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장혁.

최근 종영한 MBC 수목드라마 <운명처럼 널 사랑해>에서 이건 역을 맡은 배우 장혁. ⓒ 싸이더스


|오마이스타 ■ 취재/이선필 기자| "<명랑소녀 성공기>가 벌써 12년 전이네요." 장나라와 함께 호흡을 맞췄던 2002년 당시, 장혁은 그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확실히 받았다. 정신없던 촬영 일정에 사적인 대화 한 마디도 못 나눴던 두 사람은 최근 종영한 MBC 드라마 <운명처럼 널 사랑해>(이하 '운널사')로 다시 한 번 재회하게 됐다.

장혁은 후세를 이어야만 하는 재벌 집안의 9대 독자 이건 역을 맡았다. 요즘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착한 김미영(장나라 분)과 엮이면서 사랑을 깨달아 간다는 설정이다. 자칫 진부한 신데렐라 스토리로 흐를 뻔했던 이 드라마가 몰입감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장혁과 장나라의 코믹 연기 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최고 시청률 11.5%(닐슨코리아 전국기준, 이하 동일)를 기록하며 KBS <조선총잡이>(최고 12.8%), SBS <괜찮아 사랑이야>(최고 12.9%) 등과의 경쟁에서 선전했다. 드라마 종영 후 만난 장혁은 취재진에게 "배우들이 마음을 잘 열었고, 연출자의 역량이 훌륭했던 덕"이라며 겸양의 모습을 보였다. 철없이 웃어 제끼던 이건이 아닌 '진지한 남자' 장혁으로 돌아와 있었다.

"드라마 찍으며 많이 놀았다고 생각...민망함 버리는 게 숙제였다"

- 시청률로만 따지면 초반엔 꼴찌였다가 꾸준히 상승세를 타며 종영했다. 당시 상황이 배우로서 부담이 되진 않았나.
"내부적으로는 시청률에 일희일비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찍었던 드라마 중 가장 재밌게 한 작품이다. 그냥 나를 놨다. 전에 했던 <불한당>이라는 드라마 때도 즐기면서 했는데 그와 비슷하다. 우리의 자랑 중 하나가 쪽 대본이 없었다는 거다. 근데 통대본이 매번 늦게 나왔다(웃음). 그래도 그게 낫다. 그만큼 작품 전체를 이해하고 뭔가 준비해 볼 수 있으니."

- 머리 스타일이라든가 이건의 패션이 참 독특했다. 또 드라마에 TJ 프로젝트 시절(장혁이 래퍼로 활동했던 당시 이름)의 노래를 직접 부르기도 했다. 이런 설정들 역시 의도한 건지.
"깔끔하면서도 개성 있는 인물이라고 해석해서 그 내용으로 감독님과 소통했다. 수트를 주로 입고 다니는데 동시에 빈틈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장발을 하기로 한 거다. 사실 영화 <순수의 시대> 촬영과 겹칠 때가 있어서 머리를 많이 자를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장점이 된 거 같다.

TJ 프로젝트 장면은 대본엔 없었다. 우리 드라마가 재미있는 게 대본을 받으면 함께 빈틈을 채워 넣을 수 있었다는 거다. 내가 제안을 했는데 감독이 진짜 할 수 있는지 물더라. 그래서 막 던지는 거긴 하지만 캐릭터가 너무 멀리 나가지 않고 다시 돌아올 수 있게만 해달라고 말했다. 장나라씨가 중심을 잘 잡아줘서 내가 그렇게 막 던질 수 있었다."  

 배우 장혁.

▲ 장혁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를 보면 주제는 무겁지만 분위기는 밝지 않나. 균형이 잘 잡혔다고 본다. <운널사> 역시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하지만 오히려 홈드라마에 중점을 뒀다. 표현 방식이 웃긴 거지, 정서는 휴머니즘이었다." ⓒ 싸이더스


- 경쟁 드라마 주연이 이준기와 조인성이었다. 그들과 대결에서 선전한 거다. 스스로 좀 자랑해도 될 거 같다.
"난 그냥 많이 놀았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하다 보면 정말로 참여하고 싶은 게 있고, 상황에 따라 할 수밖에 없는 작품도 있다. <운널사>는 전자였다. 근데 현실에서 내가 유부남이라고 민망해하면 몰입이 안 되더라.

예전에 가수 싸이가 끼를 발산 못하는 순간 정체된다고 한 말이 기억난다. 배우도 마찬가지다. 작품마다 자기를 놔야하더라. <아이리스>를 찍을 땐 스스로 성룡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성룡이 <무릎팍도사>에 나온 걸 봤는데 그 역시 액션 연기를 할 때 겁이 난다더라. 하지만 동료를 믿고 던지는 거다. <운널사> 감독님과 내가 동갑이라 죽이 잘 맞았다. 배우가 아무리 뛰어나도 결국 포장하는 건 연출자의 몫이다. 서로 믿고 간 거지."

- 울다가 웃어야 하는 장면도 많았는데 감정적으로 전환이 힘들진 않았나.
"해보고 싶은 연기였다.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를 보면 주제는 무겁지만 분위기는 밝지 않나. 균형이 잘 잡혔다고 본다. <운널사> 역시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하지만 오히려 홈드라마에 중점을 뒀다. 표현 방식이 웃긴 거지, 정서는 휴머니즘이었다. 이건이 힘들 때마다 웃는 걸 반복하는데 일종의 슬픈 웃음이다. 짠한 정서가 담긴 거지. 다행스럽게도 실제 내 모습과 이건은 많이 다르다. 지인들이 내 웃음소리가 이건과 같을 거라고 생각하던데 지금은 그렇게 웃으라고 해도 못 웃겠더라."

"짜증도 행복하다...작품을 할 수 있다는 게 축복"

 배우 장혁.

▲ 장혁 "신인 시절 연기 선생님이 내게 한 말이 있다. '장혁이 정우성보다 잘 생겼어? 차태현 보다 웃겨? 황정민 보다 연기 잘해?' 묻는데 그냥 어안이 벙벙하더라. 나만의 색깔이 없다는 소리였다. 그래서 그 이후 막 던져보기로 했다. 어떤 작품이든 기회가 왔을 때 다양하게 하다보면 자기의 색깔이 나오는 것 같다." ⓒ 싸이더스


- 드라마 제목처럼 실제로 본인은 운명론자인가.
"운명을 깊이 생각하며 살진 않는다. 그저 평소에 열심히 잘 살자고 생각하는 주의다. 땀 흘린 뒤 샤워할 때가 제일 행복하다. 드라마 현장 역시 행복감을 준다. 물론 극도로 화가 나거나 짜증날 때도 있다. 그것도 좋다. 어쨌든 평범하지 않은 일이지 않나. 내 일상은 참 단조로운데 연기를 할 때면 여러 자극이 날 행복하게 만든다. 연기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거 같다."

- 내용 흐름 때문에 막장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그런 비판을 들을 때마다 드라마보다 영화 현장이 배우로서 더 욕심나지 않나.
"내 주변에서도 막장 같다고 많이들 말했다. 특히 기억을 잃는 부분 말이다. 속으로 '드디어 연출자가 결정구를 던지는구나' 생각했다. 진짜 확 던졌다. '모 아니면 도'였는데 잘 먹힌 거 같다.

보편성과 전형성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보편적 이야기를 풀어 내지만 그걸 다루는 방식은 전형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김밥에 김과 밥이 들어가는 건 당연한 거다. 여기에 단무지가 꼭 들어가야 한다는 건 전형성이다. 독특한 김밥을 만드려면 다른 재료를 넣으면 된다. 당연한 이야기를 전형적이지 않게 하기 위해 감독이 그런 설정을 한 거다.

영화에 대해서는 난 사실 혜택을 받는 세대다. 우리 바로 위 선배들 때만 해도 드라마 탤런트와 영화배우가 나뉘어 있던 분위기였다. 내가 지금껏 했던 작품이 30편 정도인데 드라마와 영화 비율이 딱 반반이더라. 복 받은 거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마음에 따라 선택하는 게 맞다고 본다."

- 곧 마흔이다. 30대 후반에 맞는 <운널사>가 어떤 의미였나. 그리고 올해 안에 꼭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
"이 작품이 큰 의미를 주는 건 아니다. 그저 재밌게 한 거다. 사실 의미 없는 작품은 없지 않나.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30대 후반에 만난 작품 정도겠지. 또 굳이 어떤 배우가 돼야겠다는 목표 또한 없다. 하다 보니까 장혁 같은 배우가 돼 있는 거지. 작품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매우 좋다. 그저 열정을 놓지 않고 싶다.

신인 시절 연기 선생님이 내게 한 말이 있다. '장혁이 정우성보다 잘 생겼어? 차태현 보다 웃겨? 황정민 보다 연기 잘해?' 묻는데 그냥 어안이 벙벙하더라. 나만의 색깔이 없다는 소리였다. 그래서 그 이후 막 던져보기로 했다. 어떤 작품이든 기회가 왔을 때 다양하게 하다보면 자기의 색깔이 나오는 것 같다. 후배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도 딱 이것뿐이다.

그렇게 작품마다 자신을 던지다 보면 누군가가 정의 내려 주겠지. 물론 의도해서 작품을 선택하진 않지만, 끊이지 않고 작품을 소화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가 가기 전 작품 하나를 더 했으면 좋겠다(웃음). 현장에서 다른 선배들의 연기를 보는 것 자체가 큰 배움이다."

장혁 장나라 운명처럼 널 사랑해 복싱 운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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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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