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월화드라마 <오만과 편견>의 한 장면. 한 취업준비생이 취업 비리를 조사해달라고 하지만, 이장원(최우식 분)은 이를 무시한다.

MBC 월화드라마 <오만과 편견>의 한 장면. 한 취업준비생이 취업 비리를 조사해달라고 하지만, 이장원(최우식 분)은 이를 무시한다. ⓒ MBC


MBC 월화드라마 <오만과 편견>의 날라리 검사 이장원(최우식 분)이 '칼퇴'를 하려하자, 수사관 유광미(정혜성 분)는 담당 사건의 피해자가 내원하기로 했다며 말린다. 사건의 피해자는 자신이 시험을 친 수출입 은행 신입사원 모집 과정에서 비리가 있었다며, 수출입은행 은행장을 비롯한 다수의 고위 관료를 고소한 취업준비생이다.

'또라이'가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신청한 말도 안되는 사건이라고 생각한 이장원은 학원이 끝난 후 겨우 시간을 내서 법원을 찾아온 피해자에게 갖은 모욕을 준 후 돌려보낸다. 그리고 다음 날 정오까지 사건들을 해결해 놓으라고 한 문희만(최민수 분) 부장검사의 지시에도 흥겹게 '칼퇴'를 하는 이장원을 지켜 본 피해자는 그가 클럽 스테이지에 나가 춤을 추느라 놓고 간 가방을 들고 나른다. 그 가방에는 다음날 정오까지 해결해야 할 피해자들의 정보가 담긴 온갖 사건 서류들이 들어있다. 피해자의 조건은 단 하나, 의뢰한 사건을 해결하라는 것이다.

수석검사 구동치(최진혁 분)는 위기에 빠진 이장원의 부탁을 받고 함께 사건을 해결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저 취업준비생의 억울한 사연인 줄만 알았던 사건이, 그가 해결하려 했던 성형외과 간호조무사의 자살 사건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문희만 부장검사가 그냥 던져 준 사건이 아닌 것이다.

간호조무사를 성추행 해 죽음에 이르게 한 성형외과 의사는, 스펙도 없고 토익 점수도 낮으며 심지어 입사지원서를 쓸 줄 몰랐지만 이른바 '빽'이 좋아 수출입 은행에 들어간 이의 집안과 연관이 있었다. 그리고 그 집안은 국회의원의 두둑한 후원자들이었다. 그렇게, 간호조무사의 자살 사건과 억울한 취업준비생의 사연은 하나의 큰 그림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가진 게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포기하지 않는 것'

간호조무사는 죽음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포기하려 했지만, 고깃집 알바를 하면서 어렵게 도전한 취업 시험의 결과를 포기하지 않으려 검사의 가방을 훔쳐 협박까지 불사한 취업준비생의 열의가 사회적 비리의 그림을 제대로 그려내게 했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어서는 그의 열의는, 검사 한열무(백진희 분)의 아버지가 아들의 사건을 포기하지 않은 열의로 이어진다. 한열무 동생의 사건이 이름 모를 검사의 지시로 석연치 않게 종지부를 찍게 되었지만,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등지는 그날까지 법원 앞에서 샌드위치 맨이 되어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했다.

동생을 죽인 범인이 검사라는 권력을 가진 구동치라 오해한 한열무는 이제 그만 포기하라고 아버지에게 읍소한다. 범인은 우리처럼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힘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지만 아버지는 오히려 그러면 더욱 포기할 수 없다고, 가진 것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한열무는 그런 아버지의 말을 되새기며 검사가 되었고, 이제 다시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아 동생의 사건을 해결하려 한다. 그리고 그녀에겐, 자신이 놓친 유괴 사건으로 인해 검사가 된 구동치란 든든한 동지가 있다.

돈 있고 빽 있는 동료 학생에게 취업의 자리를 빼앗긴 취업준비생이 고소한 자들의 면면을 보면, 그건 몇몇의 사람이 아니라, 그를 세상에서 배제시키려 한 이 사회, 그리고 이 사회의 부도덕한 비리이다. 그런 합법적 고소의 뜻을 꺾였을 때, 그는 검사를 협박하는 불법적인 수단조차 마다하지 않는다.

'아나키스트적 행위' 떠오르게 한 <오만과 편견>

 27일 첫 방송을 시작한 MBC 새 월화드라마 <오만과 편견> 포스터.

MBC <오만과 편견> 포스터. ⓒ MBC


그런 그의 행동은 같은 날 <한겨레> 신문에 실린 후지이 다케시의 칼럼 '신호등 안지키기'의 '아나키스트적 행동'을 떠올리게 한다. 후지이 다케시는 최근 번역된 미국의 인류학자 제임스 스콧의 '우리는 모두 아나키스트다'를 소개했다. 제임스 스콧은 그의 책에서 자동차가 지나다니지도 않는데 신호등을 지키는 길에서 신호등 어기기처럼, '합당하지 않은 사소한 법들을 매일 어기도록 하라'고 주장한다.

이런 황당한 '아나키스트적 행동'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제임스 스콧은 이런 일상적인 법에 대한 저항이, 앞으로 언젠가 정의와 합리의 이름으로 중요한 법을 어기라는 요청을 받을 때를 대비하는 '아나키스트식 유연체조'로, 모든 것을 규격하고 관리하려는 국가에 대항하여 자율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보하기 위한 작은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아나키스트'란 파괴적인 게 아니다. 그는 국회에서 하는 법의 제정조차 기존의 국가적 경계를 넘어서는 '아나키스트'적인 행위로 규정하며, 근본적으로 정치가 그런 것이라고 한다. 즉, 국가는 우리를 의지하게 만들려 하지만 우리가 그 안에서 안존할 것이 아니라, '주체'로서 국가를 건강하게 만드는 행위가 바로 '아나키스트'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제임스 스콧의 주장한 '아나키스트적 행위'의 정신은, 묘하게도 <오만과 편견> 속 취업준비생의 불법적 일탈과 연관된다. 그의 합법과 불법을 넘나들며 비리를 파헤치려는 의지가, 문희만이 거대한 권력의 그림자를 파헤치는 도구가 된다.

이렇게 취업준비생의 의지는 죽는 순간까지 억울함을 포기하지 않는 한열무 아버지로, 그리고 가난한 공장 수위의 아들과 공장 노동자의 딸로 검사가 되어 자신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 구동치와 한열무로 이어졌다.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 그것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드라마는 힘주어 말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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