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스 공식 포스터

소프라노스 공식 포스터 ⓒ HBO


<소프라노스>는 1999년 HBO에서 첫 방영해 8년 동안이나 고공의 시청률을 유지한 미국 드라마계의 전설이다. 유료 케이블 채널로서는 불가능한 시청률을 내며, 전통적인 북미 드라마의 판도를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는 이 드라마. 전문가와 평론가뿐만 아니라, 전 미국민이 열광한 드라마 <소프라노스>의 흥행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소프라노스>는 마피아 두목이라는 남다른 직업을 가진 40대 가장을 중심으로, 그의 가족들의 소소한 일상을 묘사한 가족 드라마다. 대도시도 아닌 변두리 공업지역인 뉴저지에서, 그의 가족과 친지는 이탈리아 이민자 2세로 살아간다. 이 작품은 각 세대와 성별, 출신 계급을 섬세하고 현실적으로 그려내면서, 광범위한 시청자를 흡수할 수 있었다. 사실 국내 실정은 다르지만, 잘 만든 가족 드라마는 곧 국민 드라마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해외 시장의 정설이다.

주인공 토니(Tony Soprano)는 비록 끔찍한 마피아에 불과하지만, 가장으로서는 꽤 평범하다. 일과 가정사를 철저하게 분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프라노스 가의 특별한 점은 무엇인가?

누가 우리 가족을 망쳐 놓았나?  

소프라노스 작가이자 감독인 데이빗 체이스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타락한 범죄자인 마피아 보스가 그를 둘러싼 평범한 가족들의 이기심 때문에 정신적 발작을 일으키는 것이 이 시리즈의 '핵심주제'이자 '조크'라고 했다. 그리고 그 평범한 이기심과 위선을 창출하는 근본을 사회와 정치라고 진단, 더욱 근본적인 미국사회라는 것에 거대한 개념을 두었다고 밝혔다.

결국 그는 미국이 국제 마피아이며, 미국 국민들의 이기심과 윤리적 불감증이 도를 넘었다고 선언한 셈이다. 과감한 설정이다. 그리고 본인의 주장에 타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극적 장치를 만들어 냈다.

명문대의 도가 넘는 등록금, 국민들을 빛더미에 몰아넣은 부동산 버블, 9·11테러를 교묘하게 이용해 사회적 약자 계층을 구석에 몰아넣은 부시 정권, 야당의 무능력, 부패한 기득권과 지역 정치인, 극우, 의료보험 제도 등을 낱낱히 까발리며 총 87편 동안 열렬한 반응을 얻어왔다.

그 고발 방식 또한 굉장히 치밀해서, 시네마틱하지만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건으로 만들기 위한 디테일 작업이 매우 성실하다. 극 중 인물들은 실제로 미국 길거리에 돌아다닐 것처럼 연출되었으며, 실제 존재하는 기업과 학교를 맹렬히 비난하며 리얼리티를 극대화했다. 결국 요점은 이렇게 무능하고 타락한 국가에서 국민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소프라노스>의 한 회는 이러한 사회적 이슈 한 가지와 중심인물들의 사건이 결합돼, 한 편의 단편영화처럼 만들어진다. 그것이 작가의 의도라고 한다. 하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고발용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결국 일방적인 고발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소프라노스>는 드라마라는 매체가 가진 힘을 잘 이용하여, 서로 대립하는 인물들의 배경과 사정을 설득력 있게 묘사했다.

여기서 간단하게 소프라노스 가의 중심인물들을 소개한다.

베이비 부머 vs. 8090세대 
  
드라마 속 40대 후반 부부인 토니와 카멜라는 현재의 우리네 5060과 다르지 않다. 무조건 기호 1번인 공화당을 찍으며, 진보세력과 동성애자들은 지옥에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소프라노스 부부. 그들은 문화나 학문이 말장난이라고 생각하고, 젊은이들의 어리석음을 비웃는다. 특히 아이들이 반항하거나 대들면 비웃음은 분노로 바뀌어, 토니는 발작을 일으키고 카멜라는 소리를 질러댄다. 사실 이 드라마의 8할 이상이 가족간의 분노와 욕설이다.

소프라노스가의 두 아이는, 고등학생으로 시작해 시즌6에서는 완전한 성인이 된다. 누나인 메도우는 현대 여학생답게 딱 부러지고 총명하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사채와 청부살인, 매춘으로 가족을 부양한다는 것을 깨닫고, 큰 혼란에 빠진다. 하지만 더러운 돈으로 명문대학인 콜롬비아 대학에 진학하고, 그 후 몇억짜리의 로스쿨을 간다고 선언하는 그녀는, 말로만 윤리를 부르짖는 전형적인 위선자로 성장한다.

남동생인 A.J (Junior Soprano)는 우둔한 청소년이다. 본인이 자각하지 못할 뿐, 그 역시 도덕적 기준이 완전히 거세된 환경에서 성장하며 이기심의 완전체가 된다. 종국에 그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전혀 인식하지 못하며, 그저 잡히는 대로 지껄이는 청년이 된다. AJ는 미국인들이 극도로 혐오하는 캐릭터라고 한다. 소프라노스 형제의 공통점은 '혼란'이다. 정체성을 찾아갈 나이에 그들이 유일하게 목격하는 것은, 부모의 위선과 쓸모없는 공교육뿐이다.

미국의 교육 시스템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비록 주입식 교육은 덜하지만, 각종 '방과 후 스펙'과 '자금 여부'에 따라 랭킹이 매겨진 대학교에 진학해야 한다. 공립 지역 대학에 가면, 교육은커녕 온갖 마약과 유흥에 물들어 미쳐 버리는 현실을, 드라마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무한 '사이클'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또래와 무한 경쟁하는 메도우는, 급기야 각성제까지 먹고 공부를 한다. 이는 미국 상류사회에서 보편화된 일이라고 한다.

메도우가 부모와 투쟁하는 과정은 인상적이다. 그녀는 이성이 발달한 인물로, 부모의 출신에 따른 딜레마를 이해하지만, 그들에게서 결코 독립할 수 없는 본인의 현실을 받아들인다. 미국의 월세 대란과 실업률은 부시 정권 중기에 정점을 찍고, 맥도날드 일조차 구할 수 없어서 부모에게 손을 내미는 청년층의 풍경은 우리나라보다 심각하다. 그녀는 고학년이 되어 빈민구제소에서 법률상담 봉사활동을 하지만, 본인은 아이비리그 출신의 지식인이 되야 하지, 결코 그러한 빈민이 될 수 없음을 직감하고 태세를 전환한다.

드라마 표면에는 일종의 정치적 갈등이 주를 이루는 것 같지만, 좀 더 본질적인 남녀 대립관계 역시 돋보인다. 어떻게 남성 작가가 여자 입장에서 드라마를 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남성 vs. 여성

소프라노스 부부는 남성이 생계를, 여성이 가정을 책임지는 세대다. 토니는 대부업으로 돈을 벌지만, 뉴저지라는 촌동네 마피아로 대략 기업의 간부쯤 되는 수입을 번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시즌1부터 끊임없이 이렇게 주장한다.

"기업은 희대의 미친 놈이고, 멀쩡한 놈들은 아동 성추행이나 하고, 금융업은 사람 죽이는걸 제외하면 마피아와 하는 짓이 똑 같다. 미국 사회에서 정직한 부자가 말이 되나? 하나 있다. 의사다. 그러니 내 딸은 반드시 의대에 가야 한다."

대충 이런 내용이 토니의 강력한 입장이며 지상과제다. 그는 교육받지 못했지만 지적인 인물이며 결국 답답증을 견디지 못하여 정신 발작을 일으킨다. 그는 어머니와 아내, 자식들과 결코 자신의 인생을 논할 수 없다. 그들을 보호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래 친구들은 모두 잠재적인 적이다. 마피아 사회는 조금만 속을 내보여도 잡아먹히는 경쟁 사회이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맘이 통하는 친구는 FBI에 협력한다는 이유로 본인이 직접 죽였다. 이러한 토니가 찾아가는 인물이 이 드라마의 인물 중 유일하게 비가족 일원인, 정신과 의사 멜피다.

"모든 게 잘 돌아가고 있었어요. 좀 늦은 감은 있지만. 그런데 최근에는 모든 게 끝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좋은 시절은 다 간 거죠."
"많은 미국인들이 그렇게 느껴요."
- 토니와 닥터멜피의 대화 중


닥터 멜피는 토니의 동년배 여의사로, 고급 손님들의 우울증을 치료하며 거액의 상담료를 받는다. 그녀와 토니의 대화는, 왜 미국인들이 다 그렇게 우울증에 걸려 약을 달고 사는지에 대한 고찰이 대부분이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강대국이자 이민 가고 싶은 나라 1위인 미국의 자국민들은, 고질적으로 불행하며 정신 상담의를 생명줄처럼 달고 산다. 시즌1 첫회에서 토니는, 그것이 정부에 노예처럼 얽매여 더 이상 투쟁하지 않는 국민성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멜피는 토니의 입장에서 '신여성'이다. 지금껏 보지 못한, 자기와 동등한 대접을 받고 자란 여성인 것이다. 멜피는 남자에게 의지할 필요가 없으며, 어떤 차별도 모른다. 전통적인 백인 엘리트 가정에서 성장한 그녀는 토니의 주변 여자들에 비하면 자존감이 높다. 화장이나 명품으로 본인을 치장할 필요도 없으며, 관계에 집착하지 않는다. 토니는 그녀를 자신의 어머니와 비교하면서 열등감을 느끼고, 그녀를 여성이라는 성적 도구로 낮추어야 하지만, 멜피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 둘 역시 팽팽한 전쟁을 거듭한다.    

토니는 아내 카멜라를 기만하며, 쉴 새 없이 바람을 피운다. 카멜라는 그 꼴을 도저히 참을 수 없지만, 자식을 둔 처지에 경제권이 전혀 없기 때문에 별 도리가 없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토니의 돈을 훔쳐서 개인 투자를 하는 희극을 벌인다.

이렇듯 소프라노스 부부는 매우 보편적인 남녀관계에 기인한다. 남자는 가정이라는 제도에서 압박을 느끼지만, 그것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안락한 집, 건강하고 예쁜 아이들을 볼 때 등, 필요할 때만 소중한 것이다. 카멜라 역시 마찬가지다. 남편은 지옥이며, 더러운 돈으로 자식들까지 범죄에 끌어들이는 일은 그녀에게 치욕이다. 그러나 그녀는 끝까지 버티며 자신의 몫을 부지런히 챙긴다. 시즌을 거듭할수록 번창하는 토니의 수입은 이런 상황을 참 매끄럽게 처리해준다.

이 경제적 권력을 두고 남녀가 벌이는 전략싸움은, 소프라노스 가정뿐 아니라 드라마 전반의 부부들의 일상생활로 묘사된다. 하지만 남녀관계는, 생존권이 걸리는 순간 풍비박산이 난다. 그것이 <소프라노스>가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이 드라마는 여성의 모성애와 사랑은 인정하는 반면, 남자의 감정은 매우 이기적으로 묘사하며, 동시에 더이상 갈 곳이 없는 고전 마피아들의 생을 통하여 중년남성의 공허함을 작품으로 승화 시켰다. 마지막으로 또 중요한 인물이 있다. 토니의 친누나인 재니스다.

미국 진보세력의 추락... 샌프란시스코의 위상

재니스는 마피아 가족의 남성우월주의에 반하여, 성인이 되자마자 뉴저지에서 도망친 개성 있는 여성이다. 그러나 그녀는 오랜 세월에 걸친 좌절과 태생적인 분노로 인해, 아주 기묘한 인물이 되어 돌아온다. 먼저 그녀는 절대로 일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어떤 교육 혜택도 받지 못했으며 웨이트리스나 전업주부로 살아야 하는 현실을 그녀는 거부한다. 하지만 돈이 땅에서 떨어질 리는 없는 법. 그녀는 결국 타인에게 기생하며 비굴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

미국 히피문화는 그 폐해가 심각하다. 드라마는 전 세계가 샌프란시스코 히피 컬처를 비웃는다고 꼬집는다. <소프라노스>뿐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미국 블랙 코미디는 히피 문화를 증오한다. 이유는 너무 간단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급진세력이므로, 현실이 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2차대전을 목격한 세대이므로 현실에 정의나 논리가 있다고 믿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들이 여러 '문화활동'과 '정신혁명'을 위해 고군분투할 동안, 가족은 그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

토니 역시 거지가 되어 돌아온 누나를 도와준다. 그는 끊임없이 밖에서 사람을 죽이고 마약을 거래한 돈으로 가족들의 '품격'을 유지해 주어야 한다. 아내에게 신형 벤츠도 사주어야 하고, 딸래미의 대학 기부금으로 5억도 바쳐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토니가 범죄자라는 이유로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 놓는다. 이러한 가족들의 위선에 토니는 치를 떤다. 재니스는 시청자들의 분노를 사는 악역으로 등장하지만, 한창 때는 진정으로 시민혁명에 참여한 혁명가의 흔적이 보인다.

한편 메도우는 자신을 부양하는 부모의 말은 귀담아 듣지도 않으면서, 직접 여성혁명을 실천하며 살아온 실패한 고모에게는 큰 영향을 받는다. 그녀는 고모의 말이라면 듣는다. 이런 문학적 장치가 <소프라노스> 곳곳에 심겨져 있으며, 큰 매력 포인트이다.

<소프라노스>와 미국의 근현대사

<소프라노스>는 미국사회를 쉽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미디어다. 일상적인 풍경에서부터 정치적 이슈까지, 8년에 걸쳐 꼼꼼하게 제작되어 왔으며, 배우들의 연기 또한 일품이다. 충격적인 엔딩 장면은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기 이를데 없다.

물론 <소프라노스>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사악하고, 그 현실 또한 음산하기 짝이 없다. 자본주의 사회의 한계에는 도저히 답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자국민의 현실을 하나부터 열까지 모조리 풍자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 그러한 언론과 소통하고픈 국민들의 의지, 이것 하나만으로 미국이 얼마나 가능성 있는 나라인지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2014년 오늘날 인기를 누리는 드라마 <미생>이나, 같은 가족물을 다루는 <가족끼리 왜이래> 등의 시리즈가 과연 사회구조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한국 특유 대기업의 과도한 '갑질'과 세대간의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격차를 설명하고 있는가? 우리의 언론은 역사와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고 있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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