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에 걸친 복싱 명가이자 한국 최초로 국내 브랜드 복싱용품을 생산했던 이영철씨가 28일 오전 3시경 대장암 투병 끝에 향년 84세로 작고했다.

그의 부친 이혜택은 한국 복싱 최초의 국제경기를 한 선수였다. 1916년 미국 선교사 질레트가 복싱을 전파한 후 1922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서울 YMCA 실내 경기장에서 미국인 쉬버와 한국의 이혜택과의 공개 시합이 거행되어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경기룰은 현재 방식과 차이가 있었다. 매 라운드 당 3분 경기 후 1분 쉬는 현재와는 달리 라운드 사이의 휴식 시간 없이 진행됐다. 왜소한 한국의 이혜택이 우람한 미국인 쉬버에게 3분을 채 버틸지도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을 뒤엎고 이혜택이 일방적으로 우세한 경기를 펼치자, 바네트 선교사가 경기 시작 6분이 지날 무렵 중지시키고 말았다. 이 경기가 한국 최초 외국인과의 국제 경기로 기록되었다.

이후 YMCA에서는 매년 연중행사로 복싱 경기를 개최하게 되었다. 이혜택은 1936년 독일 베를린 올림픽 대회 국가대표 코치로 참가했고, 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세계 YMCA 선수권대회에 출전하였다.

 한국 최초의 국제시합에 나섰던 이영철의 부친 이혜택

한국 최초의 국제시합에 나섰던 이영철의 부친 이혜택ⓒ 이충섭


그의 아들 이영철은 아버지의 뜻을 이어 복싱을 가업으로 이어갔다. 한국에 복싱이 보급된 지 50여 년이 넘도록 수입품에 의존했던 복싱용품을 국산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1977년 국내 최초로 한국 복싱브랜드를 개발해서 한국권투위원회(KBC), KABF(대한아마추어복싱연맹)는 물론 WBC(세계복싱평의회), WBA(세계복싱위원회), IBF(국제복싱연맹), OPBF(동양태평양복싱연맹) 등 국제 기구의 공인을 받아 각종 국제경기에서 한국의 토종브랜드로 당당히 선을 보였다.

 한국최초로 국내브랜드를 생산했던 이영철

한국최초로 국내브랜드를 생산했던 이영철ⓒ 이충섭


1970~80년대 한국복싱의 전성기에는 홍수환, 박종팔, 문성길, 유명우, 장정구 등 한국의 세계챔피언들과 더불어 사업은 흥했지만, 90년대를 고비로 복싱의 침체와 함께 복싱용품사업도 내리막을 걷고 있다. 그래도 고 이영철 슬하의 두 아들 이상호, 이상윤 형제는 대를 이어 복싱용품 생산을 가업으로 삼고 있다.

형 이상호는 국내시장을, 동생 이상윤은 수출을 담당하면서 한국 복싱의 역사와 함께 시작한 한국복싱용품의 명맥이 끊기지 않도록 국내는 물론 그간의 노하우를 살려 수출에도 역점을 두고 있다. 이상호, 이상윤 형제는 이렇게 말한다.

"복싱은 축구와 더불어 여전히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입니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인 N사와 A사마저도 복싱용품사업에 뛰어들 정도니까요. 국산 제품의 열 배 가까운 금액을 들여 수입브랜드를 찾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할아버지,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묵묵히 가업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고 이영철 사장의 빈소는 혜화동 서울대병원이며, 발인은 11월 30일 오전 10시로 예정되었다.
 이영철씨가 한국산 글러브로 시합에 나섰던 선수들을 격려하던 모습

이영철씨가 한국산 글러브로 시합에 나섰던 선수들을 격려하던 모습ⓒ 이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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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선수협의회 제1회 명예기자 가나안농군학교 전임강사 <저서>면접잔혹사(2012), 아프니까 격투기다(2012),사이버공간에서만난아버지(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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