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지 않은 여자들

착하지 않은 여자들 ⓒ kbs2


2월 25일 첫 선을 보인 KBS2TV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첫 회부터 요란뻑적지근했다. 안국동 강 선생이라 불리는 요리 선생 강순옥(김혜자 분) 여사의 두 딸 김현숙(채시라 분), 김현정(도지원 분)과 현숙의 딸 정마리(이하나 분) 사이에서의 일이다. 할머니와 두 딸, 그리고 손녀까지 삼대가 모계로 이루어진 이 가정에 평지풍파가 일어난 것이다.

파란의 첫 번째 주인공은 현숙이다. 일찍이 고등학교 시절 퇴학을 당한 이후 도무지 풀리는 일이 없는 그녀. 딸과 함께 어머니 집에 얹혀살던 그녀가 어머니의 집까지 담보로 삼아 투자한 곳에 문제가 생긴다. 죽으려고 해보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은 그녀는 이판사판 친구의 돈을 빌려 도박장에서 한 탕을 해서 어머니 돈을 갚아보겠다고 한다. 그 조차도 불법 도박을 근절시키기 위해 출동한 경찰들로 인해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질 것 같이 도무지 되는 일이 없는 현숙에게도 유일한 삶의 보람이 있으니 바로 그녀의 딸 장마리이다. 국문학 강사로 전임 자리를 엿보던 마리. 하지만 학생들의 환심을 사고자 캠퍼스에서 벌인 짜장면 파티가 그녀의 발목을 잡는다. 사석에서 농담처럼 흘린 피라미드식 학생 유인책이 방송을 타고, 마치 전임 자리를 위해 학생들을 학점과 갖은 방법을 낚은 부도덕한 강사가 되어 하루아침에 강사직을 그만둬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의 호구지책이었던 논술 학원 강의조차 그 소문에 날아갔다.

사고와 말썽으로 범벅이 된 두 모녀에 비해 솔직한 입담을 자랑하며 수강자들을 끌어 모으고 있는 이 집의 실질적 가장 강순옥 여사나, 여전히 싱글이며 후배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지만 그래도 굳건하게 앵커자리에 버티고 있는 현정은 형편이 나은 편이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첫 회는 주인공 현숙와 그녀의 딸 마리의 수난사로 시끌벅적했다. 두 사람에겐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그녀들이 자신들의 삶을 곧이곧대로 살아보려 했던 '착한 여자들'이라는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학생들의 학구열을 자극하기 위해 1등부터 60등까지 성적순으로 앉힌다는 선생님에게 유일하게 부당하다며 반기를 들었던 현숙이다. 그렇게 원칙을 준수하고자 했던 그녀의 삶은 거기에서 부터 어긋난다. 선생님은 그녀를 찍었고, 학생들은 그녀를 따돌렸다.

그녀의 딸 마리 역시 마찬가지다. 대학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인문학을 가르치는 강사로 인문학 강의의 어려움을 사석에서 토로하고 짜장면까지 사주며 학생들을 독려하려 했지만, 그녀의 의도와는 반대로 오해를 샀다.

현숙과, 마리가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두 사람의 불행은 바로 '경쟁 우선주의'에서 비롯됐다. 약삭빠르게 옆 사람이 어떻게 되건 말건 나 한 사람 잘 되면 되는 세상에서 현숙과 마리는 영 젬병이다. 엄마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고지식한 태도로 결국 신분 상승의 기본적 수단을 제공하는 학교에서 밀려났고, 이제 겨우 인문학 나부랭이를 가르치며 강사 자리라도 유지하려던 마리는 또 다른 신분 보증의 수단인 대학 사회에서 밀려난다.

착하다고 하지만 착하지 않은 그녀들의 행보

 착하지 않은 여자들

착하지 않은 여자들 ⓒ kbs2


이렇게 상징적 존재로 등장한 현숙이 1회에서 벌이는 일은 어쩐지 착해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의 집까지 담보로 해서 무리한 투자를 벌인다든가, 친구의 돈까지 빌어 도박판에 가담하는 모습은 고지식했던 현숙과는 다르다.

애매모호한 정체성인 현숙에게 정당성을 부여한 것은 그녀를 학교 밖으로 밀어버린 선생님 나말년(서이숙 분)이다. 될성부르지 않은 학생은 일찌감치 찍어내 버려야 한다는 가혹한 교육관을 당당하게 말하는 나말년의 소신은 현숙이란 애매모호한 캐릭터를 추동하는 발연재로 쓰인다.

마리도 마찬가지다. 선의에 의한 것이지만 결과론적으로 충분히 오해를 살만한 소지가 있는 행동을 벌인 마리의 짜장면 해프닝을 통해 마리의 캐릭터 설명하기에는 어쩐지 애매하다. 그를 위해 충분히 오해를 살만한 정황을 부여한 이두진(김지석 분)이 필요한 이유다.

이렇게 엄밀하게 보면 '착하다'고만은 하기엔 어정쩡한 그녀들이다. 하지만 단 1회 동안, 돈 날리고, 경찰에게 쫓기고,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는 현실적인 사건들이 그녀들을 자신의 삶에 더 집중하도록 만든다. 분명 엄마의 집까지 담보로 삼고 그 돈을 보상하겠다고 친구 돈을 빌려 도박판으로 향하는 현숙은 이해받기 어렵다. 하지만 과거의 가혹했던 에피소드는 현재의 그녀조차 이해하고 싶게 만든다.

무리수였던 마리의 짜장면 파티도 초라하게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그녀의 모습으로 마음을 돌리게 만든다. 과정이야 어떻든 가진 거 다 잃고 이제 식구들마저 거리에 나앉게 생긴 상황. 그 폭풍의 운명성이 삶의 희로애락에 시달려 본 동년배들의 시선을 끌 가능성이 높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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