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에브리원 파일럿 프로그램 <정의본색>이 21일 첫 방송됐다.

MBC 에브리원 파일럿 프로그램 <정의본색>이 21일 첫 방송됐다. ⓒ MBC


12월 21일 밤 또 한 편의 새로운 예능이 조용히 등장했다. MBC <정의본색>이다.

김구라, 김보성, 윤형빈, 그룹 틴탑의 니엘, 요즘 주목받고 있는 분야인 모델 출신의 강철웅, 또 빠지지 않고 외국인 샘 해밍턴과 샘 오취리까지 구색을 맞춘 MC 군단이 서울시 고충해결 상담소에 의뢰된 실제 사례들을 해결하고자 나선다. 이른바 방송을 통한 '정의 사회 구현'이다.

<정의본색>의 첫 번째 고충 해결 사안으로 등장한 것은 길거리 간접흡연이다. 길거리에서 흡연을 하던 사람이 피우던 담뱃불에 아이의 손을 덴 주부가 직접 아이와 함께 나와 길거리 흡연의 피해 사례를 전했다. 그에 이어, 서울 각 지역에 설치된 CCTV를 이용해 거리 흡연이 빈번해서 계도하기에 적절한 장소를 선정했다.

길거리 흡연자들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을 찾다 제작진의 '매의 눈'에 걸린 곳은 건대입구 전철역 2번 출구 옆이었다. 그곳 휴지통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마구 버리는 길거리 흡연자들을 설득하고자 MC진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등장했다.

길거리 흡연자 없어지면 정의사회 구현될까

모델 출신의 연기자 지망생 강철웅은 묘령의 여배우와 함께, 길거리에서 흡연하는 남자친구에게 이별선고까지 하는 '막장 드라마'를 연출하고, 윤형빈은 거리의 청소부로 변장한 채 흡연으로 망가진 폐 모양 재떨이를 마련해 흡연자들에게 담배를 끌 것을 요구했다. 김보성은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 가면을 쓰고 야심차게 흡연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니엘은 아이돌답게 여학생들을 찾아가 금연송을 만들고자 했다.

MC진은 저마다 흡연자들의 금연을 위해 갖가지 방안을 내놓았다. 그것을 보다보면, 과연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 공익인 '길거리 흡연 방지'인지, 길거리 흡연을 매개로 한 예능인지 모호해진다. '공익'과 '예능'의 결합이라지만, 길거리 막장극이며 청소부 코스프레가 정말 길거리 흡연 방지에 적절한 대안이라고 생각한 건지 의심스럽다. 그저 여러 출연진이 저마다 돌아가며 출연 분량을 만들면서, 예능으로 구색을 맞추려고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 번다한 미션들은 그곳에 흡연 박스를 놓는 것으로 귀결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비흡연자들의 권리도 보호하고 흡연권마저 인정해 줄 수 있는 대안을 마련키 위한 긴 여정이라기엔 어쩐지 어디선가 본 듯한 뻔한 설정의 나열이 아닐까?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정의 사회 구현'을 위한 공익 예능이라며 대뜸 길거리 흡연을 들고 나온 것부터다. 물론 길거리 흡연이 불법이며, 거리에서 마구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때문에 비흡연자들이 원치 않는 간접흡연을 하게 되는 불편함을 겪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프로그램에서도 보이듯이, 그들이 버리고 간 즐비한 담배꽁초의 불쾌함 역시 피할 수 없다. 그렇다 해도, 이건 마치 흡연자들의 담뱃값을 올려 세금을 충당하겠다는 것으로 보이는 정부의 최근 행보를 연상케 한다.

거창하게 '정의본색'이라 내세운 프로그램인데, 정말 사람들이 '길거리 흡연'을 마구 해서 '정의 사회'가 이루어 지지 않는다고 보는 것인지? 정말 사회 '정의'가 무엇인지 알고 프로그램 제목을 붙인 것인지 의심스럽다.

더구나 이런 공익 예능 프로그램의 시도가 처음도 아니다. 지난 10월 2일에는 과거 공익 예능의 대명사 이경규를 앞세워 <국민 고충해결단-부탁해요>를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내보내고 '거리의 신호 지키기'를 공익 과제를 내세우더니, 이번엔 <정의본색>이라며 거리에서 흡연을 하는 사람들을 다잡겠단다.

두 프로그램의 과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공익'이란 명목으로 시민을 위해 무엇을 해주겠다더니 결국은 시민에게 무엇을 할 것을 요구한다. 그것이 차선을 지키는 것이든,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것이든, 시민이 잘못했으니 제대로 가르쳐 주겠다는 것이다. 결국 현재 우리 사회가 고충을 겪고 정의를 구현하지 못한 게, 시민들이 제대로 된 시민 의식을 가지지 못해서인 건가?

진짜 우리 사회 시민들이 고충을 겪고, 정의가 외면 받는 현장은 제쳐두고, 만만한 불특정 다수 시민들을 상대로 '훈장질'이나 하겠다는 심보, 이게 최근 빈번하게 시도되고 있는 '공익 예능'이 아닌가 싶다. 정작 MBC 내 '정의 구현'조차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면서. 거리에서 흡연을 하지 않으면 정의 사회가 구현되는 사회, 참 만만한 '정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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