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트>에서 두 아이의 엄마 선희 역의 배우 염정아가 30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카트>에서 두 아이의 엄마 선희 역의 배우 염정아가 30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비정규직 노동자면서 사춘기 아들과 어린 딸을 둔 엄마는 늘 힘에 부친다. 자신에게 지워진 삶의 무게도 벅차거늘 아직 세상으로 나가기엔 유약한 아이들도 함께 품고 간다. 하지만 엄마는 그래서 강하다.

영화 <카트>에서 바로 그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한 배우가 있으니 바로 염정아다. 사실 단편적으로 앞서 말한 노동자 이미지에 그를 대입하기란 쉽지 않다. 미스코리아 출신에 화려한 배역을 맡아왔던 톱스타 아닌가. 염정아는 그런 세간의 시선을 알고 있었고, 정면으로 돌파했다. 말로 의욕을 보이기보다 촬영 현장에 그대로 녹아들어갔다. 없어 보였던 기미도 하나둘 얼굴에 생겼고, 어느새 삶의 무게에 푸석해진 한 엄마가 대형 마트 노동복을 입고 서 있었다.

"꼭 하고 싶었어요. 시나리오가 왔을 때 드디어 이런 역할을 내게 제안하시는구나 생각했죠. 물론 역할이 제 모습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외형적인 면부터 벽을 깨고자 했죠. 기미도 그리고, 머리도 그대로 두고, 밥도 편하게 먹었어요. 살도 좀 쪘죠. 복장을 편하게 하니 밥도 많이 들어가던데요? (웃음)" 

"연기하면서 진짜 억울함 느껴...연대의 소중함 알았다"


마트의 발전이 곧 자신의 성장이라 믿고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했던 선희(염정아 분)가 하루아침에 해고 통보를 받았을 때, 염정아는 "진짜로 억울함이 들어 눈물까지 나왔다"고 회고했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투쟁기라는 시선엔 거리를 뒀다. 염정아는 <카트>를 두고 "사람들에게 강하게 주장만 하는 작품이 아닌, 그저 우리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카트>는 가족과 동료에 대한 이야기예요. 사랑의 다른 표현이죠. 인간 염정아는 본래 사회 문제에 관심이 전혀 없던 사람이었어요. 영화를 통해 그렇다고 어떤 사회의식이 생긴 건 아니지만 적어도 제가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됐죠. 우리나라 노동환경이 이렇게 안 좋은 줄 몰랐어요. 최소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옳다는 생각이 들었죠.

영화 속 선희 역시 처음엔 모범 직원이었기에 저와 같은 상태라 여겼어요. 그래서 영화의 모델이 된 실제 분들을 만나진 않았죠. 아무 것도 모르는 선희로 시작해야 했으니까요. 선희가 진실을 알게 되고 동료들과 화합하는데 그때 짜릿함이 오더라고요. 보통 연기할 때 테이크(특정장면을 촬영하는 횟수)를 많이 가면 흐름이 끊기고 감정이 떨어지는 편인데 이번만큼은 똑같이 유지되더라고요. 제 아들로 나온 도경수군과 할 때 더욱 그랬죠.

다들 진짜처럼 몰입하니 저도 선희가 돼 있었고,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순간에도 다들 빠져 있었어요. 자기 차례가 아닌 배우들도 모니터를 보면서 울고 있었고요. 친분과 상관없이 현장에서 다들 하나가 된 건 처음이었어요. 연대에 대한 느낌을 촬영하면서 받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카트> 이후의 변화? "주위를 둘러볼 줄 아는 여유가 생길듯"


함께 동료 노동자로 연기한 배우 문정희나 황정민과도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스스럼없이 친해질 수 있었던 건 바로 동지라는 의식을 공유할 수 있어서였다. <카트>로 인생의 큰 변화를 맞이할 것 같진 않지만 적어도 염정아 본인이 생각하는 자신과 이 사회를 돌아보는 계기는 될 것 같았다.

"실제로 전 불의를 보면 감정이 확 올라오는데 그걸 상대에게 말하진 않아요. 일이 커지는 걸 싫어했고, 조심하는 편이죠. 그런 점이 영화 속 선희와 닮은 것 같아요. <카트> 이후 제가 어떻게 행동할 거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예전의 저보단 주위에 더 관심을 갖게 되겠죠. 관객 분들도 그런 마음을 갖길 바라는 마음에 연기를 한 거고요.

다른 한편으론 <카트>를 통해 여성 리더십을 느꼈어요. 김영애 선생님이 현장에서 후배들과 함께 지내실 때 절대 권위를 내세우지 않으셨거든요. 무슨 발언을 하실 때도 부끄러워  하면서 '우리 열심히 해보자!' 이렇게 권해요. 절대 지시하지 않죠. 이게 바로 여성 리더십이자 엄마들의 힘 아닐까요."

화려하게 주목받는 모습만 접하다보니 잊고 있었다. 염정아 역시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라는 걸 말이다. 배우로서 그는 "일을 사랑하지만 작품으로 선택받는 게 어렵다는 걸 매번 느낀다"고 토로하면서 "가사 역시 엄청난 힘을 요구하는데 결국 일과 가사를 할 수 있게 하는 힘은 사랑"이라는 결론을 갖고 있었다.

"이런 말 하니 힘들어 보이나요? (웃음) 그리 힘들지만은 않아요. 제가 좀 긍정적인 편이라 뭐든 좋은 쪽으로 바꿔 생각하거든요. 물론 제 성격은 소심하고 상처도 잘 받고는 하는데 쉽게 잊어요. 그게 날 위해 좋더라고요. 어릴 땐 물론 방황도 했고, 날 다잡기 위해 많은 작품을 했죠. 불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서요.  

그게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더라고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흘러갈 수도 있었는데 말이에요. 불안함, 조급함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 나름대로 극복하더라고요. 나이를 먹으면서 돌아보니 그런 과정이 꼭 내게 필요했던 거 같아요. 이런 말이 젊은 후배들에게 와 닿지 않을 순 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거예요. 너무 쉬지는 말고, 그 시간을 그렇게 흘려보내라고요. 자신을 사랑하면서."




염정아 카트 도경수 문정희 김영애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