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심형탁은 지난해 MBC <나 혼자 산다>에 출연, 만화 캐릭터 도라에몽 팬으로서의 면모를 아낌없이 자랑했다.

배우 심형탁은 지난해 MBC <나 혼자 산다>에 출연, 만화 캐릭터 도라에몽 팬으로서의 면모를 아낌없이 자랑했다. ⓒ MBC


도라에몽 잠옷을 입고, 도라에몽 침대에서 일어나, 도라에몽 칫솔로 이를 닦는다. 간밤에 도라에몽 피규어 친구들에게 별일은 없었는지 살피며, 양털 브러시로 먼지를 털어주는 신성한 의식과 함께 일과를 시작한다. 이걸로 끝인 줄 알았겠지만, 옷을 벗으면 타이트한 팬티 위에서 활짝 웃고 있는 도라에몽이 우릴 반긴다. 

'도라에몽 절친' 진구(일본명 노비타)도 울고 갈 만큼의 사랑을 30년째 실천하고 있는 이는 배우 심형탁(39)이다. 지난 2014년 여름 MBC <나 혼자 산다>에 출연했을 때, 자신을 잘 모르는 MC 노홍철에게 "심현탁이 아니고 심형탁"이라고 읍소했던 그는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도라에몽 마니아의 면모를 보이며 이름을 알렸다. 1998년 광고모델로 데뷔해 20여  편의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엉뚱하게도 취미로 새로운 기회를 잡은 셈이다.

심형탁 덕분에 오랜만에 활기를 얻은 이들도 있다. 길게는 30년 넘게 '숨겨왔던 나의 수줍은 마음'을 좀 더 떳떳하게 열어 보일 수 있게 된 도라에몽 성인팬들이다. 최근 만난 한 인터넷 팬카페의 회원 도라포켓(28·남), 라에몽코코몽(30·여), 인터넷전화기(20·남)씨는 "심형탁씨가 방송에서 도라에몽 팬임을 밝히면서 카페가 활발해지고, 성인 팬이 늘어나고 있음을 느낀다"고 전했다.

'나는 도라에몽을 좋아한다'...왜 말을 못해

 지난 2월 12일 국내 개봉한 극장판 애니메이션 <도라에몽: 스탠 바이 미>의 한 장면.

지난 2월 12일 국내 개봉한 극장판 애니메이션 <도라에몽: 스탠 바이 미>의 한 장면. ⓒ NEW


일본 작가 후지코 F. 후지오가 1970년부터 연재한 만화의 주인공 도라에몽은 우리나라에서도 애니메이션을 통해 잘 알려진 친근한 고양이 로봇 캐릭터다. 허약하고 겁 많은 초등학생 진구를 돕기 위해 22세기 미래에서 온 도라에몽은 4차원 주머니에서 꺼낸 2천여 개의 비밀도구로 상상력을 자극하며 꾸준히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지난달에는 원작자 탄생 80주년 기념작이자 시리즈 최초의 3D CG 극장판인 <도라에몽: 스탠 바이 미>가 국내 개봉해 현재 상영 중이다.

이 영화를 2D, 3D, 4D 버전으로는 물론 일본에서도 관람했다는 도라포켓씨는 "일본은 아이들을 데리고 온 관객을 찾기 힘들 정도로 20~30대 성인이 대다수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애들이나 보는 애니메이션으로 여겨져 온 경향이 있어 극장판을 보러 가기가 부끄럽다는 성인 팬도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심형탁 역시 지난해 KBS 2TV <안녕하세요>에 출연, '만화 캐릭터가 친구라고 비웃지 말아줘요'라는 주제로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라에몽코코몽씨는 중학교 1학년 때 <도라에몽> 만화책을 처음 접한 뒤 16년 동안 팬으로 살며 나름 인고(?)의 세월을 견뎌냈다. 집에서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으면 "네 애가 저걸 볼 나이"라고 한심스러워하는 어머니의 잔소리도 이제 익숙해졌다. 지금은 어머니도 냉장고에 도라에몽 스티커를 붙이는 등, 화를 즐거움으로 승화시키셨단다.

 <도라에몽: 스탠 바이 미>는 일본 박스오피스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600만 관객을 동원했다.

<도라에몽: 스탠 바이 미>는 일본 박스오피스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600만 관객을 동원했다. ⓒ NEW


"학원 강사로 초등학생을 가르쳤는데, 한 아이가 도라에몽 캐릭터 상품을 가지고 있는 걸 보고 동료 선생님이 '네가 유치원생이냐'고 꾸짖더라고요. 당시 저는 도라에몽 양말을 신고 있었어요. 너무 민망해서 '나도 좋아한다'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고백했는데, 그 선생님이 당황하며 '그러고 보니 도라에몽을 닮으셨네요'라고 수습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취향은 표출하면 안 되는구나' 깨닫기도 했죠."

그렇다면 왜 하고많은 캐릭터 중에 이 파란 고양이 로봇이었을까. 세 사람은 키 129.3cm의 통통한 몸에 귀여운 얼굴이라는 외모를 공통적으로 꼽았다. 도라포켓씨는 "이번 <스탠 바이 미>는 진구의 성장기를 담았는데, 아이들보다 성인들에게 감동적인 측면이 있다"고 작품 역시 아동의 취향만을 겨냥하지 않았음을 설명했다. 또한 힘들었던 고3 때 본격적으로 팬이 됐다는 인터넷전화기씨는 "순수한 진구와 도라에몽의 의리가 좋았다"며 "도라에몽이 진구를 도와주는 걸 보면서 '내게도 저런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5년 동안 천만 원 썼다?..."내게 진짜 소중한 건"

 도라포켓 씨가 최근 구입한 도라에몽 관련 상품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 한정판 컵과 카메라 모양의 파우치, 메모지, <도라에몽: 스탠 바이 미> 한정판 블루레이.

도라포켓 씨가 최근 구입한 도라에몽 관련 상품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 한정판 컵과 카메라 모양의 파우치, 메모지, <도라에몽: 스탠 바이 미> 한정판 블루레이. ⓒ 도라포켓


"도라에몽 때문에 일을 쉴 수 없다"는 심형탁은 관련 상품을 수집하느라 5년 동안 천만 원 가까이 썼다고 한다. "천만 원이 뭔가, 돈만 있었다면 3천만 원은 썼을 것"이라고 공감한 도라포켓씨는 "사회인이 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지금까지 200만 원 정도 투자한 것 같다"며 "월급의 절반은 나가기에 열심히 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그는 해외 직구로 배송비 포함 8만 원 정도에 구매한 <스탠 바이 미> 한정판 블루레이와 한정판 컵, 메모지 등을 가져와 보여줬다. 값을 떠나, 시간이 지나면 구할 수 없는 물건이기에 가치가 높다. 그가 가장 아끼는 수집품은 진구와 이슬이 피규어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대지진이 일어나기 하루 전날 무사히 배송돼 더 의미가 있다고.

인터넷전화기 씨가 가장 소중한 물건이라고 꺼낸 것은 후지코 F. 후지오 박물관으로부터 온 편지 한 통이었다. 원작자가 자신을 진구라고 생각하며 <도라에몽>을 그렸다는 것에 공감했다는 그는 이 편지가 위안이 됐다고 말했다. 어떻게 편지를 받은 건지, 무슨 내용이 적혀 있는지는 비밀이라고 웃음으로 답을 대신하는 것을 보며, 오타쿠라고 치부할 수 없는 이들의 애정과 진정성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인터넷전화기 씨는 후지코 F. 후지오 뮤지엄으로부터 받은 편지를 가장 소중한 도라에몽 관련 물건으로 소개했다.

인터넷전화기 씨는 후지코 F. 후지오 뮤지엄으로부터 받은 편지를 가장 소중한 도라에몽 관련 물건으로 소개했다. ⓒ 인터넷전화기


"14살 때는 20살이 되면 도라에몽 같은 건 좋아하지 않을 줄 알았어요. 여러 귀여운 캐릭터에 잠시 눈길도 줘봤지만 도라에몽만 한 게 없더라고요. 40대 중년 팬이 남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데...아마 전 죽을 때까지 좋아할 거예요." (라에몽코코몽)

"미래의 배우자가 내 취미를 이해할 수 없다면 쿨하게 받아들여야죠. 하지만 수집을 못 하게 한다면...? 그래도 사야죠. 몰래 한정판만 사다가 고이 모셔둬야죠." (도라포켓)

"앞으로도 도라에몽이 순수성이라는 본질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돌아가신 원작자님의 세계관을 그대로 유지할 순 없겠지만, 상업성에 빠지지 않았으면 해요. 사실 저는 그 어떤 고가의 캐릭터 상품보다 마음속으로 보는 도라에몽이 귀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인터넷전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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