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펀치> 13회의 한 장면. 어제의 적이었던 박정환(김래원 분) 검사와 이태준(조재현 분) 검찰총장이 대통령까지 오르려는 윤지숙(최명길 분) 국무총리 내정자를 낙마시키기 위해 중국집에서 만났다.

지난 27일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펀치> 13회의 한 장면. 어제의 적이었던 박정환(김래원 분) 검사와 이태준(조재현 분) 검찰총장이 대통령까지 오르려는 윤지숙(최명길 분) 국무총리 내정자를 낙마시키기 위해 중국집에서 만났다. ⓒ SBS


SBS 월화드라마 <펀치>가 끝나면 짜장면이 먹고 싶다. 24시간 중국집이 없어 짜파**로 아쉬움을 달랬다는 일화도 심심찮게 들린다. "<펀치> 보며 짜장면 시켰는데 한 시간째 안온다"는 한 누리꾼의 토로를 보면 다들 같은 마음인가 보다. 극 중 박정환 검사(김래원 분)가 성원각 짜장면이 맛있다고 추천해서 집 근처 성원각 검색해 본 시청자, 분명 있을 거다.

<펀치> 제작진은 "지인으로부터 짜장면의 매출이 평소보다 많이 올라갔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짜장면 신이 화제가 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 정도면 본격 짜장형 정치 드라마, 전국중국집연합에서 감사패라도 증정해야 하는 작품이다.

<펀치>에는 짜장면 외에도 유난히 먹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식사신은 박경수 작가의 전작 <추적자> <황금의 제국>에서도 두드러졌는데, 법조계 권력의 비리와 유착을 그리는 <펀치>에서 함께 먹는다는 건 '식구'가 된다는 의미에 가깝다. 하지만 밥상을 떠나면 식구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한 회에만 적이 됐다가 동지가 됐다가 다시 뒤통수를 친다. 서로에게 펀치를 날리지 않는 건, 밥 한 끼를 나눈 식구가 아니라 피를 나눈 가족뿐이다.

<메뉴판>

* 커피 – 검은 설탕 한 스푼+흰 설탕 한 스푼
: 엄선된 고급 원두만을 사용해 진하게 내린 시커먼 블랙커피에 흑설탕과 백설탕을 함께 넣는 것이 특징. 설탕을 아무리 넣어도 까맣다.

 <펀치> 1회의 한 장면. 윤지숙 법무부 장관이 비리검찰을 블랙커피에 비유했다.

<펀치> 1회의 한 장면. 윤지숙 법무부 장관이 비리검찰을 블랙커피에 비유했다. ⓒ SBS


첫 회, 법을 다루면서 불법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온 이태준(조재현 분) 서울지검장이 검찰총장 내정자가 됐을 때, 윤지숙(최명길 분) 법무부 장관은 그의 앞에서 블랙커피를 저으며 "국민들이 보는 검찰이 이래요"라고 조롱했다. 이어 설탕과 프림을 섞어 색이 연해진 커피를 두고 "청렴한 리더가 나서고 강직한 후배들이 뒤따르면 우리 검찰도 조금은 깨끗해지겠죠"라고 꼬집었다. 이에 이태준은 흰 설탕을 불에 까맣게 태우며 "야는 흰데 이거는 와 이리 시커멓노 캐도, 일마 이거 설탕입니데이"라고 응수했다.

극이 중반을 지난 지금은 윤지숙 장관도 태우면 까매지는 백설탕이다. "법은 하나"라는 원칙으로 강직하게 살아온 듯했던 그는 아들의 병역비리를 덮기 위해서라면 흑설탕 이태준과도 한 커피 안에 섞일 수 있다. 이제 막 판사가 된 아들을 지키는 어머니 코스프레를 하던 윤지숙은 어느새 국무총리, 아니 대통령 자리까지 넘보며 순백의 흰색으로 가렸던 욕망을 드러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커피의 색을 연하게 만드는 건 설탕이 아니라 프림이다.

* 홍어삼합 – 이게 바로 '화합' 아니겠어요?
: 저온숙성으로 삭힌 홍어와 오래 묵힌 묵은지의 조합. 예의 '썩은' 맛은 처음엔 거부감이 들지만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 '화합'이 필요한 이와 함께 나누면 막힌 대화가 뻥! 콧구멍도 뻥!

 <펀치>에서 홍어삼합은 이태준 검찰총장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그의 힘을 상징했다.

<펀치>에서 홍어삼합은 이태준 검찰총장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그의 힘을 상징했다. ⓒ SBS


이태준 총장은 파스타를 좋아하는 윤지숙 장관에게 "입맛을 맞춰 달라"며 자신이 좋아하는 홍어를 같이 먹자고 제안한다. <펀치>에서 홍어는 이태준의 힘을 상징하는 음식이지만, 오래 삭히고 묵힌 재료들로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맛을 내는 홍어삼합은 어떤 방법으로든 법조계에서 승승장구해 온 두 사람 모두와 잘 어울린다.

1차 홍어회동은 이태준이 윤지숙 아들의 병역비리 증거를 손에 쥐고 흔들면서 이뤄졌지만, 이태준이 오션캐피탈 실소유주 김상민 회장의 비리에 연루됐다는 진술서의 행방을 들은 윤지숙이 홍어를 입에도 대지 않으면서 협상은 결렬된다. 하지만 진술서는 없었고, 다시 궁지에 몰린 윤지숙은 2차 홍어회동에서 "경상도 출신인 총장님과 서울 토박이인 제가 전라도 음식을 먹는 것이 화합 아니겠어요?"라며 홍어를 꼭꼭 씹어 넘긴다.

* 짜장면 - '썸'타듯 쫄깃한 면발
: 동지인 듯 동지 아닌 동지 같은 '썸'을 타는 것처럼 탱글탱글 쫄깃한 긴장감이 살아 있는 면발이 일품. 새하얀 것 같은데 벗겨도 벗겨도 껍질만 있을 뿐 속이 없는 양파와 함께 먹으면 금상첨화다.

 <펀치> 1회에서 이태준의 '왼팔'이었던 박정환이 '오른팔' 조강재를 겨냥해 "북경반점 주방장 바뀌고 맛이 없다"고 했던 그 짜장면이다.

<펀치> 1회에서 이태준의 '왼팔'이었던 박정환이 '오른팔' 조강재를 겨냥해 "북경반점 주방장 바뀌고 맛이 없다"고 했던 그 짜장면이다. ⓒ SBS


가난했던 시절 최고의 음식을 상징하는 짜장면은 '개천에서 난 용' 박정환과 이태준이 즐겨 먹는 메뉴다. 박정환은 이태준을 총장으로 만들고 그 자리를 물려받기 위해 충견이 되어 무슨 일이든 했지만, 뒤통수를 맞은 뒤 이태준 저격수가 됐다.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났던 두 사람은 13회에서 다시 짜장면을 두고 마주 앉았다. 윤지숙에게 딸 예린의 부정입학이라는 발목이 잡힌 박정환은 이태준과 손을 잡았고, 병역비리를 터뜨려 윤지숙을 총리내정자에서 낙마시켰다.

이날 짜장면 회동의 장소는 성원각이었다. 이태준의 '오른팔' 조강재가 시킨 짜장면을 두고 "북경반점 주방장 바뀌고 짜장면 맛없으니 성원각에서 시키라"고 했던 '왼팔' 박정환의 맛집이다. 하지만 다시 이태준과 박정환이 서로를 겨누면서 다음 짜장면 회동 장소는 북경반점이 됐다. 이 자리에는 두 사람의 음식인 짜장면도, 이태준도 없었고 스폰서 검사로 수감됐다 풀려난 조강재와 고급요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뇌종양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박정환에게는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비록 성공에 눈이 멀어 불법도 서슴지 않는 인생을 살았지만, 딸 예린이는 자기처럼 뛰어가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 피 튀기는 식탁 위에서 박정환은 가족과 함께 진짜로 맛이 있는 따뜻한 밥 한 끼를 먹고 떠날 수 있을까. 그나저나, 성원각이랑 북경반점 짜장면 맛의 차이는 알려주고 떠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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