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에서 빌리를 연기하는 이재균.

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에서 빌리를 연기하는 이재균. ⓒ 예술의전당


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의 막내아들 빌리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귀가 불편한 그를 위해 가족들이 수화를 배우고 빌리와 소통해야 맞다. 하지만 아버지 크리스토퍼를 비롯한 가족들은 빌리에게 보청기를 씌우고는 정상인처럼 듣고 말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빌리는 남자친구가 있는 아가씨 실비아를 만나게 되면서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왔던 삶이 '몸에 맞지 않는 옷'이라는 걸 깨닫기 시작한다.

빌리는 이제까지 아버지를 비롯한 모든 가족이 자신을 정상인이라는 범주 안에 가두고는 그들처럼 살기를 바랐다는 걸 안 이후, 가족으로부터 정신적인 독립을 갈망한다. 과연 그의 바람은 성취될 수 있을까. 빌리를 연기하는 배우 이재윤의 입을 통해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혼란스러웠던 수화, 나중엔 말보다 감성 풍부해지는 느낌"

- 빌리는 소리를 잘 듣지 못한다. 가족들이 빌리를 위해 수화를 배워야 하지만 빌리는 보청기를 끼고 정상인처럼 듣고 말하기를 가족들에게 강요당하는 것 아닌가.
"빌리가 수화를 사용하지 않고 비장애인처럼 듣고 말하는 건 아버지뿐만 아니라 온 가족 모두가 노력해서 만든 결과다. 듣지 못하는 빌리를 비장애인처럼 키우기 위해 온 집안 식구들이 합심했다.

실비아를 만나기 전까지 빌리는 왜 이렇게 불편하게(보청기를 끼고 비장애인인 것처럼) 살아야 하는지 모르고 당연하게 살아왔다. '청각장애인이지만 우리가 정상처럼 키웠어' 하고 빌리에게 거는 온 가족의 기대를 등에 안고 살아왔다."

- 빌리를 연기하기 위해 수화를 배워야 했다.
"연기와는 별개로 3개월 전부터 수화를 배웠다. 가장 어려웠던 건 손만 가지고는 대화하기가 어려웠다는 점이다. 수화는 손짓뿐만 아니라 얼굴 표정 자체가 '말'이다. 수화를 배우기 위해 작위적인 표정을 지어야 할 때가 있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표정을 지어야 하나' 혼란이 있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청각장애인은 손만 가지고 말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얼굴이 손보다도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말 하나 하나를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표정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표정 하나 하나를 수화선생님에게 배웠다.

수화를 배워보니 수화 자체가 그림 같고, 알아보기 쉽게 만들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외운다고 생각하면 배우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제가 배워야 했던 또 다른 언어라고 생각해보니 말로 대사를 하는 것보다 수화를 할 때 감성이 풍부해지는 느낌이었다."

- 아버지 크리스토퍼는 빌리에게 비장애인의 삶을 강요했다. 이재균씨 역시 극 중 빌리처럼 강요받는 삶을 산 적이 있다면.
"아버지가 오랜 기간 직업군인이었다. 어릴 적에 잘 놀아주시기는 했지만 모든 일에 강압적이었다. 처음에 연기를 시작한다고 말씀을 드렸을 때에는 '네까짓 게 무슨 배우를 한다고' 하며 질책하셨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의 아버지의 모습과는 딴판이다. 제게 먼저 '아들' 하고 전화를 걸어주신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아버지가 다정하게 전화를 거시면 저는 당황해서 아버지의 전화를 빨리 끊고는 다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아빠가 자꾸 이상하게 전화하신다'고 대화를 건넨다."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이재균 "빌리는 항상 듣기만 하고 말을 거의 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처음으로 대화가 통한 여자가 실비아다. 실비아는 부모님이 청각장애인이라 부모님과 소통하려는 대화를 많이 했을 것이다. 빌리가 이야기할 때 다른 사람 같으면 듣고만 있었을 텐데 실비아와는 진정한 소통이 가능했다."

▲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이재균 "빌리는 항상 듣기만 하고 말을 거의 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처음으로 대화가 통한 여자가 실비아다. 실비아는 부모님이 청각장애인이라 부모님과 소통하려는 대화를 많이 했을 것이다. 빌리가 이야기할 때 다른 사람 같으면 듣고만 있었을 텐데 실비아와는 진정한 소통이 가능했다." ⓒ 예술의전당


- 여자친구 실비아는 빌리에게 어떤 의미의 여자인가.
"빌리가 헤맬 때 가장 큰 힘이 되어주는 존재가 실비아다. 청각장애인에게 찾아온 첫사랑은 가족보다 훨씬 중요한 사람이라고 한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비장애인과 똑같지만 단지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격지심을 갖는다.

맨 처음 실비아를 보았을 때에는 정상인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청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는 공감대가 커진다. 실비아를 만난 후 빌리는 가족을 떠날 생각을 할 정도로 그에게 비중이 큰 여자다."

- 실비아는 빌리를 만나기 전부터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빌리의 곁으로 간다.
"빌리는 항상 듣기만 하고 말을 거의 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처음으로 대화가 통한 여자가 실비아다. 실비아는 부모님이 청각장애인이라 부모님과 소통하려는 대화를 많이 했을 것이다. 빌리가 이야기할 때 다른 사람 같으면 듣고만 있었을 텐데 실비아와는 진정한 소통이 가능했다.

실비아가 남자친구의 곁을 떠나서 왜 빌리의 곁으로 오게 되었을까 하는 것에 대해 연출가 및 배우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빌리가 비장애인처럼 말하고 듣고 소통하려는 점에 실비아가 매력을 느꼈다는 결론을 내렸다. 실비아의 남자친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실비아는 남자친구보다 빌리와 함께 있을 때 훨씬 소통이 잘 되었다. 이런 점 때문에 실비아가 빌리의 곁으로 올 수 있었다."

- 빌리의 형 다니엘은 동생의 여자친구 실비아에게 입을 맞춘다.
"그 장면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든 가족들이 빌리를 비장애인처럼 말하게 하려고 온 신경을 쏟았을 것이다. 형 다니엘은 동생에게 쏟아지는 관심에서 제외되어 외로웠을 것이다. 가족 중에서 다니엘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 사람은 다름 아닌 동생 빌리다.

그러다 보니 빌리는 다니엘의 얼굴 표정만 보아도 형이 어떤 기분인가를 너무나도 잘 안다. 하지만 다니엘은 동생 빌리의 것을 잘 빼앗는다. 양말 등 다니엘이 빌리에게 가져간 게 많다. 다니엘은 실비아에게 키스하기 전에 '내게서 빌리를 뺏어가지 마'라는 대사를 한다. 실비아에게 다가서는 다니엘의 마음 한 편에는 실비아가 빌리를 빼앗아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이재균 연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