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가 팔 할인 작품들이 있다. 이른바, '소재주의'라 명명되는 이 표현은 구미를 당길만한 소재를 발견한 창작자들이 그 발견에 도취해 이야기나 여타 요소들을 게으르게 구성하며 소재와 주제를 연결시키지 못할 때를 일컫는다. 문학에서도, 영화에서도, 그 어떤 창작물에서도 종종 이 소재주의는 화제몰이에 함몰된 작품들을 조소할 때 쓰여왔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마음의 슬픔과 분노가 몸 밖 칼로 표출되는 남자. 그 칼이 은유가 아닌 실제 물리적 칼로 돋아나는 남자 주홍빈(이동욱 분). 그래서 제목이 (할리우드 유명 블록버스터 시리즈에서 따온 것이 아니라고 이해해 줘야하는) <아이언맨>인 드라마가 10일 KBS2를 통해 첫 방송됐다.

"외모, 명예, 부를 다 움켜쥔 이보다 완벽할 수 없는 조건을 가진 남자"라 설명되는 이 주홍빈은 헌데 말 못할 고통을 안은 채 살아가고 있다. 부지불식간에 돋아나는 칼날들에 의해 잘려진 물건들이 자고 일어나면 널려 있고, 기면증처럼 쓰러지기 일쑤고, 무엇보다 화를 참기가 힘들다는 것.

마음의 화가 칼이 되어 돋아난다는 설정은 얼핏 신선하다는 반응을 끌어낼 만 해 보인다. 헌데, 그 물리적 변화에는 분명 자연스러운 계기나 설명이 부연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실제 <아이언맨> 첫 회에서는 그런 부분이 훌쩍 생략돼 있었다. 자, 그럼 향후 전개에서 이 강력한 소재에 대한 실마리가 차근차근 풀어지기를 기대할만큼 <아이언맨>은 소재주의 함정을 빠져나올 수 있는 여지를 제공했을까.

소재주의와 신데렐라 스토리 사이, 우려되는 <아이언맨> 첫회 

 KBS 수목드라마 <아이언맨>의 포스터.

KBS 수목드라마 <아이언맨>의 포스터. ⓒ KBS


주홍빈은 소위 재벌2세다. 게임회사 CEO라지만, 돈 많은 아버지(김갑수 분)의 간섭을 죽어라 싫어하는 반항아이기도 하다. 아침마다 대궐 같은 집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집사인 윤여사(이미숙 분)가 깨워주고, 일거수일투족을 고비서(한정수 분)가 챙겨주기 바쁘다. 그런데도 매일매일 화와 분을 참지 못 해 날뛴다.

우리가 TV 속에서 지겹도록 보아왔던 안하무인 부자집 아들 캐릭터에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아이언맨>은 그 화가 아버지에 대한 불만과 첫사랑에 실패하고 어린 아들 창까지 갖게 된 과거에 비롯됐다고 설명하는 듯하다. 그래서 1회 내내 주홍빈은 화만 내고 다녔고, 그 화가 몸 밖으로 나오는 칼의 연원이라는 것이다.

그 대척점엔 '착한 여자' 손세동(신세경 분)이 자리한다. 게임 개발에 실패해도, 사기를 당해도 꿋꿋하고 밝게 일어서는 전형적인 캔디 캐릭터를 연상하면 딱이다. 이 둘이 외국에서 막 도착한 아들 창을 매개로 엮이게 된다. 화만 내는 남자와 그 화를 다독이는 여자의 로맨스, 예상 가능하다. 사실, '아이언맨'이란 소재만 없었다면 흔하디 흔한 신데렐라 스토리의 구도 그대로다.

사건사고 많은 대한민국의 힐링을 위한 드라마?  

 KBS <아이언맨>의 대본리딩 현장.

KBS <아이언맨>의 대본리딩 현장. ⓒ KBS


그래서 눈여겨 볼 지점은 바로 주홍빈이 화를 내는 대상일 수밖에 없다. '어느 순간 후각이 발달하고 초인적인 능력이 생겼다'는 설정은 드라마 전체의 톤만 무리 없이 조절하면 그만이다. 판타지 코믹 멜로 장르라고 우긴다면, 그렇게 설정을 가져간 채 이야기의 세기를 다듬는다면 큰 무리도 없을 것이다. 한국 시청자들과 관객들은 이미 '판타지 장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렇다면, 초능력의 연원인 화를 어떻게 푸느냐가 관건일 터. 여기서 불길한 것은 안하무인 주홍빈의 상처가 개인적인 과거사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리라. 첫사랑을 실패로 돌아가게 만든, 자신을 옥죄어온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과연 어떻게, 어느 지점으로 분출될 것인가 하는 지향점 말이다.

제작발표회 당시 김용수 PD는 김완규 작가가 <아이언맨>을 구체화시킨 계기로 세월호 사건을 언급하며, "각종 사건과 사고로 인해 상처를 안고 있는 대중들에게 치유가 될 수 있는 드라마"를 선보이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경쾌한 드라마로 위안을 주겠다는 의도야 특별한 것도 없다. 힐링을 표방한 작품들이야 지금도 차고 넘친다. 그렇다면 그 상처와 분노를 대변하는 주홍빈, 심지어 초능력을 갖게 된 주홍빈이 그 힘을 어디에 쓰는가 하는 점이야말로 이 드라마의 제작의도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될 것이다.

설마, 상처 받은 남자 주홍빈이 손세동을 만나 변화된다는 빤한 과정에 매달리지는 않을 터. "큰 힘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메시지를 간과해서는 곤란하다. 더욱이, 사건 사고 많고 분노를 참기 힘든 현 시대에서 '힐링'을 표방한 드라마라면 더더욱 소재주의에 빠져서는 곤란하다. '우연'하게 생긴 초능력을 가지게 된 주홍빈의 분노와 힐링은 과연 동시대성을 담보해 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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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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