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동의 강점은 '활력'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혹자들은 "시끄럽다"고 폄훼하지만, 그가 <1박2일>이나 <무릎팍도사>에서 보여준 대체불가의 그 활력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것만큼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나 '승부사'로 불리며 나영석 PD와 즉석대결에 나섰던 강호동의 '기질'은 종종 풍성한 에피소드를 만들며 <무한도전>과 함께 리얼 버라이어티의 한 축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그랬던 그가 컴백과 함께 순해졌다. 이미지를 신경쓰다 보니 자꾸 그 활력과 기질을 제어하게 된다. 프로그램도 흥이 안 살고, 본인 역시 그걸 아는 눈치다.

21일 방송된 KBS 2TV <투명인간>의 오프닝은 그러한 암묵적 동의의 증거와도 같았다. 이제 3회를 맞는 신생 프로그램의 메인MC가 갖는 부담감을 감안하더라도, 강호동이 내뱉은 한 마디는 꽤나 솔직해 보였다.

"저는 진심으로... '예체능'(<우리동네 예체능>)이랑 맞는 것 같아요."

강호동의 고백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

 KBS <투명인간>의 한 장면.

KBS <투명인간>의 한 장면. ⓒ KBS


사실 <우리동네 예체능>이야말로 연이은 프로그램 폐지로 절치부심했을 강호동에게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울 놀이판이었을 것이다. 운동선수 출신인 그가, 특히나 승부사 기질이 강한 그가 훈련과정과 동료애와 승부의 감동이 모두 어린 예능을 만난 것은 20년이 넘는 방송생활 중 처음이 아니던가.

스포츠에 특화된 이 예능은 특히나 사회 체육인들과의 조화로 의미를 더하기도 했다. KBS가 화, 수 오후 11시대를 모두 맡겼음에도 불구하고, 강호동 입장에서는 "예체능..."이라고 속내를 비출 만하지 않은가.

그러나 강호동과 <투명인간>의 갈 길은 험난한 것이 사실이다. 지난 7일 1회 4.0%(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으로 출발한 시청률은 3회에서 3.2%까지 떨어졌다.

'하지원 특수'를 인정한다 해도, (최근 지상파 시청률 추이를 감안하면) 수직 하락에 가깝다. 이유는 내부에 있다. 단적으로, '어떻게'까지는 그나마 알겠는데, '왜'는 도무지 알 길이 없어 보인다.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다는 말이다.

이럴거면 직장인들을 스튜디오로 초대하지 그랬나

 KBS <투명인간>의 한 장면.

KBS <투명인간>의 한 장면. ⓒ KBS


"직장인들을 위해 MC와 게스트가 뭉쳐 한 직장을 찾아가 그들과 신나는 투명인간 놀이를 펼치는 프로그램."

<투명인간>의 제작 의도다. 그 의도가 언제나 프로그램 내용에 반영되는 것도, 꼭 그래야만 하는 것도 아니지만, 오독을 한 것이 아닌 이상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기도 하다. 강호동과 게스트들이 직장인들을 웃기는 미션과 승부가 과연 시대적인 트렌드나 시청자의 기호와 부합하는지 반문하고 싶다.

실제 방송을 보면, 출연 직장인들의 반응은 연예인을 가까이서 봤다는 신기함이 가장 크다. 웃고 안 웃고는 전적으로 개인의 성향이나 성격, 그리고 MC들의 아이디어에 맡길 뿐이다. 기준은 오로지 시간제한이다. 이를 본 시청자는 그저 업무에 지쳤을 직장인들이 휴가를 가기만 빌어 주지 않을까. 

<투명인간>은 직업의 특성도, 직장인 개개인의 캐릭터도 가져오지 못한 채 중반부까지 게임에 몰두한다. 직장인 출연자들은 대략 두 부류로 나뉜다. 미인형의 여성과 개성 강한 남성 출연자들. 그저 그들은 쉽게 눈에 띄거나 웃음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인물들을 고른 것으로 보인다.  

그럴 거라면, 스튜디오에 초대하지 굳이 왜 번거롭게 사무실을 직접 찾아가 촬영하는지 납득이 가지 않을 정도다. 설마 이 프로그램의 기획 시기가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킨 드라마 <미생>과 겹쳤던 건 아니기를.

설마, 드라마 <미생>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건 아니죠?

 KBS <투명인간>의 한 장면.

KBS <투명인간>의 한 장면. ⓒ KBS


후반부 '사장님과의 대화'는 더더욱 당혹스럽다. 게임 후 몇몇 직원들을 사장님과 독대시켜 당혹스러움과 어색함이 난무하는 그 자리가 '격한' 재미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직장인들의 일상을 조명하는 <투명인간>만의 신선함을 확보할 수 있다고 믿은 걸까.

아마, 녹화 후 그 직장 내 구성원들에게는 재밌는 후일담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방송에서 그게 전달되지 않는 걸 어떡하나. <투명인간>의 추락하는 시청률은 그 출발에 있다. 감각적인 편집도, 신선한 의미도, 절정의 예능감을 자랑하는 멤버 없이 어정쩡한 주제를 예능에 녹여내겠다는 연출 의도 말이다.

오후 11시대 예능프로그램과 토크쇼가 힘을 잃은 지 오래다. 여타 디지털 플랫폼으로 이용하는 젊은 시청자들을 종편에, 케이블에 뺏기고 있는 상황이다. 공영방송 KBS는 시청률 인상을 천명하며 대대적인 개편에 나섰다.

그러면서, 공익적인 프로그램과 보수적인 색깔을 혼동하는 프로그램들이 다수 등장했다. 성격은 조금 다를 수 있지만, <투명인간>은 아마도 현재 KBS가 보여준 방향성의 실패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프로그램으로 남을 것 같은 예감이다. 의욕적으로 참여했을 강호동에겐 유감이 아닐 수 없다.

투명인간 강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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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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