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취재/이미나 기자·사진/권우성 기자| 기자회견이 끝난 현장에 사람들이 줄지어 섰다. 어쩌다 우연히 현장을 찾게 된 이들도, 팬들도 아니었다. 바로 이 기자회견장을 취재한 기자들이었다. 취재수첩이 즉석에서 사인지가 됐고, 뷰파인더 밖에 서 있던 기자들이 그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이 보기 드문 현장의 주인공은 매주 일요일 정오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전국, 노래자랑~!"의 주인공, 현역 최고령 MC, 방송인 송해다.

송해 "젊어 보이려 청바지 입었어요" 국내 최고령 방송진행자 송해가 22일 오후 서울 종로 국일관에서 열린 '송해쇼 제3탄 - 영원한 유랑청춘' 기자간담회에서 "젊어 보이기 위해 청바지를 입었다"며 기자들에게 청바지 입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송해 "젊어 보이려 청바지 입었어요" 국내 최고령 방송진행자 송해가 22일 오후 서울 종로 국일관에서 열린 '송해쇼 제3탄 - 영원한 유랑청춘' 기자간담회에서 "젊어 보이기 위해 청바지를 입었다"며 기자들에게 청바지 입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권우성


22일 서울 종로구 관수동의 한 연회장에서 열린 <송해쇼> 기자간담회. 패딩 점퍼에 청바지 차림으로 취재진 앞에 선 그는 "웃으며 산다는 것의 의미를 전하고 싶다"는 각오를 전했다.

2월 19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 홀에서 시작돼 부산과 창원에서 이어지는 <송해쇼>는 추억의 코미디를 재현해 보이는 1부와 송해의 삶을 소재로 한 뮤지컬 토크쇼인 2부로 나뉘어 공연된다. 아흔을 앞둔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하루에 두 시간씩, 총 2회의 공연을 펼친다는 건 주목할 만한 행보다.

88세 그가 연습에 구슬땀 흘리는 이유

"연예계 원로들이 공연하는 걸 보면 속된 말로 '재탕'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 송해는 <송해쇼> 2부 뮤지컬 토크쇼를 위해 따로 노래 연습에 들어갔다고 한다. "연습을 안 할 수가 없다"는 게 구성과 연출을 맡은 김일태 작가의 말이다.

김 작가는 "이번 쇼를 진행하며 '이제 선생님이 노래를 잘 하는 건 사람들이 다 안다, 하던 노래를 똑같이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라며 "돈 내고 오는 관객에게 노력하고 땀 흘리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걸 강조했다"고 말했다.

특히 2015년은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로, 1927년생 송해에게는 더욱 의미가 깊다. 송해는 "개인적으로는 실향민으로서 세상에 남기지 않으면 안 될 분단이라는 경험을 한 아픔이 있다"며 "광복 70년이자 분단 70년인 올해, <송해쇼>를 통해 지금까지의 70년을 돌아보고 또 앞으로의 30년을 살아가는 데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생이라는 게 다 즐거움만 있는 건 아니더라고요. 살다 보면 어려움도 있고 힘든 일도 있지만, 즐거우나 슬프나 외길을 걸어가야 하는 인생의 뒷이야기가 많아요. 이렇게 고달픈 인생이지만 한편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살다 보니 '인생이란 살만한 것이다'라고 느껴지더군요. 제가 살아온 그동안의 이야기를 여러분께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공감하는 분도 많이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이라 해도 세상을 살아가는 데 참고가 되었으면 해요."

 22일 오후 서울 종로 국일관에서 '송해쇼 제3탄 - 영원한 유랑청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내가 걸어온 길이나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하고 싶지만, 질문하는 사람에게 용기를 심어주고 싶다." ⓒ 권우성


공연장에 들어선 관객의 질문을 받아 송해가 즉석으로 답하는 코너도 마련됐다. 김 작가는 "'어떻게 하면 송해처럼 살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도 들어오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그때 송해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그 말을 들은 관객이 무엇을 느낄 것인가가 이번 <송해쇼>가 주는 메시지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런 질문이 들어오면 어떻게 답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너털웃음부터 터뜨린 송해도 "내가 걸어온 길이나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하고 싶지만, 질문하는 사람에게 용기를 심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마이크 앞에서 엎어질 때까지 내 이야기 전하는 게 사명"

1955년 창공악극단 멤버로 데뷔한 송해는 1986년부터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전국, 노래자랑~!"을 외쳤다. 프로그램이 쌓아온 세월만큼 송해 또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친숙한 인물이 됐다. "길을 지나가다 만난 사람들에게 '당신 건강해야 해, 당신이 건강해야 우리가 건강해'라는 말을 들을 때 이렇게 버티고 살아온 보람을 느낀다"는 송해는 "요즘도 사람을 만나면 다 내 재산이 되는 것 같다. 길을 가다 보면 대인도 만나고 소인도 만날 수 있지만 그게 다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세상을 떠난 정주영 선생(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기자 주)이 나만 만나면 '세상의 제일 가는 부자가 오셨구려'라고 했어요. 처음엔 발끈했죠. 두세 번 그러기에 이유를 물었더니 '사람을 많이 아는 사람이 세상의 부자인데, 송해 선생님만큼 사람 많이 아는 사람이 어디 있나'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절을 했죠. '앞으로 써 먹을 이야기를 주셔서 고맙다'고요. 그 후로 그 분을 만나 '아이고, 2등 부자 오셨습니까' 하면 (정주영 회장이) 웃었지요."

지금도 "소속사 사무실인 낙원상가 인근에서 종로까지 걷다 보면 20분이 넘게 걸린다"는 송해다.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간혹 가다 사진도 찍는다고 한다. 송해는 "젊은 친구들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는데 행복하다"며 "그렇게 젊은 친구들에게 사진을 남겨놨으니 오래 남을 거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거리에서 인사하고 다니는 게 얼마나 훈기 나고 아름다운 일인지 모르겠다"라고 말한 송해는 "그런 의미에서 내 인생의 봄날은 이제부터다. 앞으로도 열심히 살겠다"며 활발한 활동을 다짐했다.

"앞으로의 계획요? 나도 몰라요. 혈혈단신으로 남쪽으로 와서 이 시간이 올 때까지… 3년 계획을 못 세워봤어요. 방송 일하는 사람들은 개편 때가 다가오면 피가 말라요. 기약이 없거든요. 평생 비정규직인 게 우리들이에요. 3년 계획을 못 세우고 살아온 인생이라고 하니, 제가 얼마나 방황했는지 아시겠죠?(웃음)

하지만 그것도 또 못해보고 고생하는 분들이 비일비재해요. 그런 분들에게 저의 이야기가 용기가 되리라 믿어요. 나를 믿고 인내해 꿈과 희망을 찾아야 해요. 제가 언제까지 활동할지는 미지수지만, 저는 방송인이기 때문에… 무대 위에서, 마이크 앞에서 엎어질 때까지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게 사명이라 생각해요."

송해 '제 건강은 '혀'가 증명합니다' 국내 최고령 방송진행자 송해가 22일 오후 서울 종로 국일관에서 '송해쇼 제3탄 - 영원한 유랑청춘'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혀'를 본 의사가 '건강하게 몇십년 더 지낼 수 있다'고했다며 '혀'를 내보이고 있다.

▲ 송해 '제 건강은 '혀'가 증명합니다' 국내 최고령 방송진행자 송해가 22일 오후 서울 종로 국일관에서 '송해쇼 제3탄 - 영원한 유랑청춘'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혀'를 본 의사가 '건강하게 몇십년 더 지낼 수 있다'고했다며 '혀'를 내보이고 있다. ⓒ 권우성


이날 얼마 전 한 프로그램에서 "140살까진 살겠다"는 덕담을 들은 일화를 전하며 혀를 내보이기도 한 송해는 "그건 너무 지루할 것 같고, 내가 여러분 앞에서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고 내 몸 내가 추스를 수 있을 때까지만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4∼5시간 공연이 끝나면 젊은 사람도 지쳐서 쓰러지는데, 송해 선생님은 끝나도 콧노래를 부른다"는 <송해쇼> 출연 가수 문연주의 증언(?)을 참고해 보면 꽤나 오랜 시간 후에나 생길 일일 듯싶다.

'도전엔 나이가 없다'는 말은 송해에겐 통하지 않는 말이었다. 아니, 아직도 그는 '청년'이었다. 취재진에게 보낸 기자간담회 초대 이메일은 다름 아닌 '청년 송해'에게서 온 것이었다. 모든 말을 마친 이 '청년'은 다시 총총히, 종로 거리를 걷는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

"88살 되는 송해가 짱짱하게 극장 쇼를 합니다."

송해 전국 노래자랑 송해쇼 김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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