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트 470급 김창주-김지훈 선수가 금메달을 땄다. 운동에 입문한지 15년 만에 요트대회에서 아시아 정상에 오른 김창주 선수의 모습.

요트 470급 김창주-김지훈 선수가 금메달을 땄다. 운동에 입문한지 15년 만에 요트대회에서 아시아 정상에 오른 김창주 선수의 모습. ⓒ 심명남


"이번 목표는 3등이었다. 다들 금메달을 딸 거라 생각지도 않았다"

운동에 입문한지 15년 만에 요트대회에서 아시아 정상에 오른 김창주 선수의 말이다.

비인기 종목인 '요트'가 마침내 일을 냈다. 인천 아시안게임 성적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한 것. 14종목 출전한 요트의 종합성적은 금메달 4개와 은메달, 동메달 각 1개씩을 따냈다. 역대 성적을 보면 2002년 부산 아시아게임 당시 금메달 6개로 전성기를 이뤘지만 이후 도하,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각각 한 개씩의 금메달이라는 저조한 성적표에 요트계는 침울했다.

하지만 또다시 반전의 드라마가 펼쳐졌다. 김창주-김지훈 선수가 출전한 470급 요트다. 여기서 숫자의 의미는 배길이가 4m 70cm를 의미한다.

15년 설움 달랜 요트경기 '김창주 선수'

김창주 선수는 고흥에서 태어나 여수에서 자랐다. 여수동초등학교, 여수충덕중학교, 여수고등학교, 부산한국해양대학교를 졸업했다. 그의 부모가 사는 여수엑스포 힐스테이트 1단지에는 금메달 소식에 축하펼침막이 내걸렸다. 펼치막을 내건 아파트 주민들은 함께 축하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김창주 선수의 아버지 김기옥(56세)씨와 엄마 김경자(55세)는 일을 하느라 아들의 경기를 지켜보지 못했다. 아버지 김씨는 인터뷰를 하면서 아들에 대해 묻자 눈물을 왈칵 쏟으며 지금껏 아들을 지켜봐왔던 안타까웠던 심경을 밝혔다.

"그때를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요. 암튼 비인기 종목이라 너무 고생을 많이한게 젤 가슴 아파요."

 김창주 선수의 아버지 김기옥(56세)씨와 엄마 김경자(55세)씨가 아파트 입주민들이 내건 축하펼침막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김창주 선수의 아버지 김기옥(56세)씨와 엄마 김경자(55세)씨가 아파트 입주민들이 내건 축하펼침막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 심명남


요트는 비인기 종목이다. 그래서 설움은 더 컸다. 선생님의 권유로 아들이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요트를 시작해 1년 만에 봄철요트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추위에 덜덜 떨던 아들의 모습을 모면서 아버지는 아들을 말렸다. 차라리 운동을 그만두라고….

타종목에 비해 지원도 턱없이 부족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도 컸다. 어떤 선수든지 정상에 오르지 않으면 빛을 보지 못하지만 요트는 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들은 보란 듯이 마지막 경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요트는 12경기를 한다.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지난 9월 24일부터 시작해 30일 경기가 끝났다. 인천은 워낙 바람이 불지 않아 어려움이 따랐는데, 첫날 예상 밖으로 바람이 잘 불어줬다.

4경기 중 2경기에서 일본에 밀려 공동 2위로 출발했다. 이후 계속 점수차를 좁혀 28일까지 1점차로 2위를 고수했다. 반전은 11번째 경기에서 일어났다. 한국이 1위를 하고 일본은 4위로 쳐졌다. 역전이었다. 이제 12번째 마지막 경기에서 크게 실수만 하지 않으면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그래서 일본선수 뒤만 따라다니기로 전략을 짰다. 결국 일본이 2등을 하고 한국이 3위로 골인했다. 정상에 오른 순간이었다.

다음은 4일 오전 여수를 찾은 김창주 선수와 가진 인터뷰다.

- 김창주 선수의 소속과 올해 나이는?
"인천시 체육회 소속으로 서른 살이다."

- 언제부터 요트에 입문했나?
"충덕중학교 1학년 때다. 2학년 3월 봄철 요트경기대회 첫 경기에서 금메달을 땄다."

- 어떤 계기로 요트를 시작했나?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 쪽에는 별 관심이 없고 운동 쪽에 소질이 있었다. 체육선생님께서 아버지를 설득시켰다. 어떤 운동이 좋을지 고민했는데 선생님이 요트가 지금은 비인기 종목이지만 앞으로 전망이 밝을 것이라고 얘기해 하게 됐다."

- 운동한지 얼마쯤 되었나?
"15때부터 해서 지금 15년이 되었다."

요트 경기 우승 비결... "인천바다 99% 파악했다"

- 비인기 종목이라 일반인이 잘 모른다. 요트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달라.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운영위원이 부위를 띄워놓으면 스타트후 1등은 1점, 2등은 2점이다. 누적 포인트 12경기에서 토탈 점수를 합산해 제일 낮은 점수를 받으면 1등이다. 예선은 없다. 첫 게임부터 끝나는 게임까지가 결승이라 보면 된다. 11경까지 점수는 24점이고 일본선수가 25점이었다. 마지막 날 두 경기를 남겨두고 역전을 했다. 우리가 1등이고 일본선수가 4등을 해서 금메달을 땄다."

 인천아시안게임 470급 요트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김창주 선수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인천아시안게임 470급 요트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김창주 선수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심명남


- 이번 경기의 우승 비결이 뭐라 보나?
"이번 팀에서 예상목표는 3등 동메달이었다. 작년 8월부터 인천에서 살다시피 생활했다. 요트는 바다에서 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바다의 상태를 잘 파악해야 한다. 조류방향인 물살과 바람의 패턴 등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큰 경기가 열리면 선진국은 1년 전부터 바라를 조사하고 선수는 두 달 전에 가서 현지 바다에서 훈련을 한다. 저희는 작년 8월부터 훈련하면서 매일 바다에 나가 인천바다에 대해 99% 파악했다. 이것이 우승비결이라 생각한다. 또 경기 한 달을 앞두고 외국인 코치를 지원받았다. 바람이 안 불어 여수에서 10일 정도 훈련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

- 비인기 종목에 대한 설음을 많이 겪었을 텐데... 가장 힘든 기억은?
"어렸을 때 겨울에 훈련한 것이 기억난다. 손발이 꽁꽁 얼어 운동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항상 운동을 즐기면서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캐나다에 나가 경기를 했는데 꼴등을 했다. 제종목이 아니었지만 너무 자존심이 상했다."

- 아시안게임 정상에 올랐다.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열심히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

- 요트경기는 뭐라 생각하나.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자연과 싸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100%라는 것은 없다. '네가 분명 이길 거야'라는 것은 없다. 아무리 잘하는 선수라도 열 번하면 두세 번 정도는 미끄러질 때가 있다. 그런 실수를 최대한 줄여가는 게 정말 중요하다. 연습을 많이 하는 것이 최고인 것 같다."

- 지금까지 도움 받은 분들이 있다면?
"요트를 시작하게 해주신 유영재 선생님, 고등학교 때 요트부에 열정을 가지고 지원해 주신 정종복 선생님, 운동할 수 있게 해주신 부모님께 늘 감사하다. 끝으로 여수고등학교 때 저희를 지도해주신 김성현 선생님과 이번 아시안게임 이동우 코치님께 정말 감사 드린다."

-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아시안게임만 보고 달려왔다. 또 이달 말 전국체전이 제주에서 열린다. 이어 올림픽 준비하려면 동계훈련을 나가야 한다. 지금껏 캐나다와 태국에서 했지만 올해는 세계적인 선수들이 모여 훈련하는 미국이 마이애미로 나가서 동계훈련을 하고 싶다."

- 여수시청으로 올 생각은 없나?
"2009년부터 인천시 체육회에서 활동했다. 분위기가 좋아 만족한다. 또 여수시청은 워낙 잘하는 선수가 버티고 있다. 김대영 선수가 있는데 저를 가르쳐 주셨고, 아시안게임 3연패한 쟁쟁한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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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여수넷통> <전라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인천아시안게임 김창주 요트경기 김창주-김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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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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