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부 검사로 일하다 쌍용 김석원 회장 비리 수사와 관련해 검찰을 떠나, 삼성 법무팀장으로 근무했던 김용철 변호사는 2007년 10월 정의구현 사제단을 통해 '삼성 비자금 의혹'을 밝히고, 이어 <삼성을 생각한다> <굳바이 삼성> 등을 통해 우리 사회 정관계에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는 삼성의 금권을 밝혔다.

1월 13일 21회로 종영한 MBC 월화드라마 <오만과 편견>은 바로 이 김용철 변호사가 제기했던 압도적 실세 삼성과 그 금권의 그늘 아래에 기생하는 검찰의 비호 세력에 대한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회, 그간 벌어졌던 각종 사건의 궁극적 악의 실체로 최강국 검사(정찬 분)의 범죄를 밝히고, 그가 재벌 기업 화영의 이득을 위해 하수인이 되어 한별이 납치 사건 등 각종 사건들이 벌어졌음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MBC <오만과 편견>에서 한별이 납치사건의 범인 박만근으로 밝혀진 최강국 검사(정찬 분).

MBC <오만과 편견>에서 한별이 납치사건의 범인 박만근으로 밝혀진 최강국 검사(정찬 분). ⓒ MBC


<오만과 편견>은 검찰 권력에 드리운 재벌 기업 화영의 금권력을 설명하기 위해 에돌아, 이제 막 수습 검사가 된 한열무(백진희 분) 동생 한별이의 납치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어린 시절 홀로 집으로 보낸 동생이 결국 납치되어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오고, 그 여파로 가정이 쑥대밭이 되자, 한열무는 동생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검사가 된다. 그런 그녀가 지목한 범인은 다름 아닌, 그녀의 직속상관인 수석 검사 구동치(최진혁 분)이다.

하지만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녀가 범인으로 지목한 구동치 역시 의사가 되고 싶은 꿈을 접고 검사가 되기로 했던 이유가 있었으니, 대학 입시를 마치고 간 아버지의 폐공장에서 그가 데리고 도망치다 잃어버린 어린 아이에 대한 부채 의식때문이다. 이렇게 한열무 동생의 납치 사건은 구동치의 기억 속 사건으로 확장되며, 그들과 함께 일하는 수사관 강수(이태환 분)의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기억과 얽혀 들어간다.

묘하게도 한 검찰 사무실에서 일하게 된 그들이 자신들을 현재에 있게 한 사건에 접근해 갈수록 또 한 사람, 바로 팀의 상관인 부장검사 문희만(최민수 분)이 등장한다. 그래서 납치 사건이었던 사건은 뜻밖에도 문희만이 과거에 했던 '특검'과 이어지고, 거기에 문희만과 이제는 강수의 양아버지 노릇을 하는 정창기(손창민 분)가 연류된 뺑소니 사고가 전면에 등장한다. 공교롭게도 그렇게 과거의 악연으로 이어진 이들에게 배치된 사건들은 이들로 하여금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갈 수 있도록 지렛대가 될 성접대 사건 등이다.

마치 촘촘하게 짜인 직조물처럼, <오만과 편견>은 등장인물의 개인사와 그들이 얽힌 과거의 사건, 그리고 현재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강고한 영향력으로 자리잡고 있는 화영이라는 재벌의 금권에 의한 검찰 장악을 엇물려 가며 설명해 낸다. 형사 사건으로 시작된 사건은 결국, 금권에 의해 농단된 검찰 권력의 비리를 낱낱이 그려내고자 한다.

핵심은 '똥 묻은 개'를 잡으려는 '겨 묻은 개'의 의지

이렇게 뜯어진 실밥 하나 없이 촘촘하게 이야기를 전개해나가고자 했던 <오만과 편견>은, 하지만 아쉽게도 동시간대 방송 중인 SBS 월화드라마 <펀치>에서 보다 현실적 상징성이 강한 이야기들을 등장시키면서 힘을 잃고 주저앉아 버린다. 하지만 단지 경쟁작들이 강력해서 였을까?

무엇보다, <오만과 편견>에서 드라마를 이끄는 주인공들을 추동하는 동력은 바로 그들의 개인사이다. 동생을 납치로 잃은 수습 검사, 자신이 구하려던 아이을 잃은 기억이 있는 수석 검사, 그리고 어린 시절의 기억을 모조리 잃은 수사관. 그들이 자신의 과거사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의 사건에 뛰어든 것이다. 그렇게 실제 현실에서는 사회 비판적 능력이 약화된 현재 젊은이들의 약점을 보완하고자, 드라마는 각자 개인적 이유에서 비리를 파헤치는데 헌신적일 수밖에 없는 사연을 등장시킨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상대편에, 뺑소니 사건의 범인이거나 동조자였던, 그리고 결국은 그로 인해 화영의 개가 되거나, 폐인처럼 살아가는 기성세대 문희만과 정창기를 등장시켜 주인공들과 갈등을 일으킨다. 그렇게 자신들의 사연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조우하게 된 비겁한 인물들과 싸우기 위해, <오만과 편견>은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진짜 이 드라마가 하고픈 이야기는, 어쩌면 몇 시간밖에 남지 않은 공소 시효 안에 사건이 해결될 수 없을지도 모름에도 최강국, 즉 박만근을 법정에 세웠듯이 '싸우고자 하는 의지'에 대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뺑소니 사건을 일으키고, 비리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특검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스스로 화영의 개가 되는, '겨 묻은 개' 문희만이 살인마저도 거침없이 수단으로 삼았던 '똥 묻은 개' 박만근을 정죄하기로 하는 '의지'의 과정 말이다. 어느 틈에 자신도 모르게 '악의 편'이 되어버렸던 그 시간에 대한 속죄, 반성을 논하고자 한 것이다.

 <오만과 편견>의 문희만 부장검사(최민수 분).

<오만과 편견>의 문희만 부장검사(최민수 분). ⓒ MBC


하지만 <오만과 편견>의 의도는 분명했지만,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은 아쉬웠다. 문희만이라는 선악을 오가는 캐릭터를 밝혀내기까지 박진감 넘치게 진행되던 드라마는 정작 그의 실체가 밝혀진 후 지지부진 해지고 말았다. 문희만이라는 현실적인 캐릭터에 비해, 그와 대적하거나 한편이 되어 싸워가는 주인공들 구동치와 한열무가 캐릭터로서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희만을 조사실에 앉혀 놓고, 모호한 그를 넘어 이종곤 국장(노주현 분)과 진짜 실체인 최강국을 밝혀가는 과정이 부쩍 힘을 못 받았다.

차라리 애초에 문희만이 주인공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겨묻은 개'가 되었던 과정을 후배 검사들의 과거 사건을 해결하며 절감하고, 검은 실체와 대립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그려냈었다면 제대로 된 싸움이 되지 않았을까. 아직 연기로나 캐릭터 면에서 단선적인 구동치, 한열무를 극의 추진력으로 내세우다 보니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만 것이다.

어린 동생의 납치 사건을 밝히기 위해 검사가 된 여주인공, 어린 시절 자신이 잃어버린 아이 때문에 검사가 된 남자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우다 보니, 결국 드라마의 결말 역시 그 사건의 실체를 만천하게 밝히는 것으로 끝나고 만다. 잡혀가는 최강국의 한 마디 "박만근이 나 한 사람인 줄 아냐?"는 조롱 섞인 반문은 힘을 잃는다.

세상은 여전하고, 집으로 돌아가려 차를 탔던 문희만의 뒤를 누군가가 따라붙은 걸로 보아 결국 돌아가지 못한 듯하지만, 몇 년이 지나 남녀 주인공은 생기발랄하게 검사와 변호사가 되어 법정을 나선다. 그들의 티 한 점 없어 보이는 열의에 여전한 '전투 의지'를 읽어내기 보다는, 21회 동안 이 드라마가 무엇을 위해 싸워 왔는지 반문하게 되는 것이다.

몸통은 여전한데 자르면 그만인 하나의 '꼬리' 박만근을 밝혀냈다고, 아니 박만근이라도 밝해냈으니 다행이라는 것인지, 그저 묻힐 뻔한 과거의 납치 사건에서 시작해 최강국이라는 검찰 실세를 법정에 세운 것만으로도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는 것인지. 카이저 소제만큼이나 실체를 알기 힘들었던 그를 법정에 세운 것은 대단한 성과임에도, 어쩐지 싱겁게 느껴지는 건, 죽은 백곰이 남긴 녹음 기록 하나로 사건이 해결된 결말 때문이었을까?

아마도 똥 묻은 개를 저격하기 위해 죽음마저 불사한 문희만의 결말이 그저 에필로그 식으로 스쳐 지나가버릴 수밖에 없었던 <오만과 편견>의 딜레마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니 근본적으로는, 여전히 화영처럼 존재하고 있는 현실을 넘어서지 못하는 상상력을 탓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보다 명확하게 우리 사회 권력층의 비리와 음모를 날 선 시선으로 힘 있게 그려내고 있는 <펀치>에 밀려, 혹은 스스로의 딜레마로 주저앉아버린 모양새이지만, 꼬리에 꼬리를 문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 권력의 그늘을 촘촘히 직조해낸 이현주 작가의 필력은 앞으로가 더 기대가 되고, 뚝심 있게 밀고 간 김진민 PD의 연출 역시 몇 %의 시청률만으론 설명할 수 없겠다. 부디, <오만과 편견>의 성취가 좋은 자양이 되어 좀 더 멋진 사회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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