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백>을 기억하시는가. 그 충격적인 작품의 원작자 미나토 가나에만큼 '핫'한 일본 소설가가 또 있을까. 그의 소설은 출간 직후 영화, 드라마의 직행열차를 타는 중이다. 작품 수로는 히가시노 게이고를 넘어 서기엔 아직 역부족이지만, 일본 추리문학의 거장 미야베 미유키 이후 여류소설가로는 단연 독보적인 존재로 우뚝 섰다.

그도 그럴 것이, 2008년 데뷔작인 <고백> 이후 그의 소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영화와 연속드라마, 스페셜 드라마로 제작됐다. 더불어 <갈증>의 나카시마 테츠야, <절규> <밝은 미래>의 구로사와 기요시, <어둠의 아이들>의 사카모토 준지 등 일본의 거장들이 속속 그의 소설을 영화화한 바 있다. 

1973년생으로 35살에 <고백>으로 장편 데뷔, 그해 제6회 서점대상 등 미스터리 소설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미나토 가나에는 2007년 제29회 '소설 추리' 신인상을 수상한 단편 <성직자>로 정식 데뷔했다. 대학 졸업 후 의류회사에서 1년 반을 일하기도 했던 그는 이후 남태평양의 오지에서 2년 간 봉사활동을 체험한 후, 본격적으로 방송 시나리오, 소설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성실한 글쓰기에 몰두한 끝에 지금의 위치에 올라섰다.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을 사랑했던 '공상을 즐기는 아이'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잔혹하고 집요하게 묘사하는 소설가'로 성장한 미나토 가나에. 그의 소설 중 가장 최근 영화화된 <백설공주 살인사건>(2월 12일 개봉)은 재미와 의미, 완성도를 두루 갖춘 보기 드문 잘 만든 일본영화다. 이 작품을 만나기에 앞서 비정한 휴머니즘을 파헤치는 미나토 가나에 원작의 영상 작품들을 맛보기 해 보자. 

21세기 일본영화의 걸작,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고백>

 소설 <고백>의 한국판 표지와 영화 <고백> 포스터.

소설 <고백>의 한국판 표지와 영화 <고백> 포스터. ⓒ 비채, 미로비젼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에서 어린 딸을 잃은 여교사 유코. 봄방학을 앞둔 종업식 날, 그녀는 학생들 앞에서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를 입을 연다. '내 딸을 죽인 사람은 바로 우리 반에 있습니다'라는 충격적인 고백이었다. 형사적 처벌 대상이 아닌 열세 살 중학생들이 벌인 계획적인 살인사건. 그녀는 범인들에게 가혹한 복수를 실행하는데…."(소설 <고백> 소개 중)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으로 일약 일본을 대표하는 비주얼리스트로 떠오른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 그는 아동 살해와 에이즈, 그리고 처절한 복수가 넘실거리는 이 충격적인 이야기를 유려한 화면과 현란한 편집, 그리고 영상과 대조를 이루는 음악으로 여타 소설 원작의 영화화를 간단히 뛰어 넘어 버렸다. 끊임없이 교차되는 시점과 편집, 그 위로 흐르는 독백체의 내레이션은 마치 충돌과 조화의 몽타주라 부를만 하다.  

마츠 다카코가 연기하는 여교사 유코는 '중2병'에 걸린 이기적이면서도 순백인 듯한 학생들을 단호하게 궁지로 몰아간다. 그 이야기 안에 미나토 가나에가 전하는 '악의'의 연쇄는 아이러니한 영화적 문법으로 극대화된다.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은 지난해 <고백>의 세계관을 더 극단으로 밀어 붙인 <갈증>이란 또 한 편의 걸작을 내놓기도 했다.

'심리 호러의 달인' 구로사와 기요시가 창조한 서늘한 드라마 <속죄>  

 소설 <속죄>의 표지와 드라마 <속죄>의 포스터.

소설 <속죄>의 표지와 드라마 <속죄>의 포스터. ⓒ 북홀릭, WOWOW


"한 초등학생 소녀가 살해당한다. 죽은 소녀의 친구이자 사체의 첫 발견자인 네 명의 소녀들은 범인을 직접 봤음에도 범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진술한다. 그렇게 범인이 잡히지 않은 채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네 명의 소녀들을 의심하기 시작한 죽은 소녀의 엄마는 중학생이 된 네 아이들을 불러 충격적인 말을 던진다.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에 범인을 찾아내. 아니면 내가 납득할 수 있도록 속죄를 하라고. 그러지 않으면 난 너희들에게 복수할 거야.'" (소설 <속죄> 소개 중)

일본 공포영화의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는 원작 소설의 5개 챕터 구성을 그대로 가져왔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성인이 된 네 소녀들에게 과거 살인사건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이 주제가 말 그대로 서늘하고 냉정하게 펼쳐진다. 그 서늘한 공포가 웬만한 심리호러 뺨친다. 사실 현대인들에게 내재된 불안과 공포의 발현이야말로 구로사와 기요시의 주제였다. 

'일본의 HBO'라 불리는 케이블 채널 WOWOW가 5부작 드라마로 완성했고, 각 회 주인공인 네 소녀로 아오이 유우, 코이케 에이코, 안도 사쿠라, 이케와키 치즈루가 출연했다.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5시간 감독판으로 상영돼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엄마 역할의 코이즈미 쿄코의 신경증적인 연기가 일품이며, <절규>에 출연했던 카세 료도 조연으로 얼굴을 비춘다.

미스터리와 멜로, 그리고 상처입은 인간에 대하여, 드라마 <N을 위하여>

 소설 <속죄>의 표지와 드라마 <N을 위하여>의 포스터, 작가소개

소설 <속죄>의 표지와 드라마 의 포스터, 작가소개 ⓒ 재인, TBS


"도쿄의 한 초고층 호화 맨션에서 대기업 간부인 노구치와 그의 아내 나오코가 살해됐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된다.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 있던 네 명의 젊은이로부터 사건에 관한 진술을 받고, 범인 본인의 자백과 나머지 세 사람의 증언을 토대로 니시자키 마사토를 체포한다. 그리고 재판 결과 그는 10년형을 선고받는다. 그리고 10년 후..." (소설 <N을 위하여> 소개 중)

(원작의 시간대를 살짝 바꾼)드라마 <N을 위하여>는 그리고 14년 후, 과거 살인사건의 목격자 중 한 명인 노조미가 연루된 방화사건을 쫓는 전직 경찰 타카노의 수사를 바탕으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집요하게 묻는다.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노조미와 과거 'N을 위하여' 프로젝트인지가 무엇이지, 또 동향인 노조미와 나루세의 과거가 어떻게 현재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2014년 4분기에 방송된 드라마는 지속적으로 과거와 대과거, 현재가 교차하는 복잡한 구성 아래 미스터리와 로맨스를 부지런히 뒤섞는다. 장르 팬들에게 꽤나 매력적인 소재가 분명하다. 그리하여 주인공들 각자 지닌 과거의 기억들이 현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왜', '어떻게' 살인사건에 연루됐는지 밝혀가는 이 드라마는 <고백> 이후 미나토 가나에의 변화상을 읽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교육제도와 입시를 조롱하는 각본가 미나토 가나에의 시선, 드라마 <고교입시>

 소설 <고교입시>의 표지와 드라마 <고교입시> 포스터.

소설 <고교입시>의 표지와 드라마 <고교입시> 포스터. ⓒ 북폴리오, 후지TV


"지역 내 가장 우수한 고교인 다치바나이치고. 이치고의 합격 여부는 지역에서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나누는 척도다. 외국에서 온 이치고 신임 교사 하루야마 쿄코는 이런 상황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입시 하루 전날, 고사장마다 '입시를 짓밟아버리자'라는 문구가 적힌 벽보가 붙어 있는 등 불길한 징조가 발견된다. 그리고 입시 당일, 시험 문제 유출과 시험지 분실 등 일대 소란이 일어나고 이 상황이 인터넷 게시판에 중계되는데..."(소설 <고교입시> 소개 중)

2012년 3분기 나가사와 마사미 주연의 12부작 드라마로 제작됐다. 미나토 가나에 본인이 직접 드라마 대본을 쓴 특이한 사례. <고백>을 연상시키듯 학교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고교입시를 둘러싼 일대 소동을 선생님들의 시선에서 그려나간 드라마다.

학생들의 무심함과 악의는 주로 게시판을 통해 그려지고, 그와는 다른 세계에 산다는 듯 그저 관행과 제도, 개인사에 몰두하는 교사들의 행태가 고발된다. 한 회 한 회 무슨 일이 벌어질까에 대한 궁금증을 잘 심어 놓은 이 드라마는 교육제도에 관한 풍자와 느릿한 '후더닛' 구조를 잘 버무려 놓은 작품이라 할 만하다. 군계일학의 미모를 뽐내는 나가사와 마사미의 팬들이라면 환영할 만한 드라마.

인간의 악의를 고발하는 미나토 가나에 원작의 최신작, <백설공주 살인사건>

 소설 <백설공주 살인사건>의 일본판 표지와 영화 포스터.

소설 <백설공주 살인사건>의 일본판 표지와 영화 포스터. ⓒ 集英社, 제인앤유


그리고 <백설공주 살인사건>. '백설공주' 비누 회사에 근무하는 미모의 여직원이 잔인하게 살해당한 뒤, 범인을 추측하는 증언들이 온라인상에 화제로 떠오르고 한 방송국 PD가 이를 취재해 나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일본에서 2012년 발간된 동명 소설(한국에선 올해 발간 예정)을 원작 삼아 <골든 슬럼버>의 나카무라 요시히로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매스미디어와 SNS의 결합이 빚어낸 마녀사냥과 그에 앞서 사람들의 편견이 살아 숨쉬는 현대 사회의 이면, 그리고 살인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의외의 반전까지. 원작의 탄탄한 구조를 스크린으로 옮긴 이 영화는 작가주의와 대중영화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클라이맥스엔 과하지 않은 감동을 안겨주기까지 한다. 소재적으로 강한 <고백>이 MSG가 듬뿍 뿌려졌다면, 반면 역시나 살인사건이 등장하는 이 작품은 좀 더 유머러스하고 담백하다고 할까.

<백설공주 살인사건>은 인간의 '악의'를 그리는 미나토 가나에의 작품세계와 일맥상통하는 동시에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이의 심정까지 헤아리게 되는 사려 깊은 작품이라 할 만하다. 미나토 가나에의 말마따나, 사회와 인간의 부조리와 대면을 했을때 더 큰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누구도 자신 안의 악의를 직시하고 싶지는 않겠죠. 하지만 그것을 알아차려야만 진정한 의미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도 생각해요. 서로 증오하는 사람들이 손을 맞잡기 위해서는 그들이 자신 안에 있는 감정과 격하게 마주볼 필요가 있죠. 다만, 현실생활 속에서 너무나도 자주 악의가 표출되는 것은 좋지 않겠죠. 픽션을 통해서 악의를 깨닫고, 현실 속에서 좋은 사람이 된다면 그게 최고가 아닐까요?"(일본 서평지 <다빈치>와의 인터뷰 중)

미나토 가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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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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