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프라이드>에서 실비아를 연기하는 김지현

연극 <프라이드>에서 실비아를 연기하는 김지현 ⓒ 연극열전


평행이론처럼 두 시대를 관통하는 연극이 있다. <프라이드>는 1958년과 2014년이라는 두 시대 가운데서 올리버와 필립이라는 두 남자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연극이다. 두 남자 사이에서 여성인 실비아는 부수적인 캐릭터로 전락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렇지 않다.

실비아는 올리버의 소울 메이트가 되어준다. 남편 필립의 성적인 취향 때문에 굉장히 힘들 법도 하건만 진실한 삶을 위해 큰 결단을 내린다. 올리버와 필립이라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이야기의 중심축을 잃지 않는 자주적인 여성 실비아를 연기하는 배우 김지현을 만났다.

- 많은 작품에서 여성 캐릭터는 비중이 크지 않다. 하지만 <프라이드>는 여성 캐릭터 실비아의 비중이 다른 작품에 비해 큰 편이다.
"2막에는 필립보다 실비아가 많이 나오지 않는가.(웃음) 대본을 처음 봤을 때, 1950년대와 21세기의 두 실비아를 연기한다는 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각 시대의 실비아는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행복에 다다르는 지점이 다르다. 두 남자의 사랑이 주를 이루지만 실비아의 상황은 연기적으로 충분히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 세 시간에 가까운 공연이라 대본이 전화번호부 반 권 분량이라고 하더라.
"대본을 빨리 외우는 편이다. 배우마다 대사를 암기하는 스타일이 다른데, 나는 대사를 그림으로 찍어내듯이 이미지로 형상화해서 외운다. <프라이드>의 대사는 다른 작품에 비해 늦게 외웠다.(웃음) 초연이라 대사를 집어넣거나 뺄 부분은 빼면서 대사가 입에 잘 붙지 않아서인 것 같다. 막판에는 어렵게 외운 대사를 연극에 넣지 않아서 아쉽기도 했다."

 연극 <프라이드>의 한 장면

연극 <프라이드>의 한 장면 ⓒ 연극열전


- 1958년의 실비아와 2014년의 실비아는 어떻게 다른가.
"가장 큰 차이점은 행복한가 그렇지 않은가의 차이다. 1958년의 실비아는 사랑하는 남편과 행복을 누리고 싶어한다. 하지만 남편을 위해 남편의 곁을 떠난다. 마지막에 실비아가 가방을 집어 들고 결단을 내리는 장면이 있다. 요즘 공연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그때 실비아는 그렇게까지 절망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현대의 실비아는 1958년의 실비아에 비해 행복한 게 맞다. 공연하면 할수록 실비아가 많이 행복하다는 게 느껴진다. 다른 사람의 고민과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는 사람이라 행복으로 가득 찬 여자라는 게 연기할 때마다 느껴진다. 실비아가 행복해하는 기운이 필립과 올리버 모두에게 전해질만큼 강렬하다."

- 헤어지는 연기를 하면서도 행복하다니. 아이러니 아닌가.
"<번지점프를 하다>가 비슷하지 않을까. 마지막에 죽음을 선택하지만 다음 생에서는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것 아닌가. 태희는 교통사고로 인우와 헤어졌지만 환생해서 인우 곁을 다시 왔고, 다음 생에서도 다시 만나 행복할 것 같다."

- 실비아와 올리버는 동성 친구 같다. 실비아는 올리버를 도와주려고 무척 애를 쓴다.
"둘은 잘 맞는 친구다. 실비아는 이타심이 많고, 약자나 소외된 사람을 보면 그들을 보듬어주고 대변해주고 싶어 하는 여성이다. 일상에서도 유독 이야기가 잘 통하는 친구가 있듯, 실비아와 올리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야기가 서로 잘 통하는 친구다.

실비아는 동성연애자냐 아니냐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다. 올리버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사람인지를 먼저 고려하는 사람이다. 실비아는 올리버에게 '너는 좋은 사람이고 소중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올리버가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걸 깨닫지 못하고 갈팡질팡할 때 곁에서 힘이 되어주고 싶어서다. 올리버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지만 그걸 알지 못해서 실비아가 옆에서 도와줄 수밖에 없다."

 배우 김지현

배우 김지현 ⓒ 연극열전


-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에 대한 벽은 어느 정도라고 보는 편인가.
"케이블 방송을 보면 동성애에 관해해 이야기할 정도로, 그리고 동성애에 대해 '그럴 수도 있지'하고 생각하는 수준에까지 다다랐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아직은 장벽이 높다고 생각한다. 실비아를 연기하면서 동성애에 대한 편견으로 필립과 올리버를 바라보지 않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실비아는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관객에게 '동성애자를 무조건 이해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강요하기보다 동성애자에 대한 시선의 폭이 넓어지게 하는 게 실비아의 몫이다. 그러려면 동성애자라는 정체성 이전에 필립과 올리버가 어떤 사람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동성애자라는 편견이 없이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실비아를 통해 보여주고 싶다."

김지현 프라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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