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영상물 등급심의,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

지난 12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영상물 등급심의,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 ⓒ 성하훈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라고 사과요청서를 보냈더니 사과라는 말을 쏙 빼고 공식요청서에 대한 회신을 보내와서는 재심의 신청만 하라고 한다. 잘못했으면서도 반성하지 않는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참 못된 국가기관이다."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영상물 등급심의,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 사례 발표자로 참석한 영화 <자가당착 : 시대정신과 현실참여>(이하 자가당착) 김선 감독은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의 태도를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이날 토론회는 영등위의 등급 심의에 대한 영화계의 의견을 듣기 위해 마련된 자리로 참석자들은 영등위 심의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특히 <자가당착>은 영등위가 정치적인 심의를 한 대표적 사례로 부각되면서 토론에 참석한 영등위 쪽 관계자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사과 요구 무시하는 영상물등급위원회

<자가당착>은 지난 2011년 심의신청을 한 이후 영등위로부터 두 번 연속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으나 법원의 판결로 무효가 됐다. 1심에서 패소한 영등위는 고법에 이어 대법원까지 갔으나 결과적으로 완패했다. 무리한 심의였음을 법원도 인정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등급분류 서비스 기관인 영등위가 1심에 판결에 수긍하지 않고 대법원까지 간 것에 대해 영화계로부터 사실상의 검열기관 행세를 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하지만 영화 상영을 사실상 가로막으려 했던 영등위가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심의에 대해 아무런 사과 없이 재심의 신청하라는 입장만 밝히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는 상태다.

김선 감독은 이날 자신이 요구한 사과요청서에 대해 영등위가 회신한 공문를 공개했다. 김 감독은 지난 11월 7일 영등위에 공개 사과와 자진 재심의를 바란다는 공식사과요청서를 발송했었다.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영상물 등급심의,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에서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사과없이 재심의만 언급한 영등위의 입장에 대해 비판하는 <자가당착> 김선 감독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영상물 등급심의,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에서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사과없이 재심의만 언급한 영등위의 입장에 대해 비판하는 <자가당착> 김선 감독 ⓒ 성하훈


영등위 측은 회신에서 "자가당착 소송과 관련해 대법원의 결정에 따라 등급결정이 취소되었다"며 "새로운 등급분류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제29조에 따라 상영매체와 함께 등급분류 신청을 하시면 관련 절차와 규정에 따라 진행될 것임을 알려 드린다"는 짤막한 입장만을 나타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영등위 관계자도 의견도 똑같았다. 영등위 정책홍보부 안치완 부장은 "심의는 정해진 절차와 규정에 따라 다시 받아야 한다"며 "임의로 심의를 해 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제한상영가 등급 부여에 대한 법적 기준이 있고, 규정된 부분은 시행할 수밖에 없다"면서 다만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도 있기에 제한상영가에 대한 기준을 개선할 필요성은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두 번이나 사실상 상영불가인 제한상영가 등급을 내려 영화 상영을 가로막았던 것에 대한 사과는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김선 감독의 표현대로 "영화가 만들어진지 5년이 돼서야 겨우 상영금지가 풀렸는데,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나 몰라라 식으로만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법원 판결에도 사과 외면하는 것은 자질 문제

이 때문에 비판도 커지고 있는데 '법 위에 군림하는 영등위'라거나 "영등위원장의 위세가 그 정도로 대단한줄 몰랐다"는 등의 비난이 일고 있다.

영등위의 한 심의위원은 12일 "영화 쪽 사정을 보면 분명 영등위원장이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저렇게 아무 말 없이 책임을 회피하려는 자세를 나타내는 것을 보면 행정기관의 장을 맡기에는 자질이 안 되는 사람인 것 같다"고 비판했다.

민병록 영화평론가협회장은 "어떤 식으로든 당연히 사과를 해야 될 사안이다. 그럼에도 끝까지 사과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비전문가가 자리에 앉아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다른 곳들도 비슷한 일들이 있던데, 전문성이 없는 사람들이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인해 자리를 맡다보니 이런 식이 일이 생기는 것 같다"며 신임 영등위원장 선임에는 전문성이 우선되어야 하고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임명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임기가 끝났으면 알아서 물러나는 구조가 돼야 한다"며 "임기가 끝난 사람이 각종 포럼 등의 행사를 주최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박선이 위원장은 지난 6월 말로 임기가 끝났으나 후임자 선정이 지연되면서 계속 위원장을 유지하고 있다.

영등위 내부에서도 위원장의 행태에 대한 불만이 나타나는 모습이다. 영등위의 한 관계자는 내부 분위기에 대해 "요즘 영등위가 욕을 먹는 분위기다"보니 다들 마음이 편하지 않다"면서  "영화계의 비난이 많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개인적으로라도 감독에게 무리한 심의에 대해 사과해야 하는데,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고 보면 된다. 비판적 여론이 나오면 도리어 아랫사람들만 질책해 내부에서 누구도 언급을 못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는 또한 "요즘 대한항공이 땅콩리턴으로 인해 시끄러운데, 영등위 공식입장 보면 알겠지만 영등위 상황도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상영금지 의지 드러내더니 재량권 일탈·남용에 반성 없어

 지난 11월 27일 부산에서 열린 2014 국제영화등급분류포럼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박선이 영상물등급위원장

지난 11월 27일 부산에서 열린 2014 국제영화등급분류포럼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박선이 영상물등급위원장 ⓒ 영상물등급위원회


부산지역의 한 영화계 인사는 "지난 27일 열린 '2014 국제 영화 등급분류 포럼'에서 부산지역 독립영화협회 관계자가 <자가당착> 재심의에 대한 질문을 발제자에게 했었다"면서 박선이 위원장이 답변을 했는데, '행정사무규정을 언급하며 심의 신청을 해야 등급 부여를 할 수 있다'는 입장만 밝혔다"고 전했다.

김선 감독은 "박선이 위원장이 2심 고등법원 재판장에 직접 행차해 '풍자는 허용하되 지나친 풍자는 허용할 수 없다' '정치인에게 가하는 폭력은 더 큰 폭력이다'는 답변을 남기며 상영금지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면서 "재량권 일탈·남용에 대한 반성을 안 하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고 비판했다.

사과를 안 하는 이유에 대한 박선이 영등위원장의 의견을 듣기 위해 비서실 쪽으로 문의했으나 비서실 쪽은 홍보팀에 문의하라고 떠넘겼고, 홍보팀은 김선 감독에게 회신한 내용 외에는 달리 따로 밝힐 내용은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영등위 자가당착 박선이 제한상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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