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에 출연한 멤버들과 가수들.

<무한도전>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에 출연한 멤버들과 가수들. ⓒ MBC


엄정화가 무대에 서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섹시퀸'의 귀환에 후배 남자 가수들의 눈빛마저 흔들렸다. 왕년의 댄스팀 '프렌즈'도 함께였다. 변함없이 객석은 들썩였고, 유독 엄정화의 카리스마에 대한 상찬이 줄을 이었다. 과거 엄정화의 댄서였던 김종민의 빈자리를 채운 유재석의 깜짝 등장도 '무도' 다웠다.

어디 그 뿐인가. '토토가'가 빚을 졌다 할 만한 윤일상과의 작업이나 셀프카메라로 편집의 힘을 톡톡히 본 이정현의 무대는 여전했고, 특유의 고음역을 자랑하는 소찬휘도, 전성기 시절 의상과 무대를 그대로 재현한 지누션도, 딸을 초대한 김성수와 유리를 대신한 예원까지도 관심을 받은 쿨은 오프닝도,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김건모와 터보도 모두 '화려한 귀환'을 알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방송 직후, 엄정화는 자신의 SNS에 "97년, 98년으로 되돌아간다는 건 가능하지 않았는데,  녹화 날 인사하며 반기는 쿨. 건모오빠 지누션 이정현 조성모 김현정 터보. 소찬휘. SES. 감격, 울컥이는 마음"이라며 "그 시간 여러분에 추억과 함께한 우리의 노래들, 우리의 추억이기도 하지요, 감사합니다. 사랑해주셔서요, 정말 많은 사랑이었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장문의 소감을 적기도 했다.

그의 파트너였던 작곡가 주영훈 역시 "정화야 오늘 토토가 보는데 왜 눈물이 핑 돌까~오랜만의 춤 추는 모습과 프렌즈 팀의 안무까지 완벽했어~신곡 하나 해야겠는데?"라며 "토토가를 보며 내 청춘의 많은 추억이 스칩니다. 그 음악들과 함께 보낸 나의 2~30대..신나는 음악들인데 눈물이 나네요. 그 시절의 절반이상을 녹음실에서 보냈던 시절~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라고 적었다.

이효리도 춤추게 만드는 '토토가'의 저력

 <무한도전> '토토가'에 출연한 엄정화와 그의 무대를 지켜보는 남자 가수들.

<무한도전> '토토가'에 출연한 엄정화와 그의 무대를 지켜보는 남자 가수들. ⓒ MBC


그렇게 <무한도전>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가 막을 내렸다. 1회 시청률은 19.8%, 2회는 2.4% 상승한 22.2%(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요즘 잘 나간다는 예능 평균 시청률을 훌쩍 뛰어넘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토토가'는 팬클럽도 점령하기 어렵다는 멜론 차트에 90년대 가수들의 히트곡을 가뿐하게 소환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엄정화의 '포이즌',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 지누션의 '말해줘'가 톱10을 점령했고, 김현정, 소찬휘, 터보, 쿨 등 '토토가'에 등장한 대다수 곡들이 차트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가는 중이다. 시즌2에 대한 기대도 쏟아졌다. '토토가'에 출연한 가수들 위주의 '대형 콘서트'를 염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토토가'가 방영된 연말연시 주말, '90년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클럽 등은 줄을 서야 입장할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3일 저녁 SNS를 통해 제주도에 사는 이효리도 '토토가'를 보며 춤을 동영상이 화제가 될 만큼, '토토가'는 1990년대에 10대를 보냈거나 당시 음악에 문화적 세례를 입은 세대들에게 열광과 감동을 안겨줬다. 각자의 추억과 기억을 소환하며 즐기는 모습은 각종 SNS와 커뮤니티를 점령했다.

"2025년 토토가. 원더걸스 나와서 텔미 부름 빅뱅 나와서 거짓말 부름 소녀시대 나와서 다시 만난 세계 부름 투애니원 나와서 파이어 부름 비스트 나와서 쇼크 부름 슈퍼주니어 나와서 쏘리쏘리 부름 티아라는 못 나옴" (@Rb******)
"요즘 어설프게 섹시 흉내 내는 아가들아 엄정화를 우러러보라 그곳에 태초의 관능과 우아한 유혹과 섹시미가 있었으니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농염함을 일컬어 엄정화라고 칭하노라" (@de********)
"이번 설날에는 토토가 무삭제판 계속 돌릴 것 같다...."(@MD*******)
"무한도전. 노래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50대가 되어 20대 후반-30대 초반을 돌아보는 시간이었으니 쓸쓸한 마음도 당연히 있었다. 그런데 사회학자로서 더 주의했던 것은 문화의 시대 90년대는 80년대 말의 민주화를 통해 가능했다는 것."(@ec******)

"그 시절이 최고다"가 아닌 "그 시절은 그랬다"의 정서

 <무한도전>의 깨알 같은 자막과 CG의 좋은 예.

<무한도전>의 깨알 같은 자막과 CG의 좋은 예. ⓒ MBC


음악 관련 특집마다 잡음이 일었던 '무도'다. '가요제'에서 전파를 탄 창작곡들의 경우, 음악 생태계를 저해한다는 이유로 기획사나 음악계로부터 지탄을 받기도 했었다. 과거 음악을 재조명한 '토토가'는 이러한 분란이 쏙 들어갔다. 한 마디로, '토토가'로 대동단결,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가재치고 도랑 잡은 격이랄까.

연말 방송사 가요제까지 압도한 '토토가'의 이러한 파급력은 '공감'과 '존경'이란 화두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공감을 배가시킨 것은 '무도' 제작진의 감각이었다. 그 시절 TV를 최대한 재현하려는 세심함은 자막부터 카메라 앵글, 소소한 CG까지 '브라운관의 미장센'이라 칭할 정도의 공력과 완성도로 표현됐다.

일부에서 불만을 제기한 자막의 경우도 깊게 들여다보면 또 그렇지가 않다. 철저하게 그 시절 분위기를 재현하자는 '무도'의 취지는 "그 시절이 최고다"가 아닌 "그 시절은 그랬고, 현재는 이렇다"에 가깝다. 그 시절 감각에 최대한 가까운 자막이 손발을 오그라들게 만든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오히려 그런 감수성에서 그런 음악이 비롯됐다는 증언과 같아 보인다.

대신, 세대를 대표했던 가수들에 대한 존경과 현재에 대한 긍정이 돋보인다는 점에서 '토토가'는 여타 '추억팔이' 프로그램과 궤를 달리한다. 엄정화가 '한국의 마돈나'였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이정현이 레이디 가가보다 앞서갔다는 것을 되짚으며, 엄마가 된 S.E.S 슈나 상처를 딛고 딸의 응원에 뭉클해 하는 쿨 김성수의 현재를 긍정하는 편집이 특히 그러하다.

시청률은 물론 음원 차트까지 점령한 이 '토토가' 열풍을 주목해야 할 이유는 이 뿐만이 아니다. 이전 '무도'가 발표한 음악이 그러했듯, 10대를 비롯한 '토토가' 이전 세대에까지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를 지켜 볼 필요가 있을 듯 하다. 40대 부모와 함께 '토토가'를 시청했다는 10대들이 그러하다. 더욱이 아티스트에 대한 존경과 애정에서 비롯된 이 '무도'의 공감 능력이 어떤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지 말이다.

<무한도전>이 확인시켜준 넓고 깊은 메시지와 지평 

 '토토가'의 기획의도를 담은 한 장면.

'토토가'의 기획의도를 담은 한 장면. ⓒ MBC


<국제시장>이 천만 관객을 향해 순항 중이다. 50~60대를 비롯해 폭넓은 관객층이 관람하는 한편으로 '추억팔이'의 전형으로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회고와 반추라는 측면에서 '토토가' 역시 2015년을 '레트로'의 해로 만들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나 '향수'를 소환하기에 조금은 이른 30대가 이 대열에 동참했다는 점도 특이할 만한 사항으로 평가되고 있다(하지만 이 30대의 이른 회고 정서는 그저 하나의 텍스트에 반응하는 일시적인 현상일 가능성이 높다).

헌데 진짜 그러할까. 일단 '90년대' 대중문화와 사회 분위기가 상징성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누구는 서태지를, 누구는 윤상을, 누구는 해외 뮤지션들을 소환하는 이 90년대는 X세대부터 '빠순이'들, 그리고 영화세대가 공존했던 시기다. 문화적인 감수성이 폭발하던 이 시기는 일본의 버블 붕괴에 비견될 IMF로 세기말을 마무리했던 과거이기도 하다.

그 시대를 '토토가'는 특정 주체를 내세워 단단하게 돌파해냈다. 그래서 '토토가'가 보여준 공감은 <응답하라> 시리즈나 <건축학개론>이 불러온 90년대 열풍과는 물론 <국제시장>의 향수와도 그 궤가 달라 보인다. 서사 속에서 배경으로 등장하던 노래와 가수들이 전면에 나선 것은 최초다. 90년대 뮤지션들을 경쟁 구도 속에 몰아넣었던 <나는 가수다>와 달리 '토토가'는 경쟁을 내세우지도, '전설'이란 이름의 과다한 포장도 걷어 냈다. 특정 사건은 배제하고 취사선택이 강조된 <국제시장>의 거시적이고 박제된 향수와도 출발부터 다르다. 

불과 20여 년 전 추억의 주체들을 다이렉트로 소환하고 복원한 '토토가'는 오히려 2015년의 현재와 가장 맞닿아 있는 기획이다. 이미 대중문화의 강력한 소비층으로 떠오른 지 오래인 3040 세대의 주머니를 다시 터는 것도 새롭지 않다. 그저 이 가수들의 지금을 직시하는 동시에 진심 어린 애정과 존경을 보내는 '토토가'는 10대 위주로 돌아가는 음악시장은 물론 속도전과 (현재적인) 경쟁만을 쫓는 사회에 작은 균열을 낼 가능성과 전복성을 확인시켜 준 것으로 충분하다.     

MBC는 10일 오후 '토토가 스페셜판'을 방영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전복성에 가장 뒤떨어진 방송사가 현재의 MBC라는 점은 비극에 가깝다. '<무한도전>이 먹여 살리는 방송사'라는 비아냥에서 '토토가' 방송 직후 <뉴스데스크>를 보지 않기 위해 채널을 돌렸다는 이들도 다수였다. 2015년을 힘차게 열어젖힌 <무한도전>이 확인시켜주는 메시지와 지평이 이렇게 깊고도 넓다.  

무한도전 토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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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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