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줘 메인 포스터

▲ 나를 찾아줘 메인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 이 기사엔 영화의 내용이 일부 담겨있습니다

대규모 제작비를 쏟아부은 블록버스터의 계절이 지나고 한국 극장가는 유명 감독들의 격전장이 되고 있다. 데이빗 핀처의 <나를 찾아줘>를 중심으로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보이후드>, 장진의 <우리는 형제입니다>, 이해준의 <나의 독재자>, 임유철의 <누구에게나 찬란한>, 장예모의 <5일의 마중>, 켄 로치의 <지미스 홀> 등이 관객에 선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각자 자신의 장르에서 재능을 인정받은 명성 있는 감독들인 만큼 그들의 영화가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는 지금이 영화팬들에겐 그야말로 행복한 시기가 아닐까 한다.

이들 가운데 가장 큰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작품은 누가 뭐래도 데이빗 핀처의 <나를 찾아줘>일 것이다. 개봉 1주일 동안 70만의 관객을 동원한 이 영화는 다음주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가 개봉할 때까지는 무리 없이 박스오피스 1위를 점거할 듯하다.

데이빗 핀처는 <에이리언 3>로 데뷔한 이래 <세븐> <파이트 클럽> <패닉룸> <조디악>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등을 내놓은 할리우드 유명 감독으로 스릴러 장르의 연출에 특출난 재능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이다. 욕망이 충돌하며 빚어지는 인간 내부와 외부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며 각별히 영상을 자유자재로 매만지는 편집능력이 뛰어나다.

짧지 않은 러닝타임을 팽팽하게 이어가는 핀처의 재능

<나를 찾아줘>는 스릴러를 다루는 핀처의 재능이, 내면의 왜곡을 외부적 문제와 연결짓는 그 특유의 문제의식과 만나 빚어낸 작품이다.

아내 에이미(로자먼드 파이크 분)가 실종된 이후 아내를 살해한 것으로 의심받게 된 남자 닉(벤 애플렉 분)의 이야기, 더불어 불성실한 남편에 분노하여 그를 살인범으로 조작하는 아내의 이야기를 그려내며, 그로부터 진실을 왜곡하고 인기에 영합하는 미디어와 그런 미디어를 소비할 뿐인 대중들의 모습을 알레고리적으로 담아낸다. 149분에 이르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을 데이빗 핀처는 한 호흡으로 끌어가고 있으며, 무엇보다 치정극에 가까운 이야기를 품격 있게 포장하는 솜씨가 인상적이다.

일상의 부부관계에서의 문제들이 극단적으로 표출되는 이야기 속에서 관객들은 때로는 닉에게, 때로는 에이미에게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핀처의 클라이막스를 지난 후, 미디어가 빚어낸 석연치 않은 결말에 해소되지 않는 공포를 지닌 채 극장을 나오게 된다. 영화는 관객들이 일상 속에서 느낄 수 있으며 따라서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부생활의 문제의식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남자와 결혼한 여자, 그들은 행복했다. 그러나 곧 위기가 닥치고 남자는 어려움에 직면해 게으르고 무책임한 사람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불성실한 남편에게 상처받은 아내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복수를 결심한다. 이후 보여지는 아내의 행각은 <미저리>의 애니 윌키스가 집 밖으로 나온 듯하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경악하고 또 경악할 밖에 도리가 없다.

나를 찾아줘 실종된 아내(로자먼드 파이크)를 찾기 위해 연설하는 닉(벤 에플렉)

▲ 나를 찾아줘 실종된 아내(로자먼드 파이크)를 찾기 위해 연설하는 닉(벤 에플렉)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영화가 일상과 틀어지는 지점은 아내의 복수에서부터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감정적으로 분노를 표출하거나 이혼소송을 제기할 테지만, 영화 속 에이미는 남편을 살인범으로 몰아 사형대에 세우기를 원했다. 이유는 그가 스스로의 삶을 망침으로써 자신과의 관계 역시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남편은 무책임하고 게으른 형편없는 남성이지만, 아내를 죽일 만큼 나쁜 사람은 아니다. 게다가 세상에 무책임하고 게으른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돌아보면 나 역시 무책임하고 게으른 부분을 갖고 있지 않은가. 고작 이런 이유로 살인범으로 몰다니 너무하지 않은가. 바로 이것이 관객들이 닉에게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공감하게 하는 동력이다.

그러나 에이미의 입장에서 남편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너무도 많이 저질러왔다. 부부에게 닥친 어려움 속에서도 해결을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그저 회피할 뿐이고, 대화하려 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자신을 무시하고 폭력까지 행사하는 남편. 그는 더이상 내가 사랑했고 나를 사랑했던 나의 남편이 아닌 것이다.

결혼 생활이 파탄난 것은 그에게 책임이 있으며, 따라서 에이미는 그녀의 방식대로 남편에게 복수하고자 한다. 영화가 남편의 시점에서 펼쳐지고 아내의 활약이 너무나 강조되는 탓에 공감의 정도는 낮지만, 부부생활을 하고 있거나 간접적으로 경험해 본 상당수 여성들은 영화 속 에이미에게 심정적인 동정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미디어는 얼마만큼 속물적이며 진실은 얼마만큼 취약한가

영화는 남편과 아내의 돌이킬 수 없는 파탄으로부터 아내의 복수와 그 덫에서 벗어나려는 남편의 몸부림까지를 긴장감 있게 그려낸다. 그리고 그 도중에 남편의 외도와 쌍둥이 동생과의 미묘한 관계 등을 반전적으로 폭로하며 영화적 재미까지 배가한다.

곧이어 핀처는 한 편의 치정극으로 흐를 수 있었던 영화를 미디어와 사회에 대한 블랙코미디적 비판으로 전환시켜 버린다. 남편이 이혼전문 변호사를 고용한 이후 진실을 좇는 수사대신 여론의 호감을 얻기 위한 전쟁으로 판을 뒤집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미디어가 얼마나 속물적이며 진실은 얼마나 취약한지를 드러낸다.

TV는 진실의 규명보다는 시청률에만 관심이 있고, 시청자 역시 진실보다 더욱 자극적인 가십거리를 원한다. 재물에만 관심이 있는 변호사는 모든 사실을 알고 난 후에도 아내 덕분에 닉에게 재산이 생겼으니 잘 된 게 아니냐 말하고는 떠나간다. 사건을 맡았던 형사 역시 수사는 종결됐다고 이야기하고 진실을 그대로 묻히고 만다.

세상은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듣고 싶은 것만을 듣는다. 닉은 당혹스러워 하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진실을 위해 싸울 용기따윈 없다. 그리고 영화는 이 영화를 보는 모두가 마찬가지가 아니냐고 이야기한다.

피해자는 닉만은 아닐 것이다. 영화 중반 대사를 통해 드러나는 것처럼 에이미 역시 그 부모와 그들의 소설로부터 고통받아 왔다. 사실과 다른 소설 속 에이미와 끊임없이 경쟁해왔으며 늘 패배해 왔던 것이다. 어쩌면 그녀는 미디어 때문에 망가진 삶을 살아야 했던 피해자이고, 그로부터 미디어와 여론을 이용하는 방법을 배워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두 시간 반에 이르는 스릴러이다. 브라이언 드 팔마 이후 스릴러 장르에서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감독의 영화이다. 그리고 그는 이 영화를 통해 남성과 여성의 부부관계의 문제로부터 미디어가 사건을 소비하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치정극과 추적극, 블랙코미디적 요소를 적절히 배합해 숙련된 솜씨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엔딩은 명확하지 않고 문제의식이 새롭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핀처의 솜씨가 십분 발휘된 작품이기에 영화팬으로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작품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이 가면 또 언제 핀처의 작품을 만나게 될지 알 수 없기에.

덧붙이는 글 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 게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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