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건물의 옥상 위에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천연덕스럽게 웃으면서 철사줄로 다른 남자의 목을 휘감아 조르는 시늉을 하고 있다. 실제 상황은 아니지만 지켜보기에 섬뜩하다. 그런데 이 남자는 분명히,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행동을 선보이면서도 매우 밝은 표정으로 즐기고 있다.

이는 영화 <액트 오브 킬링>의 초반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바로 '안와르 콩고'라는 인도네시아 국적의 남자. 늙어서 머리가 희끗해진 그는 '국민영웅'으로 추앙받으며 한껏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다. 국가적인 행사에 초대받고, 여기저기 방문하는 곳마다 사람들은 열광하며 그와 인사한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살아가는 피폐한 삶과는 다르게, 그는 안락하고 평화로운 하루를 보낸다.

젊은 시절에 잘나가는 스포츠 스타였거나 유명한 영화배우였냐고? 결코 아니다. 이쯤되면, 그럼에도 그가 어떻게 이런 대우를 받으면서 살아가는지 상당히 궁금할 것이다. 물론 그가 영화를 한 편 찍기는 했다. 그 영화가 유명해진 '이유'는 아니지만, 그가 젊었던 날에 했던 '어떤 일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영화를 들여다보면 콩고가 어떤 방법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는지 그 배경을 알게될 것이다. 이 작품은 바로, 오는 11월 20일에 개봉할 예정인 다큐영화 <액트 오브 킬링>이다.

50년 전 인도네시아 대학살의 주역, '안와르 콩고'

 영화 <액트 오브 킬링>의 한 장면. 1965년 인도네시아 군부정권의 주도하에 벌어졌던 대학살의 주범 '안와르 콩고(사진 속 가운데)'는 오늘날 국민영웅으로 추앙받으며 살고있다.

영화 <액트 오브 킬링>의 한 장면. 1965년 인도네시아 군부정권의 주도하에 벌어졌던 대학살의 주범 '안와르 콩고(사진 속 가운데)'는 오늘날 국민영웅으로 추앙받으며 살고있다. ⓒ (주)엣나인필름


노년이 된 안와르 콩고는 값비싼 차를 타고, 마치 '정신적 지주'인 양 귀빈의 대우를 받으며 지역과 국가의 큰 행사에 참석한다. 그가 초대받은 행사는 대부분 '판차실라'라는 조직의 모임인데, 이 단체는 50년 전 학살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악명높은 단체다. 충격적인 것은 인도네시아 부통령과 정부인사들도 공식적으로 이 행사에 참석한다는 점이다.

1965년에 인도네시아에서는 쿠데타로 군부정권이 들어섰다. 그리고는 이에 비판을 제기하는 세력과 중국인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서 대거 살해했다. 이듬해인 1966년까지 2년에 걸쳐 사망한 피해자 수가 대략 100만 명으로 추산될 정도이니 엄청난 규모였다. 고문과 납치, 대량학살이 전국적으로 벌어졌고 여기에 '판차실라 청년단'이라는 극우세력이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암살단의 핵심인물이 바로 앞서 소개한 '안와르 콩고'인 것이다.

안와르 콩고는 "당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보자"는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우리 자랑스러운 역사를 알릴 기회"라며 신이 난 상태로 출연하는 것은 물론, 각본 작업에도 참여하고 현지 출연진 섭외에도 직접 나설 정도로 열의를 보인다.

당시 가담자의 적극적인 출연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한 사람의 삶이자 국가가 지나온 발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겉으로는 온화해보이는 어느 노인의 과거가 알려주는 인도네시아의 역사는, 참으로 처참하고도 슬픈 것이었다. <액트 오브 킬링>은 159분의 상영시간동안 그 진상을 속시원히 보여준다.

태연하게 웃으면서 '살해방법' 재연... 소름

 영화 <액트 오브 킬링>의 한 장면. 대학살의 주범 '안와르 콩고(사진 속 오른쪽)'는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당시 살해방법을 재연한다.

영화 <액트 오브 킬링>의 한 장면. 대학살의 주범 '안와르 콩고(사진 속 오른쪽)'는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당시 살해방법을 재연한다. ⓒ (주)엣나인필름


이 글의 첫부분처럼, 안와르 콩고는 들뜬 상태로 웃으며 살해방법을 재연한다. 자신이 세운 '업적'을 자랑하려는 듯이, 카메라를 앞에 두고 태연하게 당시의 기억을 꺼내어 보인다. "칼이나 낫으로 찌르면 피비린내가 너무 심하게 나서" 철사로 목을 졸라 사람을 재빠르게 죽였다며 이를 '효율적인 처리법'이라 부른다. 건물 옥상에서 살해한 시체를 자루에 담아서 강물에 던졌다는 증언도 이어진다. 모든 재연 과정을 하나하나 즐기는 듯한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소름끼칠 지경이다.

영화에 따르면 당시 살해 피해자가 '공산주의자'였다는 증거는 거의 없었으며 오직 자백 뿐이었다고 한다. 그 자백도 고문과 폭행으로 얻어낸 결과물이었다. 자세하게 묘사된 고문방법과 심문방식도 잔인함의 극한을 드러낸다. 거기다가 "어떤 질문으로 자백을 받아냈느냐"는 감독의 질문에 출연인물은 "질문이 뭐가 중요해? 답은 어차피 정해져 있는데"하고 대답한다. 그야말로 죄를 '만들어내서' 사람을 죽이는 '답정너'식 처형인 셈이다.

당시 대학살로 사망한 사람은 100만 명이 넘고, 안와르 콩고는 혼자서 1000명 넘게 살해한 것으로 추정된다. 집에서는 손주들에게 자상한 할아버지로 살아가는 안와르 콩고. 젊은 시절 극장 앞에서 암표를 팔던 청년이 악랄한 살인자로 돌변한 계기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 질문에 영화는 애국심으로 왜곡된 '반공만능주의'를 지적한다.

안와르 콩고는 어린 시절에 자신이 좋아하던 미국영화가 '좌파세력의 방해'로 극장에 걸리지 못하자 분노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런 분노를, 부당한 방법으로 집권한 군사반란 세력이 정당성 획득을 위해 이용했다. 정부가 선전영화와 세뇌교육으로 '공산주의자'에 대한 공포를 자극하면서, 동시에 극우세력의 만행을 묵인하고 때로는 독려하며 사실상 학살을 부추긴 것이다.

학살 대상에는 외부세력으로 쉽게 규정되는 중국인, 정부를 비판한 지식인 등이 불순세력으로 낙인찍혀 대거 포함되었다. '빨갱이 사냥'에는 집단살해를 비롯한 어떤 방식이든 용인되었고, 심지어 부녀자 겁탈과 약탈도 자행되었다고 당사자들이 증언한다.

돋보이는 감독의 재치

 영화 <액트 오브 킬링>의 포스터.

영화 <액트 오브 킬링>의 포스터. ⓒ (주)엣나인필름

안와르 콩고가 재연한 살인은 50년 전의 일이지만, 인도네시아의 살벌한 풍경은 현재진행형이다. 영화는 여전히 '판차실라'라는 조직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민간인 금품강탈과 온갖 불법행위를 고발한다. 약자를 대상으로 '권위'를 내세워 범죄를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그들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다. 그럼에도 인도네시아 정부는 자신들의 권력유지를 위해서, 충성스러운 극우세력을 "공권력과 동시에 필요한 자유로운 개인들의 모임"이라며 치켜세운다.

영화의 줄거리가 흘러가는 동안, 카메라는 안와르 콩고가 자신을 미화하느라 애쓰는 모습을 담아낸다. 이처럼 '액자식 구성' 같은 연출법에서 감독의 재치가 돋보인다.

열정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콩고와 당시 학살범들, 즉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자신들이 저지른 끔찍한 살인행위를 직접 실토하게 만든 것이다. 그들이 어찌나 자기정당화에 절실히 매달리는지 지켜보면 황당함에 실소가 터져나온다. 이런 과정에서 드러나는 감독의 유머감각이 영화의 무게감과 더불어 한층 영화를 흥미롭게 만든다.

결국 <액트 오브 킬링>을 보면 '애국이란 이름으로 치장된 폭력 앞에서, 인간의 존엄성이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 양 손에 피를 잔뜩 묻히던 청년시절에서 훗날 부유한 노년의 삶으로 연결된 안와르 콩고를 보자면, '승리한 가해자의 사회'가 어떤 모습인지 그 맨얼굴을 포착할 수 있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다시 옥상으로 돌아간 안와르 콩고. 그는 자신의 '업적'이자 인도네시아의 찬란한 '역사'를 영화로 표현하느라 피해자 역할까지 맡는다. 다시 학살현장에 선 그는 영화의 초반처럼 살해수법을 설명하는데, 굳은 얼굴에서는 웃음기가 사라진 상태다.

'살해재연'에서 직접 피해자를 연기한 뒤인지라 그랬는지, 안와르 콩고는 결국 구역질을 하다가 참지 못하고 옥상에 그대로 토해버리고 만다. 그러다가도 금세 입을 닦고, 비장한 표정으로 "(당시에) 양심이 시키는대로 했을 뿐"이라며 합리화를 시도하는 그의 모습은 무얼 말할까.

50년 전 인도네시아의 비극은, '반공'을 위해서라면 어떤 폭력도 용인하던 지난 시절의 우리 모습과도 겹친다. 구토가 나올 정도로 잔인한 짓도 '국가'와 '치안유지'를 위한 일이었기에 정당하다고 말하는 안와르 콩고의 모습이, 과거 독재정권의 만행조차 '경제발전'을 위한 '한국식 민주주의'로 포장되는 한국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쿠데타의 주역들이 여전히 권력으로 건재한 오늘날, 영화 <액트 오브 킬링>이 던져주는 메시지가 묵직하게 와닿는 것은 그런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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