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아, 아버지가 여기 있다. 아버지가 끝까지 싸울 거야. 내 모든 걸 바쳐서 너를 다시 품에 안을 거야."

"'중앙정부의 정책이 잘못되었다'라는 주장은 어디든 있을 수 있습니다. (지자체가 반대하면) 왜 정권과 대립이라고 하는지. 그것은 중앙정부의 생각이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 주변의 갈등현장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하나는 정부 정책에 반대한 대학생 43명이 살해됐다는 의혹이 있는 멕시코에서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다른 하나는 미군기지 이전을 두고 첨예한 대립이 벌어지고 있는 일본 오키나와 현의 오나가 타케시 오키나와 지사 후보가 한 발언이다.

바로 옆 이웃나라에서부터 지구 반대편까지 전 세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우리 사회를 비추는 또 하나의 창이 되었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세계는 지금>(KBS 1TV, 토요일 밤 10시 30분)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우리 삶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글로벌 이슈'를 통해 우리사회를 되돌아보는 KBS의 대표 시사교양 프로그램이다.

심층성, 현장을 넘어 가려진 진실에서 나오는 것

 강윤기 PD가 실종 학생 아버지와 인터뷰 하고 있다.(좌) 43명 대학생들이 살해된 곳으로 추정되는 쓰레기하치장. 강 PD가 시신은 모두 태워져 유전자 감식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

강윤기 PD가 실종 학생 아버지와 인터뷰 하고 있다.(좌) 43명 대학생들이 살해된 곳으로 추정되는 쓰레기하치장. 강 PD가 시신은 모두 태워져 유전자 감식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 ⓒ KBS


지난 15일 방송에서는 멕시코 대학생 43명의 실종사건을 첫 꼭지로 다뤘다. 지난 9월 26일(현지시간) 이괄라시(市)에서 시위를 벌이던 대학생들이 실종됐다. 멕시코 검찰은 지난 11월 8일 학생들이 지역 갱단에 의해 살해됐다고 발표했고 이괄라시 시장이 이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세계는 지금> 강윤기 PD가 시위현장을 찾아갔다. 강 PD는 현장에서 의혹을 확인하고, 학생들이 살해된 이유를 추적하기 위해 실종 학생의 부모와 친구들이 있는 시위현장에서 취재를 시작했다. 시위대는 두건으로 얼굴을 감싸 눈만 낸 채 각목, 농업용 칼로 무장하고 경찰과 대치했다.

<세계는 지금>은 "우리는 한 달이 넘도록 실종 상태인 43명 학생들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정부와 경찰은 오히려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며 불만감을 표출하는 시위대와 시위현장에서 "아이들을 이렇게 만든 책임자를 처벌해 달라"고 외치는 부모의 인터뷰를 내보내며 들끓는 분노를 생생하게 전했다. 세월호 사건 당시 무책임으로 일관했던 우리 정부의 모습이 겹쳐지는 순간이다.

취재진은 학생들이 살해당한 곳으로 추정되는 인근 산속에 위치한 쓰레기하치장을 찾았다. 강 PD는 DNA 감식을 어렵게 만들기 위해 피의자들이 시신을 불태웠다는 설명을 덧붙이며 검게 그을린 흙바닥을 보여줬다. 단발성, 외신의존 보도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사건의 참혹함이 시청자들에게 생생하게 전해졌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방송은 멕시코 정부가 들끓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사건을 급히 종결시키려 한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아직도 왜 우리에게 총을 쏘고 납치를 했는지 알 수 없어요"라고 말한 생존학생의 인터뷰도 내보냈지만 이면에 숨겨진 정부와 갱단과의 관계나 사건의 진상은 알 수 없었다.

다음주 방송에서 계속해서 소식을 전하겠다고 했지만 이날 방송에서 제기한 의혹은 방송 한 달 전인 10월 8일 국내 언론에서 보도된 내용이었다. 영상은 생생했지만 '심층적인 취재와 차별화된 시각'을 전달하겠다는 <세계는 지금>의 기획의도에는 부족했다.

해외 이슈와 '우리 삶과의  연관성'

 <세계는 지금>은 1994년 10월 10일 첫 방송을 시작해 올해로 방송 20년을 맞았다.

<세계는 지금>은 1994년 10월 10일 첫 방송을 시작해 올해로 방송 20년을 맞았다. ⓒ KBS


지난 2010년 10월 MBC < W >가 종영하면서 국제이슈를 심층적으로 보도하는 프로그램은 <세계는 지금>이 거의 유일하다. 일간지 국제면에서 해외 이슈를 다루지만, 할당된 지면은 한 면 정도에 불과하고, 여기 실리는 대부분의 기사들도 외신에 의존해 서구 편향적이다.

<세계는 지금>은 PD가 직접 현장에 가서 우리의 시선으로 바라본 국제 뉴스를 보도하기 때문에 더욱 빛을 발한다. 해외 이슈의 심층분석을 통해 현안들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생각해볼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도 <세계는 지금>의 존재는 중요하다.

15일 방송에서 멕시코 사건 다음으로 다룬 '아베정권 운명 가를 오키나와 지사 선거'는 해외이슈와 우리 삶과의 연관성을 깨닫게 해 준 아이템이다. 특히 미군기지 이전파와 이전 반대파로 나뉘어 접전이 계속되고 있는 오키나와 지사 선거는 한국에도 중요한 문제다.

"기지 이전을 못하게 될 때, 아베정권은 미국이 지원해줄 것이라는 잘못된 기대감으로 추진하고 있는 중국, 한국과의 대립정책을 멈출 것"라는 전문가 발언을 통해 일본의 문제가 우리 평화와도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주고자 했다. 하지만 전문가의 말은 배경 지식이 없다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었고, 이해를 돕기 위한 추가적인 설명은 없었다.

미군기지 이전 문제는 미군 재배치 전략과도 연관돼 있어 동북아 평화에 영향을 줄 뿐 아니라,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고 싶어하는 아베 정권이 속도를 내고 있는 정책이다. 미국은 2014년까지 현재 오키나와현 나하시의 후텐마 미 공군기지를 오키나와현 나고시에 있는 헤노코 해안으로 이전해 줄 것을 요구했다. 헤노코 해안으로 이전하면 연안을 매립해 활주로를 추가 건설할 수 있다. 기지를 이전 하지 못하면, 미군 재편 전략은 물론 미국과 연합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일본의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러한 추가적인 설명이 있었더라면 기지 이전 문제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한결 수월했을 것이다. 일본의 이슈와 '시청자 삶과의 연관성'을 설명해주려는 노력은 국내문제에 비해 낯설게 느낄 수 있는 시청자를 위한 하나의 배려이자 '우리 삶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글로벌 이슈'를 다루겠다는 <세계는 지금>의 기획의도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심층보도 약화되는 요즘, <세계는 지금>이 나아갈 길

  1994년 10월 10일 방영된 <세계는 지금>의 첫방송.'러시아 마피아, 자본주의 첨병인가' 편. (좌) 코리안 드림의 부끄러운 민낯을 고발한 '인도네시아 직업훈련소'편(1994년 10월 20일 방송)은 시청률 30%를 기록했다.

1994년 10월 10일 방영된 <세계는 지금>의 첫방송.'러시아 마피아, 자본주의 첨병인가' 편. (좌) 코리안 드림의 부끄러운 민낯을 고발한 '인도네시아 직업훈련소'편(1994년 10월 20일 방송)은 시청률 30%를 기록했다. ⓒ KBS


<세계는 지금>은 1994년 10월 10일 첫 방송 후 지난 20년간 외면했던 혹은 알지 못했던 세계 이슈들을 심층적이고도 차별화된 시선으로 전달했다.

1994년 10월 20일에 방송된 '인도네시아 직업훈련소'편에서는 인도네시아 젊은이들이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으로 파견되기 위해 어떠한 인권유린을 당하는지 보여줌으로써 '코리안 드림'의 부끄러운 얼굴을 고발했고, '20세기 마지막 식민지, 동티모르'편(1997년 2월 3일 방송), '최초공개! 비극의 현장, 그루지아의 압하스를 가다'편(1995년 10월 18일 방송) 등에서는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케냐 아동 성학대, 소녀들을 구출하라'편(2011년 8월 18일 방송), '중국 모피 마을을 가다'편(2014년 1월 11일 방송)은 아동인권과 학대당하는 동물을 다루는 등 주제도 계속 확장해 왔다.

  시사프로그램을 연성화하고, 언론의 핵심 기능인 심층보도를 약화시키는 요즘 20주년을 맞은 <세계는 지금>제작진이 지구 반대편 위험지역에서 던지는 메시지는 시사교양프로그램이 나아가야할 길을 보여주고 있다.

시사프로그램을 연성화하고, 언론의 핵심 기능인 심층보도를 약화시키는 요즘 20주년을 맞은 <세계는 지금>제작진이 지구 반대편 위험지역에서 던지는 메시지는 시사교양프로그램이 나아가야할 길을 보여주고 있다. ⓒ KBS


<세계는 지금>은 앞으로의 20년도 세계 곳곳의 소식을 생생하고도 깊게 전하겠다는 메시지를 밝혔다. 지난 10월 11일부터 11월 1일까지 4회에 걸쳐 방송된 20주년 특집 방송에서 총성이 끊이지 않는 팔레스타인을 두 차례 방송하고, 한국 언론 최초로 치열한 교전이 계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 최전방 현장에 PD가 직접 다녀왔다.

시청률을 이유로 시사 프로그램을 연성화하고, 언론의 핵심 기능인 심층보도를 약화시키는 요즘 <세계는 지금> 제작진이 지구 반대편 위험지역에서 던지는 메시지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나아가야할 길을 보여주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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