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후드 메인 포스터

▲ 보이후드 메인 포스터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단 한 번의 시나리오 수정도 없이 1년에 사흘씩 꼬박 12년을 찍은 영화. 그 시도 자체가 실험적인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보이후드>가 극장가에 조용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의 3연작으로 한국에도 많은 팬을 확보한 감독은 소년이 성인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166분의 필름 속에 온전히 담아내고자 했다.

소년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소년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감독은 모두가 지나왔지만 누구도 같지 않을 귀중한 시간을 재현함으로써 이 질문에 나름의 답을 내어놓는다. 그야말로 특별해서 더욱 보편적인 성장 드라마다.

여섯 살 소년이 열여덟이 되기까지.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소년 메이슨 주니어가 어엿한 성인이 되어 홀로서기까지의 이야기를 영화는 그가 겪는 여러 사건을 나열식으로 보여주며 풀어간다. 소년이 겪는 사건은 어찌보면 특별하고 또 어찌보면 평범한 일상의 것들이다. 영화에서 메이슨은 여러 차례 이혼한 어머니를 따라 많은 일들을 겪지만 우리 역시 그와는 다른 방식으로 많은 일들을 겪어오지 않았던가.

소년이 성장하는 시간은 그의 부모가 치열하게 살아가는 시간이었고 그 시간 속에서 소년은 어느덧 훌쩍 자라 어른이 된다. 영화를 보는 관객은 소년의 성장을 옆에서 함께하는 듯한 감흥을 받을 수 있으며, 그로부터 스스로의 성장 과정을 되짚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과 한국의 상이한 문화를 감안하더라도 동일한 시기를 살아온 인간으로서의 공통점, 영화가 가진 진솔함이 이와 같은 공감의 바탕이 되어줄 것이다. 바로 이 점이 <보이후드>가 은근한 사랑을 받고 있는 결정적 요인이 아닐까 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메이슨 주니어는 여섯 살의 소년으로 등장한다. 홀로 누나와 자신을 돌보는 어머니 밑에서 또래의 아이들처럼 일상을 살아가는 소년, 바로 그가 영화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영화는 소년의 이후 12년을 마치 옆에서 보듯이 따라가며 그가 겪는 일상의 크고 작은 일들을 그의 눈높이에서 비춘다.

어머니와 의붓 아버지들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등장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메이슨 주니어의 눈높이에서 그려질 뿐 근본적인 원인과 전개까지 속속들이 파헤치지는 않는다. 관객은 이렇게 드러난 사건을 통해 인물들의 심리상태와 문제의 원인을 짐작하고 이해할 뿐이다.

보이후드 아버지와 행복한 한 때를 보내는 아이들

▲ 보이후드 아버지와 행복한 한 때를 보내는 아이들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드라마란 일부를 보여줌으로써 전체를 짐작하게 하는 장르가 아닐까 한다. 인물과 인물의 관계를 드러내고 그들이 소통하는 방식을 비춤으로써 그들 안에 내재된 더욱 많은 것들을 보여주는 게 드라마가 가진 힘일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영화의 주인공 메이슨 주니어의 웅얼대는 말버릇과 긴 머리카락, 하루종일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는 모습 등을 통해 그가 자기표현에 익숙하지 않고 내향적인 아이임을 짐작할 수 있고, 그가 타인과 관계맺는 방식으로부터 성장과정과 가정분위기 등을 추측하게 된다.

영화는 런닝타임 전반에 걸쳐 메이슨 주니어뿐 아니라 그의 누나와 어머니, 아버지의 소소한 드라마를 이어붙이면서 그들이 겪어왔고 지금도 겪고 있으며 앞으로 겪게 될 문제들을 고스란히 전달하고자 한다.

우리의 그것과 다르지 않은 성장드라마

영화 전반에 걸쳐 눈길을 사로잡는 특별한 사건은 몇 차례 등장하지 않는다. 어쩌다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조차도 이야기의 전반적인 모습보다는 메이슨이 그 사건을 겪는 한 순간을 보여주며 전체의 모양을 짐작하게끔 할 뿐이다. 그야말로 일상적인 에피소드의 나열이지만 메이슨이 스크린 안에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커가는 과정과 함께 나름의 의미를 얻는 식이다. 한 인간의 성장이란 이토록 평범한 사건들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었을까.

그가 상처받고 때론 감사하며 고민하고 나름의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동안 관객들을 그 순간의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대신 그저 따스한 시각으로 몰입해서 바라본다. 그의 성장이 우리의 성장과 다르지 않고 그의 삶이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그의 부모와 누나의 삶 역시 마찬가지다.

12년에 걸쳐 만들어진 영화 답게 그 사이 미국의 정치적 문화적 변화가 녹아든 부분은 놓치기 아까운 볼거리다. 폴더부터 스마트폰까지, 부시부터 오바마까지, PC게임에서 페이스북까지, 수많은 사회적 변화가 영화 속에서 압축적으로 보여진다. 배우와 영상, 시간이 함께 나이들어가는 독특함과 보편적 성장의 드라마까지가 적절히 어우러진 친근한 영화다.

주연을 맡은 엘라 콜트레인은 메이슨 주니어가 된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영화와 함께 자라난 그의 모습은, 그는 그저 살아갔을 뿐이고 영화가 그의 시간을 담아낸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의 누나 역을 맡은 로렐라이 링클레이터는 감독인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딸로 12년에 걸쳐 촬영해야 하는 영화의 특성상 캐스팅되었다고 한다. 그녀 역시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런 연기를 보여주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페르소나라고 할 만한 에단 호크와 <비욘드 랭군>으로 잘 알려진 패트리샤 아퀘트는 숙련된 연기로 러닝타임을 안정적으로 끌어갔다. 영화의 특성상 감정표현의 폯이 그리 크지 않았지만 적절히 감정을 표현하는 모습이 과연 노련한 배우다웠다.

전반적으로 독특한 영화였고 담고 있는 내용 역시 보편적일지언정 평범하지 않아 나름의 가치가 느껴졌다. 지난 10월 23일 개봉한 <보이후드>는 개봉 14일차인 11월 5일 기준으로 누적관객수 14만1974명을 기록하며 박스오피스 7위에 올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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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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