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지현우

배우 지현우 ⓒ 와이트리미디어


|오마이스타 ■취재/이미나 기자| 전역, 그리고 한 달만의 드라마 복귀. 배우 지현우의 30대는 이렇게 시작됐다. 인생의 또 한 문턱을 넘은 만큼 조금은 스스로를 쉬게 두어도 좋았을 것을, 지현우는 입대 전에도 그래왔듯 또 한 번 발길을 재촉했다. "공백기 동안 굳어져 있던 부분을 풀어내기에 좋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KBS 2TV <트로트의 연인>과 지현우의 만남은 이렇게 성사됐다.

정작 현장에 돌아오니 많은 게 달라져 있었다. 한때 '연하남'의 아이콘으로 불리며 연상의 여배우들과 주로 작업했던 그였다. 지현우는 "이젠 촬영장에서 중간 입장이 되었더라"며 "어렸을 땐 '나만 잘하면 된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제는 함께 호흡을 맞추는 후배들을 어떻게 편하게 만들어 주고, 연기할 수 있게 해야 하는지도 신경 쓰게 됐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최춘희(정은지 분)를 물심양면으로 도와 톱스타의 위치로 만드는 매니저 장준현의 모습이 자신과 겹쳤다. "'주인공으로서 욕심을 내야 하나'라는 고민도 했지만, 최춘희의 성공 과정을 보여 주는 드라마인 만큼 작품이 잘 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지현우는 "<부자의 탄생>(2010) 같이 내가 나서서 성공하는 이야기가 아닌, 내 욕심을 버리고 남을 도와 성공하게 만들어주는 스토리도 재밌더라"고 돌이켰다.

"가끔은 이 친구(장준현)가 나보다 낫다고 느낀 부분도 있었어요. 제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걸 고민하지 않고 툭툭 던지고, 순간에 집중하는 인물이었거든요. 그게 철이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순수해서일 수도 있으니까. 30대라는 게 느낌이 확실히 달라요. 일반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을 봐도 '여기서 일을 하면 더 잘될 수 있을까?' '아니면 직장을 옮겨야 하나?'라는 고민을 하더라고요.

장준현은 그것과 반대잖아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세상을 얼마나 산다고 남의 눈치를 봐'라고 말하는 친구니까요. 일종의 대리만족일 수도 있어요. 어떻게 보면 저도 서른 전에는 그렇게 살아왔던 편이거든요. 그래서 '착한데 싸가지 없다'는 말을 듣기도 했고. (웃음) 그냥 장준현처럼 자기 생각을 툭툭 뱉었던 거죠."

 배우 지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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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지현우

"가끔은 이 친구(장준현)가 나보다 낫다고 느낀 부분도 있었어요. 제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걸 고민하지 않고 툭툭 던지고, 순간에 집중하는 인물이었거든요. 그게 철이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순수해서일 수도 있으니까." ⓒ 와이트리미디어


"군대서 살면서 가장 많은 생각 해...이젠 '무게감 있어야겠다' 싶어"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지현우의 '서른 맞이'로 이어졌다. 레코드숍을 운영했던 그의 부모님은  "우리의 못 다 이룬 꿈을 이뤄 달라"며 지현우 형제에게 음악을 가르쳤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기타를 잡은 그의 학창 시절, 성적보다도 더 중요했던 건 음악이었다. 학교에 다녀오면 오후 10시까지 기타를 잡았고, 방학 때에도 오후 2시부터는 내내 연습을 해야 했다. 자연스럽게 밴드 세션이 됐고, 또 다른 밴드 더 넛츠의 정식 멤버가 되어 음반을 냈다.

연기에 입문한 뒤에도 긴 공백기 없이 작품 활동을 이어 갔다. 드라마면 드라마, 영화면 영화, 라디오 DJ, 뮤지컬까지 부르는 대로 '소처럼 일만 하던' 시절이었다. 오죽하면 20대에 가장 후회하는 것으로 "일만 해서 여행을 다녀 본 적이 없다"며 '여행을 다니지 못한 것'을 꼽을 정도다. 그러던 중 2012년 군에 입대하자 덜컥 시간이 느려졌다. 지현우는 "사람이 작아지더라"며 "그러면서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다. 살면서 생각을 가장 많이 했던 때"라고 말했다.

"우선은 앞으로의 길에 대해 생각했죠. 입대 전엔 저처럼 나이 들어 (군대에) 오는 친구들이 꽤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없더라고요. 있어도 보직이 다르니 친해지기도 힘들고, 생활관도 다르고…. 함께 있는 친구들과 즐겁게 선후임으로 지낼 순 있었지만 그들의 고민과 제가 하는 고민이 또 달랐어요. 제가 상담해줄 순 있어도 (상담을) 받을 순 없는 입장이었죠. 그러면서 책을 많이 읽게 됐어요. 지혜에 대한 갈증이 심했던 때였으니까요. 고민이 너무 커지면 종교 활동에 나가서 좋은 말씀도 듣고요. (웃음)"

아직 딱히 훌륭한 답을 찾지는 못했다. 지현우는 "실마리도 못 찾은 것 같다"며 "이건 평생 가는 고민 같다"고는 머쓱한 듯 웃었다. 하지만 달라진 점은 분명 있다. "과거엔 (인터뷰에서) 거침없이 말했는데 이젠 하고 나서 '잘한 게 맞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지현우는 "또 그동안은 계획 없이 순간순간 떠오르는 대로 행동했던 편이었지만 이젠 계획적인 부분도 조금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이어리를 끝까지 써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군대에서 다이어리도 써 봤다"고 말했다.

"'무게감이 좀 더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진심으로 전달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 생각에 <트로트의 연인> 8회 대본까진 다 손으로 써 보기도 했어요. 제 대사부터 지문, 상대방 대사까지 다요. 그 정도로 작가가 쓰는 글을 함부로 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요."

 배우 지현우

"이제는 좀 무거운 것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안 해본 장르를 해볼 필요가 있다고 해야 할까? <메리 대구 공방전>(2007) 같은 작품도 꼭 한 번 다시, 제대로 해 보고 싶고요." ⓒ 와이트리미디어


2000년대 초 그에게 영광을 가져다주었던 '연하남' 캐릭터는 어느덧 다른 후배들의 몫이 됐다. 스스로도 "이젠 연하남 역을 하면 그건 '불륜'"이라고 너스레를 떨 정도다. 하지만 '연하남' 타이틀을 뗀 지금, 지현우는 더 많은 가능성을 눈앞에 둔 연기자가 됐다. "작품에 따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의 특징이 다르더라"는 지현우는 "그렇게 다양한 작품을 하다 보면 나에게 큰 재산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강조했다.

"'연하남 계'의 스타트를 끊었다는 건 뿌듯해요. 그런데 그땐 진짜 아무것도 모르고 (연기)했어요. 스물한 살짜리가 서른 여자의 감성을 어떻게 알았겠어요. 그래서 '왜 사람들이 좋아해 주지'라는 생각도 했고요. 하지만 이젠 연하남 역할을 못 하잖아요? 그건 불륜이지. (웃음) 이제는 좀 무거운 것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안 해본 장르를 해볼 필요가 있다고 해야 할까? <메리 대구 공방전>(2007) 같은 작품도 꼭 한 번 다시, 제대로 해 보고 싶고요.

가수로서도 이제 더 넛츠는 다들 각자 길을 찾아 간 것 같고, 저 혼자 앨범을 낼 생각은 있어요. 올해 안에요. 군대 가기 전에 만들어둔 곡이 있었는데, 제 앨범에 못 실었거든요. 그땐 '가수는 노래 따라 간다'는 생각으로 우울한 노래는 안 실었어요. 그래도 팬들에게는 불러드렸죠. 이젠 팬들도 (그 노래들을) 빨리 발표했으면 좋겠다고 하고, 저도 '음악으로, 앨범으로 성공해야지'라는 생각은 없어졌어요. 하지만 감수성이 맞는 분들은 들어 주셨으면 좋겠네요."

지현우 트로트의 연인 정은지 더 넛츠 장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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