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영 <뻐꾸기 둥지>에서 악역을 맡아 연기하고 있는 이채영

▲ 이채영 <뻐꾸기 둥지>에서 악역을 맡아 연기하고 있는 이채영 ⓒ kbs


역시 막장은 통하는 것일까. KBS 2TV 일일드라마 <뻐꾸기 둥지>가 마지막 방송을 2주 남겨두고 지난 20일 23.6%(닐슨코리아 전국기준, 이하 동일)라는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최고 37.3%를 기록한 MBC 주말드라마 <왔다 장보리>만큼은 아니지만 일일드라마로서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며 연장 방송까지 결정되었다.

<뻐꾸기 둥지>는 그러나, 엉성하고 어수선한 전개로 시청자들의 탄식을 자아낸다. <왔다 장보리> 역시 답답하고 지지부진한 전개로 시청자들의 원성을 들었지만 최소한 캐릭터는 명확했고, 스토리는 다소 과장되고 개연성은 없지만 전후관계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뻐꾸기 둥지>는 작가와 연출조차 그 전에 방송했던 내용이 제대로 숙지가 되어있지 않은 듯한 흐름을 보인다.

최근 <뻐꾸기 둥지>에서 가장 중요한 갈등관계이자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요소는 바로 소라(전민서 분)의 출생의 비밀이다. 소라는 악역 이화영(이채영 분)의 엄마인 배추자(박준금 분)가 키운 딸로서 백연희(장서희 분)와 이화영의 오빠인 이동현(정민진 분)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라는 설정이 있었다.

이동현은 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소라마저 버려졌기에 이화영이 백연희에게 복수를 결심하게 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소라가 백연희의 딸이 아니라 이화영의 딸이라는 암시가 흐른다. 시청자의 궁금증을 유발하기 위해 누구의 딸인지 모르게 하는 전략이라고 보기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분위기가 이화영 쪽으로 기울었다. 지금에 와서 소라가 백연희의 딸이라고 결론이 나도 전개가 어그러질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만약 소라가 이화영의 딸이라 하면 더욱 말이 되질 않는다. 불과 몇 주 전, 화영의 전 애인이었던 최상두(이창욱 분)와 이화영이 다투는 장면에서 우연히 그 모습을 목격한 배추자는 이화영이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아, 집에 와서 이화영에게 그 사실에 대해 다그친다. 이 상황으로 미루어 보면 배추자는 최근까지 이화영이 예전에 출산을 했던 사실을 몰라야 하는 상황.

허나 만약 배추자가 이화영 아이를 데려다 키웠다면 이화영의 아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설정은 서로 상충되는 부분이다. 배추자는 아이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소라가 이화영의 딸이 아니라면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스토리는 작가의 상상력의 한계를 의심케 한다.

 연민정과 이화영의 차이는 왜 생겨났을까

연민정과 이화영의 차이는 왜 생겨났을까 ⓒ kbs


이채영의 악녀 연기 역시 초반부터 지금까지 논란의 대상이다. 내용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작가와 연출의 문제라고 치더라도, 캐릭터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는 연기는 실망스럽다. <왔다 장보리>에서 악역이 주인공보다 더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연민정 역 이유리의 빛나는 연기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기대상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이유리의 연기력은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었고 상식을 벗어난 캐릭터임에도 공감까지 가게 만들었다. 캐릭터의 행동 자체가 아닌, 연민정에 대한 애정을 만들어 내면서 공감을 자아낸 것이다.

그러나 이채영의 연기에는 강약 조절이 부족하다. 매회 소리를 지르고 독한 짓을 하지만 악녀로서의 섬뜩함이나 카리스마는 찾아보기 힘들다. 악역의 힘이 약하니 드라마 전체의 긴장감이 부족해진다. 허술하고 목적도 불명확하며 원하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도 모르겠는 악역의 캐릭터는 갈팡질팡하는 가운데서 연기마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드라마의 막장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막장 드라마의 수요가 꾸준히 있는 한, 제작은 계속 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막장이라도 '수준'이라는 것이 있다. 드라마의 설정 자체는 막장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서의 기승전결과 앞뒤의 상황은 제대로 맞춰져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적어도 캐릭터 하나만큼은 건져야 한다. 그러나 <뻐꾸기 둥지>는 그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럽지 못하다. 대체 20%의 시청률은 누가 견인한 것일까. 그것이 <뻐꾸기 둥지>의 높은 시청률의 미스터리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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