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인류-불의 맛>의 한 장면

<요리인류-불의 맛>의 한 장면 ⓒ KBS

지난 2014년 3월, 장대한 규모로 찾아왔던 요리를 통한 인류학이 설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찾아들었다. <빵과 서커스> <낙원의 향기 스파이스> <생명의 선물 고기>에 이은 <불의 맛> <모험의 맛 커리> <영혼의 맛, 빵> <요리한다 고로 인간이다> <마지막 한 접시>가 그것이다.

일찍이 <누들 로드>를 통해 요리 다큐의 신천지를 개척했던 이욱정 PD는 보다 본격적으로 요리에 천착하기 위해 프랑스 최고의 요리 학교인 르 코르동 블루에서 자격증을 땄다. 그는 요리쟁이의 진가를 살려 250일간 20여 개국을 돌며 세계 각국의 요리 풍습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짚어봤다. <누들 로드>을 통해 지난 2010년, 방송가의 퓰리처 상인 피바디 상을 받은 그답게 '장문의 지식을 읊어주는' 다큐를 넘어 '재미와 아름다움으로 압도하는 진일보한' 다큐를 선보인다.

2014년에 선보인 세 편의 <요리 인류>를 통해 인류사에 등장한 빵과 스파이스, 고기를 역사적으로 조명하고자 했던 이욱정 PD는 2015년 5편의 다큐를 통해 그 역사의 행간으로 조금 더 들어간다.

총론에서 각론으로 

 <요리인류-모험의 맛 커리>의 한 장면

<요리인류-모험의 맛 커리>의 한 장면 ⓒ KBS

4편에서 6편에 이른 <불의 맛> <모험의 맛 커리> <영혼의 맛 빵>은 지난해 선보인 <빵과 서커스> <낙원의 향기 스파이스> <생명의 선물 고기>에 이은 속편 격이자, 총론에 이은 각론이라 해도 무방하다.

<불의 맛>은 직화구이로 시작된 고기 요리의 역사를 다루는 시간이다. 다른 동물이 불을 보고 도망하는 것과 달리, 불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것을 이용함으로써 졸지에 생태계에서 가장 유리한 위치를 선점한 인류. 그들이 가장 쉽게 불을 통해 요리하기 시작한 것은 고기였다. 고기는 불을 통해 요리하면 보다 소화가 쉬워질 뿐만 아니라, 맛도 전혀 다른 경지를 이룬다. <불의 맛>은 인간이 가장 먼저 불을 통해 요리를 시작한 방식을 그리며, 그 구체적인 요리 방법으로 바비큐의 역사를 짚어본다.

향신료라는 요리계의 혁명을 짚어봤던 <낙원의 향기 스파이스>는 이제 그 스파이스의 조합으로 등장한 커리를 다룬다. 커리이지만 커리가 없는 인도에서 시작된 마놀라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커리는 인도 전역의 각 가정에서 요리되는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마놀라라고 설명될 만큼 오묘한 스파이스의 배합에 따라 전혀 다른 풍미를 선보인다. 인도에서 시작하여 중동, 북아프리카, 포르투갈, 중세 유럽, 일본까지 이어지는 지리상의 확장이자 발전, 변형인 커리의 역사도 놓치지 않는다.

 <요리인류-영혼의 빵>의 한 장면

<요리인류-영혼의 빵>의 한 장면 ⓒ KBS

<빵과 서커스>를 통해 서구에서 밀이 주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던 역사를 세심하게 살펴보았던 <요리 인류>는 이제 그저 먹거리로서가 아니라, 함께 나누는 교감의 도구로서 빵의 철학적, 인류학적 의미를 짚어본다. 그것은 단지 빵에 담긴 속뜻만이 아니다. 에티오피아의 80cm 빵에서부터, 프랑스 전통 빵의 커다란 크기, 모로코의 동네 화덕에서 구워진 빵 등을 통해 공동의 요리 과정으로 공유할 수밖에 없었던 빵의 제작 과정 또한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공동의 식사가 된 빵이 예수의 살로 상징되는 존재가 될 수 있는 인과 관계를 개연성 있게 그려낸다.

<요리 인류>는 각론으로 들어간 빵, 고기, 스파이스를 그려내면서 요리를 발전시킨 과정과 요리하는 인간에 대해 정의하고자 한다. 그것이 바로 7편 <요리한다, 고로 인간이다>와 8편 <마지막 한 접시>이다.

요리하니 고로 인간이다 

 <요리인류-마지막 한 접시>의 한 장면

<요리인류-마지막 한 접시>의 한 장면 ⓒ KBS

<요리 인류>가 본 인류의 요리 과정은 변화와 발전, 융합으로 정의되는 창조의 과정이다. 그것을 위해 자신들의 정서를 살려 서양 요리계에서 인정받은 일본 요리사를 시작으로 과학적으로 요리에 접근해 신세계를 개척하는 일군의 요리사까지 새로운 요리의 영역을 끊임없이 개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하지만 이렇게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은 오늘날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짚는다. 글루텐이 없어서 빵으로 만들 수 없는 곡식을 발효시켜 빵으로 만들어 낸 에티오피아 원주민의 이야기를 통해 인류의 역사 자체가 새로운 요리의 발명이며, 그것은 언제나 발전과 융합이라는 과정을 통해서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요리를 통해 인간됨을 증명한 인류사에서 <요리 인류>가 기억하고자 하는 음식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제는 미국 음식의 대명사가 된 바비큐를 통해 다큐가 짚고자 하는 것은 수백 도의 열을 견디며 불을 다뤘던 미국 흑인 노예들의 숨겨진 역사이며, 바다 건너 일본으로 들어와 스펀지 케익이 카스텔라가 되는 과정에서 죽은 딸의 자식조차 한껏 거둘 수 있어 행복한 한 가장의 행복이다. 또한 바나나 나무처럼 보이지만 바나나가 열리지 않아 서구의 장식재로나 쓰이는 가짜 바나나 나무줄기와 뿌리를 짓이겨 며칠의 발효를 거쳐 빵으로 만들어 내는 기근에 시달린 에티오피아의 아내들의 눈물 어린 빵이 그것이다.

8편에서 몸소 바비큐의 열기를 체험한 이욱정 PD는 말한다. 세계 각국의 진기하고 화려한 요리는 많지만 가장 요리다운 요리는 맛있고 아름다운 요리가 아니라, 각국의 재래시장이나 서민들의 밥상에서 만날 수 있는, 삶을 반영한 가장 평범한 요리라고.

펄떡거리던 싱싱한 재료들이 장인들의 굳은 손을 통해 선연한 빛깔의 먹음직스런 요리로 재탄생되는 과정을 보노라면 에티오피아의 오랜 발효를 거친 구멍이 숭숭 뚫린 빵조차 신기한 먹거리로 입맛을 다시게 만든다. 빵을 찍어 먹는 순록의 피가 퐁듀의 녹은 치즈처럼 느껴진다. 사슴의 쭉 늘어진 혀가 어쩐지 새로운 요리로 기대된다. 낯선 문화가 이질적이고 생경한 질감이 아니라 그저 사람 사는 세상의 당연한 먹거리로 변모된다. 그리고 가짜 바나나 나무 밑동을 한없이 긁어대는 에티오피아의 아내들이, 통돼지를 요리하기 위해 불에 쩔은 남부인들의 검은 얼굴이 한없이 정겹다. 다큐가 비추듯 일류 요리사의 손과 그들의 손이 다르지 않고, 화려한 그릇에 담긴 진수성찬과 질박한 그릇에 담긴 누추한 음식이 별반 차이가 없다. 오래되고, 새로운 것의 낯섦이 사라진다. 그저 오래오래 이 눈을 현혹하고 침샘을 자극하는 요리 성찬에 눈을 빼앗기고 싶을 정도다.

요리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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