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신수지가 4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스타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전 국가대표 신수지가 4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스타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MBC <라디오스타>에서 재치 있는 입담을 보였던 신수지(23)를 수식하는 단어 중 하나가 '원조 체조 요정'이다. 지금의 손연재선수가 두각을 나타내기까지 신수지가 홀로 버티고 견뎌야 했던 각고의 시간이 있었고, 충분히 그는 자신의 몫을 해냈다.

신수지는 고등학생 신분으로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무대에 섰다. 당시 한국 체조계로서는 16년 만의 올림픽 출전이었다. '백 일루션'(한쪽 다리를 머리로 올린 뒤 수직으로 원을 그리는 기술)을 9회전이나 성공시켜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기대와 주목 속에 압박감도 느꼈을 터. 어느새 은퇴를 결심하고 이제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신수지를 만났다.   

체조 뒤로 하고 볼링 선수로 전향..."버틸 만큼 버텼다"

신수지는 한창 프로 볼링 선수를 위한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1차 시험에서 너무 긴장하는 바람에 점수가 잘 안 나왔어요!"라며 웃어 보였다. 

"원랜 오전과 오후로 나눠서 볼링 연습을 하고 골프도 하고 있었어요. 제가 요즘 목표를 갖고 집중하고 있는 운동이거든요. 일단 볼링 프로 테스트가 중요해서 거기에만 집중하고 있죠. 남들은 5년 정도 준비한다는데 제게 주어진 시간이 10개월밖에 없으니 누구보다 연습을 더 해야죠."

승부사 기질은 없어지지 않았다. 체조선수가 웬 볼링이냐 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신수지에겐 그간의 방황을 접고 인생의 방향을 잡게 해 준 고마운 운동이었다. 잦은 부상으로 체조를 접었다고 알려졌지만 자신의 어린 시절을 고스란히 내바친 운동을 뒤로 해야 했던 심정은 신만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아직 어린 나이에 체조를 그만뒀다고 하는 분도 있는데 체조계 쪽에선 '노장' 소리를 듣고 은퇴했어요. 버틸 만큼 버틴 겁니다. 물론 몸은 운동을 더 할 수도 있는 상태였지만, 더 이상 제 자신을 투자할 수가 없었어요. 생계유지의 문제도 있었고, 체조를 더 했다가는 몸도 마음도 다치겠다는 걸 느꼈죠. 최종 목표가 올림픽 무대였고, 그걸 이뤘기에 여한 없어요.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그만큼 못 할 거 같아요. 부모님도 절 뒷바라지 하면서 건강도 잃으셨고, 더 이상 체조선수로서 역할은 끝이라고 결심했죠."

"힘들게 선수생활 하는 손연재, 애정 어린 시선으로 봐주길"

 방송인 신수지가 4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스타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매일 울었고, 피와 땀이 범벅이기 일쑤였다. 은퇴 직전인 지난 2011년 전국체전 당시 심판 판정의 불공정성을 제기했다가 협회로부터 근신 처분을 받기도 했다. 신수지는 당시를 기억하며 "억울함이 있었지만 지나고 나니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그만큼 놓기 쉽지 않았던 체조에 대한 특별한 마음 때문이었다.

"수술을 받고 재활에 성공해서 그 경기를 잘해냈고, 박수도 받았어요. 제가 해낸 걸 모두가 봤는데 스스로 옹졸해 있었던 거죠. 그땐 별 생각 다했어요. 어릴 때부터 많은 질투도 받았고, 질타도 받았기에 혼자라는 생각에 휩싸인 거 같아요. 인대도 없이, 뼈가 삐어있는 상태로 경기에 나가기도 했고, 스스로 많이 외로웠던 거죠. 조울증도 왔어요. 부상으로 제가 할 수 있던 기술도 안 되던 때였거든요.

아무래도 선수로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를 잊을 순 없죠. 제 종목을 끝내고 경기장을 나가는데 태극기를 들고 사람들이 응원해주는 모습이 감격스러웠어요. 고생은 길고 감격은 짧다는 것도 느꼈죠(웃음). 김연아 선수는 진짜 대단한 거예요. 피겨를 그만뒀다가 다시 시작했던 거잖아요."

누구보다 선수의 고충을 알기에 신수지는 후배 손연재를 기특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방송 활동과 더불어 광고에 등장하는 손연재를 두고 혹자는 경기력 문제와 함께 비판하기도 하지만, 신수지는 "연재는 잘하고 있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는 게 중요하다"고 가감 없이 말했다.

"방송을 나가는 것도 중요해요. 인지도가 있으면 후원도 받고, 전지훈련도 받을 수 있거든요. 국내에 체조 전용 체육관이 없는 현실에선 중요한 일이죠. 연재가 짧은 시간 안에 성장한 건 그만큼 큰 노력을 한 거예요.

평소엔 부담일까봐 연락을 서로 잘 안하는데, 언젠가 연재가 러시아에서 훈련받을 때 연락 온 적이 있어요. 제가 국내 최초로 러시아로 건너가서 그쪽 국가대표 친구들과 함께 연습을 하고 훈련을 받았거든요. 연재가 '그때 언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 거 같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전 왕따도 당했고, 코치에게 무시 받으며 연습했거든요. 제 이후로 후배들이 러시아의 훈련 과정을 밟게 된 셈이에요. 

힘들게 선수생활을 하는 연재를 좀 더 애정 어린 시선으로 봐줬으면 좋겠어요. 물론 지금의 연재가 부러운 면도 있어요. 제가 선수생활 할 때 그런 지원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도 드는데 적어도 전 '최초'라는 타이틀이 있잖아요. 러시아 전지 훈련도 그렇고, 감사하게도 '체조 요정'이라는 수식어도 사람들에게 받았고요. 연재가 없었다면 저도 없었을 거예요. 그동안 수고했다고, 좀 여유를 가져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궁극적 목표는 지도자..."해설도 꾸준히 하고 있어요"

 방송인 신수지가 4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스타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사실 '신수지' 하면 체조선수라기보다 MBC <댄싱 위드 더 스타>라든지, 야구장에서 시구하는 모습 등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몇 편의 예능 프로에 출연하는 모습에 혹시 예능인으로 나가는 건 아닌지 생각이 들 법도 한데, 신수지는 "절대 연예인이 되고 싶은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 스포츠인이에요. <라디오스타>도 스포츠인 특집이라서 나간 거죠. 스포츠인으로서 인지도가 중요하기에 방송을 함께 하는 거지 연예인의 길을 가려는 건 아닙니다. 연기 도전요? 그냥 대사 없이 몸으로 표현하는 거면 해볼까요? (웃음) <댄싱 위드 더 스타>는 은퇴 후 힘들었던 시기를 잘 다잡게 해준 프로였어요. 경기장에 다시 설 수 없던 절 무대에 세워줬고, 관객과 교감할 수 있게도 해줬죠. 근데 너무 금방 탈락해서 아쉬웠어요!

볼링과 골프 역시 방황기를 접게 해준 고마운 운동이에요. 선수생활도 무척 길잖아요. 궁극적으로 체조선수 지도자가 되고 싶지만, 그 길을 가려는 절 잡아줄 수 있는 운동이 두 종목인 거예요. 체조에 비하면 즐기면서 오래 할 수 있는 운동이죠."

방송 활동에 대해 솔직한 생각을 전한 신수지는 "앞으로도 스포츠 관련이면 어떤 방송이든 나가고 싶다"며 "체조 경기 해설도 꾸준히 하고 있다"고 의지를 보였다.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찾았고, 그걸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아는 만큼 현재의 신수지는 밝고 좋은 에너지를 뿜고 있었다.

"원래 제 화두가 도전 그 자체예요. 본래 활달한 성격이기도 하고요. 내년엔 골프를 열심히 해서 실력을 쌓고, 체육학과 코치학 공부를 할까 합니다. 이론을 공부하면서 우리나라 선수들에게 맞는 방법을 찾고 적용하고 싶어요. 진작 알았으면 저도 선수 때 써먹는 거였는데! (웃음) 아마 제 경험이 나중에 후배들을 키울 때 도움이 되겠죠. 점차 생활력도 생기는 거 같아요. 앞으로 다가올 인생 난관들도 잘 비켜나갈 거예요."

신수지 손연재 라디오스타 리듬체조 볼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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