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신해철이 27일 오후 8시 19분 세상을 떠났다. 서울아산병원 담당의료진은 신해철의 사인을 저산소 허혈성 뇌손상으로 공식 발표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28일 오후 1시부터 마련될 예정이다.

가수 신해철이 27일 오후 8시 19분 세상을 떠났다. 서울아산병원 담당의료진은 신해철의 사인을 저산소 허혈성 뇌손상으로 공식 발표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28일 오후 1시부터 마련될 예정이다. ⓒ KCA 엔터테인먼트


1988년 대학가요제였죠? 사실 당신이 '그대에게'로 이름을 날리던 때의 모습은 잘 알지 못해요. 히트곡인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 '재즈카페' '나에게 쓰는 편지'가 그 무렵에 나왔다는 사실은 순전히 글로만 알고 있지요. 당신이 1991년 MBC FM의 라디오 프로그램 <밤의 디스크 쇼>에서 DJ를 맡았을 때, 많은 여자들이 당신의 낮은 목소리를 좋아했다는 것도 들어서 알 뿐이에요.

저는 당신과 함께 청춘을 보낸 세대는 아니지요. 그때부터 당신을 좋아하던 팬들은 지금 이 순간에 털어내고 싶은 말들이 더 많을지 모르겠어요. 그분들에 비하면 저는 팬이라고 말하기 민망한 수준이지요.

당신이 제 인생에 처음 들어온 건 1997년에 나온 만화 <영혼기병 라젠카> 때문이었지요. 당신은 그때 밴드 넥스트의 리더로 < Lazenca - A Space Rock Opera(라젠카-스페이스 록 오페라)>라는 이름의 앨범을 냈어요. 수록곡 전부가 <영혼기병 라젠카>의 배경음악으로 쓰였지요. 사실 그땐 그 음악들이 당신의 작품인지도 몰랐어요. 그땐 그냥 만화 보는 데 정신이 없었거든요. 초등학생 때였어요.

<영혼기병 라젠카>에 수록된 음악을 제대로 들은 건 고등학교 1학년 때였지요. 그때 받은 느낌은 지금도 생생해요. 충격이었지요. 이런 음악도 있구나 싶었어요. 그 때부터 록음악에 미쳐 지냈어요. 비슷한 스타일의 밴드를 찾아다니고, 친구에게 싸구려 기타를 빌려와 연주를 시작했지요.

드림시어터와 메탈리카 같은 위대한 밴드를 알게 된 것도, 장미나무와 마호가니 나무가 서로 다른 음색의 기타가 된다는 것도 그 때 알게 됐어요.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도 함께 알게 됐지요.

당신은 국내에서 최초로 컴퓨터로 작업한 앨범을 냈고, 1997년 당시 수 억에 달하는 제작비를 앨범에 투자했어요. 모노크롬 시절에는 '무소유'란 곡에서 일렉트로니카에 각설이 타령을 접목했고, 비트겐슈타인을 결성했을 땐 녹음 전 과정을 집에서 진행했지요. 억대의 제작비를 투자한 음악, 집에서 녹음한 음악을 번갈아 만드는 실험을 하면서 표현 가능한 음악적 영토를 무한정 넓혀 나갔어요. 팬들에게 당신은 음악적으로 끝을 모르는 사람이었지요.

무엇보다 당신은 고등학교 시절 나의 세계관을 만들어준 사람이었어요. 매일 새벽 당신이 DJ를 맡았던 <고스트스테이션>을 들으면서부터 많은 게 달라졌지요. 당신은 매일 '식구'로 불리는 청취자들과 함께 학생의 선거권 보장, 이라크 파병 논란, 체벌 금지에 대해 토론하곤 했어요. 이제까지 학교에서 배워 온 통념을 깨는 당신의 논리에 빠져들어 몇 번씩 다시듣기를 했던 적도 있었지요.

논리적으로 자신만의 생각을 말한다는 게 얼마나 매력적인 것인지, 그때 처음 깨달았어요. 당신이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체벌을 유지해야 한다는 학생부 주임 선생님에게 숨도 못쉴 정도로 반론을 퍼붓는 모습을 볼 때는 학생으로서 정말 통쾌했지요.

라디오에서 항상 진지한 얘기만 했던 건 아니었어요. 당신이 DJ를 하는 내내 재밌는 추억들도 많이 생겼지요. '돼지바 속에 들어간 시럽이 딸기잼이냐 아니냐'를 놓고 '식구'들과 격론을 벌이기도 하고, 욕설을 쓰지 않고 상대에게 심리적 타격을 주는 '욕 콘테스트'를 열기도 했지요. 저도 참가했지만 아쉽게도 입상은 하지 못했어요.

당신은 전국 각지에 암약해 있는 '식구'들끼리 접선을 주선하기 위해 방의 불을 '깜빡깜빡' 켜라는 지령을 내리기도 했지요. 그때 저도 맞은 편 아파트에서 전등불을 깜빡이는 '식구'를 한 명 발견했어요. 용기가 없어서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요.

지금 말하는 거지만, 당신은 그때 제 사연도 읽었지요. 고민 상담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매주 수요일마다 '좀 놀아본 오빠의 미심쩍은 상담소'라는 코너를 운영했었지요. 답답한 마음에 아무 생각 없이 썼는데, 그게 읽힐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당신은 항상 특이했어요. 당시로서는 특이하게 닉네임으로 청취자를 부르는 식으로 라디오를 진행했는데, 재미가 없거나 자기 자랑이 잔뜩 담긴 사연이면 청취자의 실명을 공개하며 망신을 주곤 했어요. 당신은 그걸 '실명 공개형'이라 했지요. 사연이 굉장히 재미없었는데, 당신은 나를 실명 공개형에 처하지 않았어요.

아마 그때 <고스트스테이션>을 듣지 않았다면 지금보다는 좀 더 착한아이로 자랐을지 몰라요. 매일 쏟아지는 뉴스의 홍수 속에서 많은 것들을 그저 진실이라 믿고 살았겠지요.

어느 날인가, 당신이 라디오에서 얘기해 준 상어 이야기가 생각나요. 상어는 부레가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지느러미를 움직이며 살아야 한다고 당신은 말했지요. 세상이라는 바다를 독립적으로 헤쳐 나가려면 끊임없이 지느러미를 움직이며 각성해야 한다는 얘기였어요. 어수선한 시국, 지금도 가끔씩 그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살아요.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갈 때 답답한 일이 있으면 항상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듣고 집에 가곤 했어요. 밤에 들으면 호흡이 잦아들면서 우주에 떠 있는 기분이 들곤 했거든요. 누군가 예술이란 결국 마음이 통하는 게 아니라 몸이 동하는 것이라 했는데, 왠지 그 기분을 알 것만 같았지요.

이제 겁이 나는군요. 김광석을 보내고 그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몸이 아파온다는 소설가 김연수처럼, 당신의 노래가 아픔으로 다가올까봐요. 빛 충만한 하늘에 걸린 초승달처럼 급하게 가버린 사람들, 그 중에 한 사람이 당신일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느닷없이 떠난 당신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야 좋을까요. 아직 어떤 말도 해 줄 자신이 없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채 떠난 나의 영웅을 지켜보는 지금의 마음처럼, 앞으로 당신을 떠올릴 때의 공허함도 길고 단단하고 슬플테니.

신해철 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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