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야간비행>의 포스터.

영화 <야간비행>의 포스터. ⓒ 시네마달

누구나 겪었을, 혹은 겪게 되거나 현재진행형으로 지나치고 있을 어느 순간. 청소년기를 다루는 드라마나 영화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아마도 가장 격변의 시기이자 누군가에게는 추억이 가득한 한때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야기를 담아낼 공간과 소재가 무궁무진한 것이 10대 아니던가.

이송희일 감독의 신작 <야간비행>도 그렇다. 1등급 성적의 우등생 용주(곽시양 분)는 서울대 진학을 꿈꾸고, 그와 절친한 기택(최준하 분)은 만화를 즐겨본다. 두 사람과 중학생 때부터 알고 지낸 기웅(이재준 분)은 교내의 '일진' 중에서도 우두머리가 된다. 각각 다른 성격과 모습의 주인공들은 오늘날 학교에서, 그리고 지나간 우리의 옛 기억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인물들과도 흡사하다.

이야기의 갈등이 시작되는 부분은, 기택이 기웅의 패거리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면서부터다. 그는 수시로 불려다니며 '빵셔틀'을 하고 '삥'을 뜯긴다. 용주는 적극적으로 기택을 보호하려고 애쓰지만 혼자서는 역부족이다. 기웅은 그저 방관할 뿐, 직접 폭력에 가담하지도, 도움을 주지도 않는다.

그런 와중에 용주는 자신의 정체성을 이유로 갈등한다. 타인의 편견 어린 시선이 두려워서 차마 드러내지 못하지만, 스스로 어쩌지 못하는 사이에 기웅을 향한 관심은 커져만 간다. 기웅은 이마저도 알면서 내심 먼저 다가가거나 멀어지지 않고 지켜보는 자세로 서 있을 따름이다.

그렇게 셋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삶을 살아간다. 매일 아침 학교에 가고, 나름의 고민으로 괴로워하고, 그 안에서 탈출구를 찾으려고 애쓴다. 용주는 자신의 대학진학과 사랑을, 기택은 왕따로부터 벗어나고자, 기웅은 어릴적 헤어진 아버지를 찾아서 헤맨다. 누구나 그러한 것처럼, 그들도 성장통에 아파하고 흔들리면서 방황한다.

돋보이는 영상미, 무게감 있는 각본

 영화 <야간비행>의 한 장면. 잘 짜인 각본과 감성 표현뿐 아니라 영상미도 돋보인다.

영화 <야간비행>의 한 장면. 잘 짜인 각본과 감성 표현뿐 아니라 영상미도 돋보인다. ⓒ 시네마달


<야간비행>에서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뛰어난 영상미다. 노을을 배경으로 한 자전거 질주, 건물 옥상에서 조망하는 서울의 한 주택가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세계를 만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감독이 스크린에 펼쳐놓은 장면들은 줄거리에 적절히 어울리면서 주인공들이 겪는 아찔한 상황으로 관객을 인도한다. 영화를 감상하다 보면, 아직은 많은 것들이 새롭기에 싱긋한 10대의 그 시절로 돌아간 착각마저 든다.

철로를 따라 흘러가는 주인공의 동선, 가을 들판과 어우러지는 하늘은 아름다우면서도 가상의 공간이라는 느낌보다 현실의 풍경을 최대한 미적으로 살려낸 결과물 같다. 상영시간 내내 한국의 일상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모두 담아내려는 듯이, 카메라는 밤의 어두운 뒷골목이나 철거된 건물의 어느 귀퉁이조차 쉽게 흘려보내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히 시각적인 효과로 청소년기를 미화하거나 과거에 향수를 느끼는 관객을 대리만족시키는 선에서 그치지 않는다.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한 등장인물과 관객의 심정을 중력처럼 다시 끌어내리는 것은 다름 아닌 각본의 무게감이다. 지나칠 정도로 화려하게 인물과 사건을 치장하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에 걸쳐 다양한 각도로 여러 인물을 비추면서 천천히 차곡차곡 이야기를 완성해간다.

인물 간의 감정표현이 적절한 것도 영화의 매력으로 작용한다. 기웅에 대한 마음이 커져가면서 정체성을 고민하는 용주의 심정, 부당해고 된 이후 감옥에 간 아버지를 찾으며 괴로워하는 기웅, 왕따 당하며 멀어지는 친구를 바라보고 무너지는 기택, 아들의 고백에 "남들과 다르다고 해도 넌 내 아들이야"라고 다독여주는 용주의 엄마까지. 이렇듯 영상미와 더불어 밀도높은 감정이 섬세하게 드러난 장면이야말로 영화의 백미라고 하겠다.

고증을 통해 사실적으로 표현한 학교폭력 실태

 영화 <야간비행>의 한 장면. 고등학생의 삶을 소재로 하면서, 점점 더 심해지는 학교폭력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다.

영화 <야간비행>의 한 장면. 고등학생의 삶을 소재로 하면서, 점점 더 심해지는 학교폭력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다. ⓒ 시네마달


학교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야간비행>은 2014년 청소년들이 겪는 일상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학교에서 성적을 최우선으로 강요당하는 현실은 "친구 사귈 시간이 어딨냐. 공부해야지"라고 충고 아닌 충고를 하는 극중 담임선생의 대사로 압축된다. 게다가 이 대사는 "친구가 따(집단따돌림, 왕따) 당해요, 선생님"이라는 주인공의 조심스러운 폭로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렇게 어른들마저 쉬쉬하는 와중에 아이들은 강자와 약자로 나뉘어 복잡한 관계로 얽힌다. 무관심과 방치 속에서 갈등은 점점 깊어만 간다. 소외된 이는 돈을 갈취당하고 놀림을 받으면서도 악랄한 손길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영화 속의 학교는, 학생에 대한 강제력은 강하게 휘두르면서도 학생들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무기력한 시스템을 너무나도 쉽게 드러낸다. 그리고 이는 잔인하리만치 이기적인 어른들의 세계와도 닮아 있다. 타인의 고통을 무시하는 사이에 세워진, 비뚤어진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 말이다.

또한 이 지점에서 드러나는 <야간비행>의 미덕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도로 주인공의 성격을 단순화하며 관객의 분노를 그저 일순간 소비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학교에서 일진으로 군림하는 인물의 과거, 그리고 왕따를 당하던 인물의 변화과정을 그려내는 장면은 다소 충격적이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악순환이 물고 물리면서, 왕따의 수렁에서 벗어나려면 또 다른 가해자가 되거나 동참해야만 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독은 직접 왕따들의 비공개 커뮤니티를 찾아다니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노력했다고 '관객과의 대화'에서 발언한 바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설정들, 예를 들면 일진에게 주먹질을 당하고 점수를 외쳐야 하는 '인간 펀치머신'이나 피해학생이 심부름센터 직원을 고용하여 복수하는 장면은 실제 사례를 소재로 삼았다고 한다. 그런 만큼 영화에서는 청소년 문제에 대한 조심스러우면서도 사실적인 접근법이 눈에 띈다.

장르에 국한되지 않은 슬픔과 위로가 담긴 영화

 영화 <야간비행>의 한 장면. 다양한 인물들의 시선을 통해 장르에 국한되지 않은 감정을 잘 표현해냈다.

영화 <야간비행>의 한 장면. 다양한 인물들의 시선을 통해 장르에 국한되지 않은 감정을 잘 표현해냈다. ⓒ 시네마달


영화가 다루는 사안은 왕따와 괴롭힘뿐만 아니다. 학교의 테두리 안에서 주인공들이 겪는 일들은 학생들의 고뇌와 더불어 오늘날 한국 사회의 단면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다.

기웅의 아버지는 회사로부터 부당해고를 당하고 이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옥살이를 한 인물이다. 그를 찾기 위해 기웅은 방황하고, 학교생활보다 알바에 전전하며 생계를 걱정하는 신세다. 용주의 엄마는 자격증 시험에서 매번 떨어지고, 용주는 진학을 고민하며 그의 성적을 질투하는 반장의 괴롭힘에도 맞서야 한다.

이제는 그저 서울의 익숙한 모습 중 하나처럼 자리잡은 '부당해고 농성장'도 영화의 배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약자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은 학교 바깥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영화 <야간비행>은 청소년기 성장드라마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각박한 현실이 만든 사회구조의 문제를 다룬 영화이기도 하다. 또한 용주와 기웅의 관계를 중심으로 본다면 한 편의 진솔한 멜로영화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주목할 점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내면에 공통적으로 '결핍'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역설적인 표현이지만 그들은 모두 털어내지 못한 '결핍'의 '존재'로 힘들어 하고 아파하며 살아간다. 이런 점까지도 현실의 우리들과 거울을 들여다보듯 닮아있다. 영화는 다양한 인물의 시선을 통해서, 많은 삶과 폭넓은 감정을 퍼즐처럼 엮어내며 장르에 국한되지 않은 슬픔과 위로를 담아내고 있다.

바야흐로 1등만 하면 수단은 아무래도 괜찮다는 '성적 만능주의'와, 다른 점을 틀리다며 차별하는 '편견', 자신만 챙기려는 '이기주의'가 팽배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 21세기 한국의 현주소다. 그 안에서 세워지고 운영되는 학교도 결국 예외는 아니다.

이런 흐름은 영화 속이건 현실이건 마찬가지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보고 알아가는 세상이 이리 잔인할진데, 그들이 만들어갈 다음 세대의 한국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기대보다 우려가 크다면, 분명 우리의 교육현실이 잘못된 상태라는 반증이 아닐까?

신인에 가까운 배우들, 여유롭지 못한 제작환경에서도 '올해의 한국영화'라 불릴 만한 작품을 만들어낸 이송희일 감독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더불어 이 영화로 청소년 문제에 대한 관심이, 지금까지 우리의 무관심이 만들어낸 악습의 사슬을 거뜬히 끊어낼 정도로 커졌으면 싶다. 그것이야말로 감독의 의도이자 어두운 밤하늘 같은 현실을 날아오르려는, 이 땅의 많은 학생들의 '야간비행'을 밝혀주는 빛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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