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포스터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포스터 ⓒ 대명문화공장

이제는 종교적 의미보다도 연인과 가족의 날로 더욱 의미가 깊어진 성탄절을 맞이해 한 편의 영화가 의미 있는 기록을 달성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진모영 감독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마침내 300만 관객을 돌파한 것이다.

26일 기준 영화진흥위원회 박스오피스 상위 10편에 속해있는 작품 가운데 가장 많은 누적 관객 수를 기록하고 있는 이 영화는 지난 2009년 <워낭소리>가 기록한 292만 명마저 넘어서며 역대 다큐멘터리 가운데 최다 관객동원작으로 자리매김했다. <겨울왕국>으로 시작해 <명량>으로 절정을 맞이하고 <인터스텔라>가 존재감을 뽐낸 2014년 극장가에서 마지막 주연은 바로 이 영화가 차지하는 모양새다.

76년 전, 가진 건 몸뚱이뿐인 스물 셋 청년과 아직 어린아이 티를 벗지 못한 열넷의 소녀가 부부의 연을 맺었다. 그리고 그들은 남편과 아내로 서로를 의지하며 12명의 자식을 낳았다. 즐거움도 많고 아픔도 많았을 그 긴 시간 동안 여섯 아이가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고 여섯 아이는 장성해 부모의 품을 떠났다. 어느덧 일흔여섯 해를 해로한 이들 부부는 호호백발에 깊게 팬 주름이 얼굴에 가득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다. 이제 100세를 바라보는 이들 부부의 삶은 할아버지의 건강 악화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고 부부는 이별을 준비한다.

어느 금슬 좋은 부부의 사랑과 이별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는 76년을 남편과 아내로 살아온 노부부의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 2011년 KBS <인간극장>을 통해 소개되었을 만큼 금실 좋은 부부로 유명했던 조병만, 강계열씨를 주인공으로 삼아 부부가 오랜 세월 한결같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을 담았다. 영화는 5화에 걸쳐 노부부의 삶을 담아낸 <인간극장>이 그러했듯 다큐멘터리의 형식으로 제작되었지만, 그와는 달리 주인공인 조병만 할아버지의 죽음과 남겨진 강계열 할머니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숙명인 죽음을 중점적으로 그려낸다.

영화의 가장 큰 특색은 장르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처음부터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고 다큐멘터리의 문법에 따라 사실에 기반한 이야기를 담아낸다. 사실성은 때로 다큐멘터리를 제약하는 장애 요인이 되기도 한다. 영화가 노부부의 삶을 다루기로 한 이상 이야기는 감독이 아니라 노부부의 삶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독이 원하는 이야기를 얻기 위해 출연자를 인위적으로 강제할 수도, 그래서도 안 되는 것이 다큐멘터리의 제약이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사실만이 가질 수 있는 커다란 반향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바로 이것이 다큐멘터리의 주요한 장점 가운데 하나다.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한 장면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한 장면 ⓒ 대명문화공장


사실을 담아낸다고 해서 작가가 기대하는 메시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큐멘터리 감독 역시 영화를 기획하고 찍어나가면서 의도한 바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끝없이 고민하고 노력하게 마련이다. 사실성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음향이나 내레이션, 편집 등을 통해 저마다의 메시지와 분위기를 전하는 다양한 방식을 가진 것도 다큐멘터리의 특징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어떤 다큐멘터리를 의도했던 것일까.

이미 3년 전에 방영된 <인간극장>의 '백발의 연인' 편과 영화를 대비해서 보면 영화가 의도한 바가 명확해진다. <인간극장>과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가장 큰 차이는 할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의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사건의 존재다. <인간극장>이 부부의 남다른 금슬을 중심으로 현재의 삶을 조명했다면 영화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중심 사건으로 삼아 그 이전과 이후의 이야기로 런닝타임을 채운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는 곧 두 다큐멘터리의 주제의 차이로 이어진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숙명에 대하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금슬이 아니라 죽음을 주제로 삼고 있다는 점은 명확하다. 할아버지의 죽음과 이를 준비하는 과정, 나아가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보내고 서럽게 오열하는 장면이 배치된 방식이 이를 방증한다. 영화는 나들이 중 "봄이 돼서 꽃이 피면 참 예뻐, 거기서 딱 그대로 멈추면 좋은데 가을 되면 서릴 맞고 떨어진단 말이지. 다 헛게 돼"라는 할아버지의 대사를 통해 청춘과 숙명적 죽음에 대한 고민을 영화의 전면으로 끌어올린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옷을 태우는 것이나 먼저 떠나간 아이들의 내복을 함께 보내는 과정을 중요하게 보여주는 것도 죽음을 부각시키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초반을 가득 채우는 건 역시나 부부의 금슬 좋은 모습이다. 똑같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노년의 부부가 투닥이며 세월을 희롱한다. 둘이 함께이기에 즐거움이 가득한 이들 부부의 모습은 보는 이들을 저절로 유쾌하게 한다. 겉은 나이가 들었지만 속은 여전히 청춘인 소년·소녀와 같이 서로를 향한 어여쁜 마음이 커다란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한 장면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한 장면 ⓒ 대명문화공장


하지만 끝없이 행복할 것만 같던 이들의 삶에 변화가 생긴다. 할아버지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것이다. 병원에도 다녀왔지만 나이로 인해 약도 쓸 수 없다는 할아버지의 병은 영화가 기획 단계부터 죽음을 의도하고 있었음을 짐작게 한다. 할아버지는 죽음을 향해 걷고 할머니는 남편을 보낼 준비를 한다. 그들은 담담히 죽음을 겪어내려 하지만 죽음은 그들의 삶에 작지 않은 파문을 던진다. 자식들 사이의 다툼이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미래에 대한 걱정에 한숨을 내쉬기도 하며 떠나갈 사람과 남겨질 사람이 불쌍해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이 반드시 직면하게 되는 명제는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자명한 사실이다. 이 냉엄한 결말 앞에서 우리는 나를 위해 울어줄 이가 누구인지, 또 나는 무엇을 애달피 여기며 눈물을 흘릴지를 스스로 되묻게 된다. 더불어 죽음이 모든 것을 공으로 돌릴지라도 삶이 가치 있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희망을 품는다. 한없이 서로를 사랑하는 한 부부의 이야기로부터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단순한 미담이나 사랑만이 아니다.

이 한 편의 다큐멘터리는 현실의 죽음을 영화의 삶 가운데 들여와 이야기함으로써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새로이 정비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로부터 생을 긍정하고 관계를 소중히 하며 일상에 충실해야겠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면 더욱 의미가 깊은 영화가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대명문화공장 진모영 조병만 강계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