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수목드라마 <아이언맨>의 손세동(신세경 분)과 주장원(김갑수 분).

KBS 2TV 수목드라마 <아이언맨>의 손세동(신세경 분)과 주장원(김갑수 분). ⓒ KBS


KBS 2TV 수목드라마 <아이언맨>에서 주장원(김갑수 분)의 외면으로 인해 자신의 아버지가 수술을 제때 받지 못해 죽어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손세동은, 한창 사랑으로 무르익던 주홍빈(이동욱 분), 유치원에 엄마 대신 동화책을 읽어주러 가마고 약속까지 했던 창(정유근 분)이와의 관계조차도 저만치 미뤄두게 된다. 그리고 오랜 숙고 끝에 세동이 '원수'인 주장원에게 던진 요구는 뜻밖에도, 자신의 아버지에게 '미안하다'고 말해 달라는 것이었다.

죄과를 치르라는 것도 아니고, 보상을 해달라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했던 일로 인해 누군가의 목숨이 사라지게 된 사실에 대해, 그저 그 사람의 사진을 앞에 두고 사과를 해달라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자신의 아버지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주장원이 그간 해왔던 일들을 그만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장원은 그런 세동의 요구, 아니 눈물을 머금은 간절한 청탁을 거부한다. 자신은 '미안하다'는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아니 살면서 누구에게도 '미안하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그리고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국토를 파헤치고, 건물을 올리는 그 일은 그저 자신의 일이었을 뿐이라고. 그걸 더 이상 그만두겠다 말할 수 없다고.

사과할 수 없다는 아버지의 말, 기시감이 느껴진다

우리에겐 아주 익숙한 화법이다. 개발이란 이름으로 행해졌던 이 사회의 수많은 폭력들, 그 폭력의 피해자들은 늘 자그마한 소망을 가질 뿐이다. 관계자의 사과와 진상 규명. 하지만 주장원으로 대변되는 우리의 기성세대들은 주장원처럼 말할 뿐이다. 난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고, 살아갈 뿐이라고. 즉, 국토를 파헤치고, 건물을 짓는 '개발'은 빛나는 이 사회의 영광스런 과정이고, 그 과정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들은 그저 불가피한 부산물일 뿐이라고. 그래서 자신은 책임지거나, 미안하다고 말할 이유가 없다고.

지금도 광화문 광장을 메우는 세월호 사고 유가족들의 소망, 그저 왜 자신의 아들, 딸들이 죽어갔는지 그 진상을 밝혀달라는, 그리고 책임 있는 자의 사과를 원한다는 '소박한' 소망에 대한 이 정부의 화법도 주장원과 다르지 않다.

<아이언맨>의 아버지 주장원은 상징적이다. 그저 주홍빈의 아버지 개인 아니다. 23일 방영된 13회에서 이제 은퇴한 듯 보이던 주장원이 또 한 번의 일을 벌인다. 주홍빈까지 동원해 장관에게 허락받은 일, 바로 주홍빈의 첫 사랑 태희의 부모가 사는 섬진강 변을 개발하는 사업이었다.

태희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처음으로 주장원의 집에 달려간 주홍빈, 자신을 이용하면서까지 하려던 일이 태희 부모님을 내쫓는 것이었냐는 아들의 원망 섞인 질문에 아버지는 오히려 적반하장이다. 그래도 자신은 세상 물정 모르는 태희 부모님을 생각해서, 시가의 두 배에 해당하는 보상액을 책정했고 한 몫 단단히 잡게 해주었는데 무슨 소리냐며 오히려 큰소리를 친다. 익숙한 화법이 아닌가. '돈'을 벌기 위해, 잘 살게 해주기 위해 한 일이라는.

그렇게 주장원은 한 평생을 바쳐 나라의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 불철주야 자신을 헌신했다. 그는 부수고, 짓고, 세우고, 그러면서 평생을 살아왔다. 하지만 그의 욕심은 여전히 채워지지 않고, 아들이 사랑하는 하찮은 집안의 여자를 폐자재 치우듯이 해버렸으며, 아버지가 못 다한 명예를 채우기 위한 작은 아들에게 공부를 요구한다.

 <아이언맨> 스틸컷.

<아이언맨> 스틸컷. ⓒ KBS


허물고 부수고, 거기에 철근을 넣고 짓고 세우며 살아왔던 아버지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아들은 분노를 견디지 못해 몸에서 칼이 돋아난다. 왜 하필 주홍빈의 몸에서 돋는 것이 칼, 즉 '아이언'인가 하는 이유는 바로 그 아버지 주장원에게서 찾을 수 있다.

공부에 관심도 없는 작은 아들 홍주에게 다짜고짜 미국 유학을 종용하자, 홍주는 술에 취해 아버지가 처음 지은 건물 옥상으로 올라간다. 그곳 난간에 위태위태하게 올라 서 죽을 위기에 놓인 작은 아들과 아버지로 인해 몸에서 칼이 돋는 큰 아들, 거기서 읽을 수 있는 것은 그저 한 집안의 속사정이 아니다. 건설로 나라를 일구어 내었다 자부하는 아버지 세대, 그 토대 위에서 부를 이루었을지 모르지만 마음을 잃은 아들 세대 등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주장원, 주홍빈, 주홍주 부자를 통해 작가는 상징적으로 그려내고자 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가 세상을 일구기 위해 도구로 사용했던 아이언은 이제 무기가 되어 아들의 몸에서 돋는다. 그래서 드라마를 통해 종종 등장하는 가파른 건물들, 그리고 그 위에 아슬아슬 서 있는인물들은 그저 연출의 남다른 스킬이 아니라, 주장원이 만들어낸 세계의 암묵적 배경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작은 깨달음 얻었지만...아버지가 갈 길은 아직 멀다

'미안하다'는 사과를 바라는 세동을 단호하게 돌려보낸 주장원은 얼마 후 세동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머뭇머뭇 말을 꺼낸다. 그렇게 살아왔기에 이제 와 새삼 미안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되돌아보니 자신이 했던 일의 과정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데, 그들 역시 자신처럼 누군가의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을 전한다. 그리고 앞으로 그런 일을 하게 되면, 그런 자신의 깨달음을 염두에 두겠다고 말을 맺는다.

기괴한 칼이 돋는 시간을 견디고 어렵사리 얻은, 기성세대의 '사과의 변'이다. 비록, 그 어려운 '사과의 변'을 함께 하는 시청자들이 단 3% 정도에 불과하지만, <아이언맨>의 극진한 상징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이다.

어쩌면, 우리 시대에 그런 사과가 필요하다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3%일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그런 동화 같은 일이 가능할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3%일지도. 어른들의 동화 같은 <아이언맨>이 사실 말하고 있는 건, 이 시대를 살아왔던 아버지의 세대와 그 아버지로 인해 상처를 입다 못해 누군가를 피 흘리게 만드는 아들 세대의 이야기이다.

물론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에둘러 회피하는 아버지의 갈 길은 멀다. 큰 일을 하는 당신을 대신해, 당신의 의중을 헤아려 온갖 더러운 일을 자처했다는 윤여사(이미숙 분)의 호소에, 자신은 그런 의중을 가진 적이 없다고, 아니 그건 그저 의중이었을 뿐이라며 발을 빼는 아버지. 여전히 누군가의 처지와 마음보다는 '돈'의 보상을 먼저 생각하는 아버지의 갈 길은 멀다. 그리고 그 아버지의 나머지 죄과와 속죄가 <아이언맨>의 남겨진 이야기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아이언맨 이동욱 신세경 김갑수 수목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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