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맨 국내 메인 포스터

▲ 버드맨 국내 메인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감독·각본·촬영의 네 개 부문을 석권하며 그야말로 하늘 높이 날아오른 <버드맨>이 반갑지 않은 논란에 휩싸였다. 영화 속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먹거리인 김치를 부정적으로 묘사해 한국과 한국인을 비하했다는 것이 논란의 요체였다. 시상식 직후부터 다음과 네이버 등 국내 주요 포털사이트에서 <버드맨>과 김치가 연관검색어로 묶였고 이에 대한 기사가 수백 편이나 쏟아질 만큼 비상한 관심이 일었다. 정작 영화가 국내개봉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이례적인 반응이었다.

<버드맨>은 미국 내에서도 대규모 흥행성적을 거둔 작품이 아니었을 뿐더러 한국에서도 제한적인 규모의 시사회만 이뤄진 탓에 영화를 본 관객이 많지 않았는데 오히려 이 점이 논란을 부추겼다. 시상식 직후 쏟아진 관심이 자극적인 보도를 통해 트래픽을 올리려는 저급한 기사에 노출되었고 이것이 감정적 민족주의와 맞물려 SNS 등을 통해 확대재생산 되었던 것이다. 영화가 돋보이는 성과를 얻자마자 구설수에 오르자 해당 영화사는 인물의 성격을 보이기 위한 장치였을 뿐 비하의도가 없었다고 해명했으나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문제가 된 장면은 엠마 스톤이 연기한 샘이 동양인이 운영하는 꽃집에서 "온통 OOO 김치냄새야(It all smells like fucking kimchi)"라고 말하는 도입부분이다. 가게의 주인이 한국인이라는 언급이 없지만 김치를 통해 비하발언을 했다는 점에서 김치를 부정적으로 언급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영화가 인종차별적이라거나 비하의도가 있었다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그 발언이 재활원에서 갓 나온 약물중독자 샘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대사였을 뿐 아니라 영화의 주제의식이나 서사와도 특별한 연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영화는 타인을 비하하고 제 삶을 책임지지 못하는 인물의 모습을 가감없이 비춤으로써 그들 스스로의 결함을 블랙코미디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영화엔 동양인과 여성은 물론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 평단과 대중까지를 닥치는 대로 풍자하고 비꼬며 심지어는 비하하는 상황이 적잖이 등장하는데 이러한 경우 역시 마찬가지라 하겠다.

한국을 왜곡시킨 할리우드 영화들

버드맨 영화는 인물들의 결함과 나약함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는 블랙코미디다

▲ 버드맨 영화는 인물들의 결함과 나약함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는 블랙코미디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할리우드 영화에서 한국 또는 한국인 비하와 관련한 논란이 빚어진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오히려 세기 어려울 만큼 많았다는 것이 적절하겠다. 특히 한국영화의 위상과 한국영화시장의 규모가 지금처럼 커지기 전에는 그 빈도와 수준이 상대적으로 심했다.

내 기억으로는 1992년 뉴 라인 시네마에서 제작한 <글렌게리 글렌로즈>의 사례가 이번 김치논란과 가장 유사한 듯하다. 알 파치노, 잭 레몬, 알렉 볼드윈, 에드 해리스, 케빈 스페이시 등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공연한 이 영화에는 "나는 BMW를 타지만 너희는 현대자동차나 타고 다니지"라는 대사가 등장한다. 한국의 유명 기업인 현대자동차를 비하한다고 해석할 수 있는 이 대사는 당시 상당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의뢰인>, <폰 부스>의 연출자로 유명한 조엘 슈마허의 1993년작 <폴링 다운>에서는 보다 노골적인 한국인 비하가 이뤄졌다.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한 남자가 세상을 향해 극단적인 분노를 표출한다는 점에서 소설 <이방인>을 떠올리게 하는 이 영화는 주인공의 일탈이 시작되는 지점으로 한국인이 운영하는 상점을 설정했다. 이혼한 처와 통화하기 위해 잔돈을 교환하려는 윌리엄 디펜스(마이클 더글라스 분)에게 한국인 주인은 무조건 물건을 사야 한다고 답한다. 그는 상점 주인과 말다툼을 벌이다 몽둥이를 빼어든 그와 몸싸움까지 벌이고 몽둥이를 뺏어들어 가게를 박살내기에 이른다.

부정적 여론에 한국 배급 포기하기도

폴링 다운 메인 포스터

▲ 폴링 다운 메인 포스터 ⓒ 워너 브라더스

<폴링 다운>이 한국인 상점 주인을 배타적이고 돈만 밝히는 사람으로 묘사한 탓에 개봉 당시 한인 사회의 거센 반발이 이어졌다. 특히 배급사인 워너브라더스는 한국 관객들의 저항을 고려해 국내 배급을 철회하기도 했다. 한국인뿐 아니라 멕시코 청년들을 무자비하게 구타하는 장면 등 유색인종에 대한 백인의 폭력과 증오를 적나라하게 그린 이 영화는 역설적으로 타인에 대한 배타성을 비판하고 포용과 통합의 사회적 필요를 웅변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약관의 나이에 데뷔해 유명해진 쌍둥이 감독 휴즈 형제의 1993년작 <사회에의 위협>도 한국인 상점을 중요하게 등장시킨다. 영화는 한국인 여주인이 흑인 손님을 요상한 눈초리로 경계하는 장면을 의미심장하게 잡아내는데, 곧 이들 간에 시비가 붙고 한국인 부부가 살해당하기에 이른다. 한국인 여주인의 방어적인 시선이 마치 다른 인종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는 듯 연출되어서 한국인 부부가 피해자임에도 온전히 피해자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편견어린 시선은 백인 감독의 영화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다. 1992년 LA 흑인폭동을 예고하는 듯해 더욱 유명해진 스파이크 리의 <똑바로 살아라>에서도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발견할 수 있다.

뉴욕 브루클린의 흑인 거주지를 배경으로 영화는 지역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유럽·아시아계 이민자들과 흑인 거주자들의 갈등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영화에는 흑인을 깔보는 한국인 가게 주인이 등장하는데 경제적 문제와 인종갈등으로 흑인들의 폭동이 일어나자 자기도 흑인과 같은 사람이라며 아부하는 비굴하고 기회주의적 모습으로 그려진다.

편견과 왜곡에도 유수의 영화제서 인정받은 <메쉬>

메쉬 한국전쟁 당시 미군 야전병원을 무대로 한 코미디 영화

▲ 메쉬 한국전쟁 당시 미군 야전병원을 무대로 한 코미디 영화 ⓒ 로버트 알트만


한국인에 대한 직접적 비하까진 아니더라도 부정적 인식이나 편견이 반영되어 비하와 같은 효과를 불러일으킨 영화들도 적지 않다. 칸 영화제 그랑프리와 아카데미 감독·편집·각본상을 받은 로버트 알트만의 <매쉬>(1970)가 대표적인 경우다.

도날드 서덜랜드, 로버트 듀발 등 유명 배우들이 출연한 이 영화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 야전병원을 무대로 삼고 있는데, 영화에서 한국의 모습이 그야말로 엉망이다. 사람들은 중국식 복식을 하고 있고, 풍경은 베트남처럼 보이며 빵 한 조각, 돈 몇 푼을 위해 몸을 파는 한국의 여성들은 하나같이 기모노를 입고 있다. 극 중 인물들은 농담이랍시고 한국인을 비하하는데 이런 영화가 칸과 아카데미라는 권위있는 영화제에서 주요 상을 차지한 것은 당대 서구인들이 한국에 대해 갖고 있었던 인식이 어땠는지를 짐작케 한다.

<007 - 어나더데이>가 북한이랍시고 동남아의 모습을 보여주고, <더 인터뷰>에서 '개고기 안 먹는 나라로 가자'며 한국의 식문화를 희화화한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국인이나 한국에 친근한 배우가 출연한 영화의 사정도 비슷하다.

크리스 에반스가 주연한 <타임 투 러브>에서는 한국인이 믿기 어려울 정도의 막장드라마에 열광한다고 그려지는 등 편견과 고정관념이 배어나온다. 최민식이 직접 출연한 뤽 베송의 <루시>에서도 한국말이 어설프게 쓰인다거나 국제적 장기매매조직으로 한국범죄집단이 등장하는 등 무지와 편견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설정이 등장하는데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하지만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격상되고, 마케팅면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시장으로 성장함에 따라 할리우드가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마블의 블록버스터 <어벤져스2>가 서울에서 촬영을 진행했고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져>,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가 한국에 대한 적극적인 마케팅을 선보이기도 했다.

우리는 편견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버드맨 논란의 주인공 김치녀 샘(엠마 스톤 분)

▲ 버드맨 논란의 주인공 김치녀 샘(엠마 스톤 분)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버드맨>과 관련한 논란은 영화를 보고 나서 해도 늦지 않다. 아직 개봉하지 않은 영화에 쏟아지는 비판이 적절하지 않으며, 소문이란 자주 억측을 낳기 때문이다. 타 문화와 민족을 비하하는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것과 타 문화와 민족을 비하하는 것이 같지 않을 뿐더러 이냐리투와 같은 뛰어난 감독은 이처럼 단편적인 방식으로 주제의식을 표출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앞에 언급한 것처럼 조엘 슈마허의 <폴링 다운>은 여러 면에서 좋은 영화로 평가받았지만, 오직 한국인이 부정적으로 그려진다는 이유 때문에 반발을 샀고, 결국 국내에서 개봉되지 못했다. 방어적 배타성을 비판하고 포용과 화합의 필요를 역설하는 등 사회전반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었던 작품을 보기 어렵게 됐던 것이다.

김치 논란만을 부추긴 기사들은 우리 안에 내재해 있는 감정적 민족주의를 자극한다. 하지만 감정적 민족주의가 실리와 명분, 어디에도 보탬이 되지 않음을 우리는 지나간 역사를 통해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객관적인 시선으로 사안을 직시하고 적절한 방식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자존감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기도 하다.

아직 개봉하지 않아 소수의 시사회 참석자(또는 어둠의 경로로 영화를 본 불법 다운로더들)을 제외하고는 보지 못했을 <버드맨>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그 시간에 우리 안의 인종편견은 없는지 돌아보는 것이 낫겠다.

지난 해 개봉해 천 만이 훌쩍 넘는 관객을 동원한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이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NLF, 영화에선 '베트공'으로 표현)을 테러집단과 민간인 학살자로만 그렸을 때 우리들 가운데 누가 문제를 제기했던가?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문제는 <버드맨>의 김치만은 아닌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버드맨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김치
댓글9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