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다큐 프라임> '공부 못하는 아이'

EBS <다큐 프라임> '공부 못하는 아이' ⓒ EBS


2008년부터 교육에 대한 문제를 진지하게 짚어보기 시작했던 EBS <다큐 프라임>은 2015년 새해를 맞이하여, '공부 못하는 아이'란 기획을 1월 5일부터 5부작으로 방영했다. 1부 '공부 상처', 2부 '마음을 망치면 공부도 망친다', 3부 '성적표를 뛰어넘는 성공비밀', 4부 '지능이 아니라 마음이다', 5부 '마음이 자라는 180일'로 이루어진다.

<다큐 프라임>은 이를 위해 2013년 12월부터 1년 동안 전국의 초중고 학생들을 상대로 '공부를 못하는 아이로 산다는 것은'이라는 공모전을 열었고, 여기에 모인 300여 편의 수기, 애니메이션, 포스터, 영상 작품 등을 통해 '공부 못하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나는 공부 못하는 아이'...공부에 상처받은 학생들

그렇다면 이른바 '공부 못하는 아이'란 누구일까? 대한민국의 초, 중, 고교생들 중 누가 자신을 공부 못하는 아이라 생각하고 있을까? 1년간의 공모전은 놀라운 대한민국 교육 현실을 전한다. 아이들이 거의 대부분 자신들을 공부 못하는 아이라 정의 내린 것이다. 전교 1등이면서도 아이는 공부가 무섭다고 하고, 공부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견디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 둔 아이도 있었다.

동영상 속 미국 소녀가 말하듯, 부모들은 열 살 먹은 아이가 당장 내일 대학을 가기 위한 시험을 치르기라도 하듯 아이들을 닦달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공부로 인격조차 순위를 매기는 학교에서, 그런 학교 성적 때문에 다시 닦달하는 부모로 인해 씻을 길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다. 대한민국 학생 중 99%가 공부로 인해 상처를 받는 현실, 그것이 대한민국의 교육이다.

2부에서는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한 실험을 한다. 수학 시험을 치르기 10분 전, 한 그룹의 아이들에게는 기분 나빴던 일을 쓰게 하고, 그렇지 않은 다른 그룹과 함께 시험에 임하게 한다. 놀랍게도 단지 기분 나빴던 일을 쓰기만 했던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평균 5점의 점수 차이가 난다. 문제를 푸는 방식에서도 차이가 난다. 80여 문제를 한 그룹은 강압적으로, 또 다른 그룹은 원하는 대로 풀게 만들었을 때 두 그룹의 집중력 시간은 물론, 문제를 푼 개수에서조차 현격한 차이를 나타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실험 결과와 정반대로, 성적을 올리겠다는 집념으로 부모들은 마치 경주마를 대하듯이 자신의 자식을 닦달한다. 아이들이 잠시라도 숨을 쉴 여유조차 없이. 결국 그런 부모들에게 반발하는 아이는 부모와 대화를 거부하고, 폭력적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전문가는 말한다. 그런 부모의 조바심은 결국 입시 지옥을 양산하는 이 사회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서 비롯된다고.

결국 아이들을 성장시키는 건 '닦달'이 아닌 '사랑'

 EBS <다큐 프라임> '공부 못하는 아이'의 한 장면.

EBS <다큐 프라임> '공부 못하는 아이'의 한 장면. ⓒ EBS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가? 대안을 찾기 위해 다큐는 시선을 외국으로 돌린다. 하버드대 교육 대학원 토드 로즈 교수, 그는 고등학교 시절 전 과목 F를 받아 성적 미달로 중퇴를 했던 전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학교에서 내친 그를 믿어준 사람들은 다름 아닌 그의 부모들이었고, 그런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현재 그는 대학 교수가 되었다.

수업 시간 토드 로즈 교수는 말한다. 4000명의 비행기 조종사들을 측정해 보니, 이른바 비행기 조종사의 전형이라 불리는 수치에 딱 맞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교육도 이와 마찬가지라 말한다. 이른바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균의, 혹은 전형의 방식은 없다고.

제작진은 수능을 본 지 10년이 지난 30세 젊은이들의 현재를 조명했다. 경제적 안정을 비롯한 삶의 행복 지수 5가지에 만족도를 보인 상위 20% 그룹들을 분석한 결과, 그들이 대부분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보다는 스스로 자신이 가고픈 대학과 학과를 선택했던 학생들이 중고등학교 시절 공부로 인한 부모님과의 갈등이 적었고, 부모님에게서 정서적 지지를 얻었던 그룹들이 서른이 된 현재도 삶의 만족도가 높았다. 결국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한 사람의 인생에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 그가 함께 한 가족들과의 정서적 유대라는 것이다.

이런 결론을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해 시선을 미국으로 돌린다.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에서 한국 교육을 본받아야 한다고 한 적도 있듯이,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 이후 뒤떨어진 교육 수준을 높이기 위해 'Race to the top' 정책을 실시한다. 그리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전주에 걸쳐 높은 수준의 시험을 반복적으로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각 학교에 대한 지원을 달리 하기로 했다.

그 결과, 느슨했던 미국의 교육 현장은 되풀이 되는 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얻기 위한 시험 훈련장으로 변화되어 갔다. 하지만 그런 강력한 교육 정책과 함께 늘어난 것은 높은 학업 스트레스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학생들의 숫자였다. 그렇다고 오바마 행정부가 원하는 만큼 학생들의 성적이 오른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런 정부의 정책에 반기를 들고, 학생들의 등교 시간을 늦추고 하루를 온전히 뒤떨어진 학생들에게 할애한 학교 등에서 아이들의 실력은 눈에 띄게 성장했다. 결국 아이들을 성장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은 부모와 선생님의 사랑이요, 관심이었다.

사랑과 관심까지도 아니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공부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에 상처를 받고 있는 현실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사실은 공부에 상처를 받았는데, 그것을 들여다보기는커녕, 지레 공부 못하는 아이라 낙인찍어버리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5부에서는 장장 180일에 걸친 실험을 실시한다. 높은 성적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부모로 인해 시험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에서부터, 부모 말도 잘 듣고 공부도 하려고 하지만 성적이 오르지 않는 아이, 외국에서 살다 온 후 한국의 학업 체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까지 다양한 7명의 고등학생이 함께 공부의 상처를 치유하는 180일의 시간을 보낸다.

우선, 시작은 사사건건 아이의 일상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부모를 제거하는 작업에서 시작된다. 아이들은 자신의 방문을 허락 없이 열고 들어와서 무엇을 하나 감시의 눈초리로 바라보던 부모의 시선이 없어진 것에서 의아해 하며, 그동안 못했던 프라 모델 놀이를 마음껏 하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이 해야 할 공부를 스스로 하기 시작한다. 도무지 공부에 흥미를 붙이지 못했던 아이들을 위해 공을 던져보며 원리에서부터 공부에 대한 흥미를 가져보도록 유도한다.

그저 단 한 번, 그 원리를 함께 알아봤을 뿐인데도 아이들은 달라져 갔다. 뿐만 아니라, 그 과목만이 아니라 다른 과목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성적표를 보여주고 싶을 때 보여주면 된다는 부모들의 말에, 시험을 보고 성적표를 받아도 아이들은 여유를 가지기 시작했다. 부모들은 '도를 닦는다'고 했지만, 아이들은 조금씩 스스로 숨을 쉬기 시작했다.

교육 방송의 새해 첫 기획 다큐가 '공부 못하는 아이'라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늘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 하는가'라는 방법에만 골몰하던 교육이 그렇지 않은 외각 지대에 놓인 아이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물론, 그럼에도 결론은 여전히 '어떻게 해서 그들을 공부에 관심을 가지도록 만들었다'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 학생들 99%가 '공부 상처'를 받고 있는 현실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다큐의 성과는 주목할 만하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교육 다큐는 다양한 전문가의 분석을 통해 심리적으로 그들을 들여다보고, 다양한 심리 실험 등을 통해 그들을 보다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난 우리 사회의 현실은 냉정하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잠시 잠깐이라도 한 눈 팔 틈을 주지 못할 만큼 여유가 없고, 그 여유 없음은 그들이 우리 사회로부터 느끼는 압박감으로 부터 비롯된 공포라는 실체가 드러난다.

그렇게 한 발 짝이라도 삐끗하면 벼랑으로 떨어질 사회 속에서 공포를 느끼며 사는 부모들이 조금이라도 안전한 선택지를 위해 아이를 닦달하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여린 마음은 상처받고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희망이 없지는 않다. 상처받아 불뚝거리는 어린 새싹들은 그럼에도 부모의 따스한 말 한 마디, 애정 어린 관심 한 움큼만으로도 변화하기 시작하니까. 부모의 따스한 손길만으로도 아이들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다큐는 끝을 맺는다. 여전히 세상은 쉽게 달라지지 않지만, 그 험난한 세상에서 조금 덜 불행해 질 수 있는 선택지는 유효한 것이다. 성장과 발전을 내려놓은 사회, 욕심을 내놓은 부모가 결국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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