마술쇼 <더 일루션>의 한 장면

이은결 마술쇼 <더 일루션>의 한 장면 ⓒ (주)이은결프로젝트


1막은 '마술 블록버스터'로 승부수를 건다. 마술쇼라면 으레 처음은 약한 패턴의 마술로 시작하는 게 정석이다. 관객의 눈높이를 하나씩 높이기 위함이다. 하지만 <더 일루션>은 시작부터 '진검 승부'를 펼친다. 이은결의 조수들은 큰 천 하나를 갖고 무대에 등장한다. 두 명의 조수가 천을 관객에게 보여주면 영상에 헬리콥터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한다. 헬리콥터 그림자는 '암시'였다. 천을 거두자마자 천 뒤에 가려진 실물 크기의 거대한 헬리콥터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은결은 처음부터 관객의 눈높이를 와장창 올려버린다.

쇠로 된 상자에 여자 조수를 가둔다. 쇠 상자를 쇠꼬챙이가 겨누고 있는데, 쇠꼬챙이가 쇠 상자를 그냥 관통하는 것도 아니고 불까지 붙인 상태로 관통한다. 이쯤 되면 조수는 불붙은 쇠꼬챙이에 찔려 온전하지 못할 텐데, 그는 별안간 객석 뒤에서 등장한다. 1막부터 혀를 내두르는 마술의 향연으로 관객의 이성을 마음껏 희롱한다.

또 1막에는 '극 중 극'이 등장한다. 마술쇼를 펼치는 무대 뒤에서 스태프가 마술 쇼에 사용될 소품을 어떻게 준비하고, 조수들에게 동선을 지시하는지 등 무대 뒤 풍경이 연극 형태로 펼쳐진다. 그렇지만 그냥 극 중 극이 아니다. 이은결이 전구 그림을 그린 다음에 그림을 가리면 전구가 그려진 그림 아래로 전구가 툭 빠지고, 다시 그림을 펼치면 전구가 빠져나간 소켓 그림만 남아있는 식으로 마술이 삽입된다.

이은결의 <더 일루션>에서 빠질 수 없는 조수는 사람이 아닌 '앵무새' 조수다. 한데 이름이 특이하다. 이름은 '가지'인데 성이 '싸'란다. 종합하면 "싸가지'. 이은결의 페르소나나 마찬가지인 앵무새 싸가지는 마술 쇼에서 어린 앵무새와 알로 변모하다가 알은 어린 앵무새, 다시 싸가지로 되돌아온다. 13년 동안 이은결과 함께 한 앵무새인지라 객석을 퍼득 퍼득 날다가도 다시 이은결의 팔 안으로 되돌아오고, 이은결의 팔에 매달려 180도 뒤집어지는 재주로 관객의 귀여움을 독차지한다.

 마술쇼 <더 일루션>을 선보이는 이은결

마술쇼 <더 일루션>을 선보이는 이은결 ⓒ (주)이은결프로젝트


2막에서는 그동안 그가 세계대회에서 선보인 마술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비둘기 깃털에서 갑자기 카드가 튀어나오고, 카드에서 비둘기가 튀어나오는 것도 모자라 비둘기 한 마리가 두 마리로 순식간에 늘어난다. 이은결이 입은 검은 옷은 순식간에 흰 옷으로 변한다.

'손가락 마술'은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기 쉽다. TV를 통해 데이비드 카퍼필드가 펼치는 대형 마술에 익숙한 탓이다. 하지만 이은결은 과감하게 1막에 마술의 장관을 퍼레이드로 포진시키고 2막 들어 손가락 마술을 선보인다. 보통 사람이라면 절대로 따라하지 못할 현란한 손가락 마술은 이은결의 마술이 현란한 손가락 놀림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는 걸 방증한다. 

<더 일루션>의 마지막은 '그림자 마술'이다. 손가락 마술로 선보인 이은결의 현란한 손가락 놀림이 그림자로 투사되는 그림자 마술은 아프리카가 배경이다. 이은결의 손가락은 코끼리가 되었다가 악어와 사슴, 새와 새끼 원숭이 그림자 등으로 다양하게 동심을 자극한다. 마술의 세계에 어른 관객만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미취학 어린이 관객도 얼마든지 호기심을 갖고 볼 수 있게끔 마무리한다.

<더 일루션>은 앞선 공연과 다른 시도도 한다. '복고'다. 7080 음악을 배경으로 펼치는 1막의 마술 쇼는 그동안의 <더 일루션>에서는 볼 수 없는 시도였다. 대신 2012년에 시도된 '관통 마술'은 이번에는 선보이지 않는다.

이은결의 <더 일루션>은 눈앞에서 알고도 속는 마술의 황홀경에 빠져드는 게 다가 아니라, 어린 시절 누구나 상상해 보았을 환상이 이은결이라는 마술사를 통해 무대에서 펼쳐지는 것을 감상하는 '동심의 구현'과도 같다. 자라면서 서서히 잊어가던 동심 속 상상력이 눈앞에서 마술로 구현된다. 이은결은 이를 어른과 아이가 모두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표현해냈다.

이은결 더 일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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