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IDF 2014' 공식 포스터.

▲ 'EIDF 2014' 공식 포스터. ⓒ EBS


EBS 국제다큐영화제 2014(이하 'EIDF 2014'), 2004년 8월 시작된 이래 10년 째 그 자리를 조용하게 지키고 있는, '소리 소문 없이 강한' 영화제가 지난 25일 다시 막을 열었다. 드라마나 영화가 시청률을 말하고, 관객 수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이, 주로 그것이 가진 콘텐츠에 눈과 귀를 모으게 만드는 영화제가 있음은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풍성한 다큐의 바다에 빠질 수 있는 행운, 정신의 고양은 덤

EIDF 2014는 오는 31일까지 온·오프라인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통해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채식주의자의 고기 굽는 법>, 관계의 지속에 대한 깊은 철학을 다룬 <122번의 결혼>, 노년의 여성들을 통해 삶의 참된 가치를 보여주는 <은발의 패셔니스타>, 음악이 치매노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다룬 <그 노래를 기억하세요?> 등, 소재도 무궁무진하다.

작품들은 시리아 내전, 에이즈, 탄생, 가족 관계, 죽음 등, 생로병사에 얽힌 문제들을 고루 다루고 있어 때로 극한의 갈등 상황이 연출되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담담한 톤으로 주제를 드러내 우리 스스로 주변의 문제들을 조용히 돌아보게 만든다.

의도된 동선이 아니고, 미리 계획된 대사도 아니며, 상상력의 산물인 시나리오의 역할도 미미한, 다큐멘터리 영화의 생명력은 그 어느 것보다 뛰어나다. 우리는 거실이나 혹은 영화관에 앉아 세계 곳곳 사람들의 생각, 행동 등을 눈여겨보고, 세계 유수의 박물관의 재탄생, 내전의 아픔과 그 고통스러운 치유 과정을 지켜보며 생각의 깊이를 다진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풍성한 소재의 다큐멘터리 잔치, 매년 열리는 EIDF에 동참하는 기회를 가진 관객들은 어찌 보면 행운아다. 엄청난 홍보를 하는 것도 아니어서 자칫하면 그냥 흘려보낼 수도 있는, 그러나 그 어느 것들보다 높은 밀도와 감동적 내용을 자랑하는 작품들을 듣고 볼 수 있다는 것에는 '행운'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크게 무리는 아니지 싶다.

직접적으로 설득하는 다큐, 사실이 가진 원초적인 힘

EIDF 2014   <마지막 인형극>의 한 장면.

▲ EIDF 2014 <마지막 인형극>의 한 장면. ⓒ EBS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실제 그것을 늘 즐기는 이들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철저히 사실에 기반을 둔, 현실의 명암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는 다큐멘터리는 때로 받아들이기 매우 귀찮거나 버겁게 느껴질 수 있다.

우리의 주변의 이야기들은 끝없이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져왔다. 우리가 허구로 여기며 즐기는 것들은 대부분 현실에 기반을 둔 것들이지만, 같은 내용의 것들 중 다큐멘터리를 볼 것이냐, 아니면 적절히 각색된 것들을 볼 것이냐를 묻는다면 아마도 후자를 선택하는 쪽이 훨씬 많지 않을까. 세계대전을 주제로 하더라도, 그 적나라한 참상보다는 그 속에서 피어난 로맨스가 더욱 선호되곤 한다. 낭만과 환상이 배제된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가 아무리 실제와 비슷하게 꾸며져 있더라도, 결코 실제 상황이 주는 '날것' 그대로의 생동감과 생명력을 흉내 내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그 울림은 허구의 그것과는 비길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다큐멘터리는 그 어떤 것보다 직접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우리를 설득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그것이 완곡하건 강경하건,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속의 통찰 가득한 메시지는 우리의 폐부를 한껏 파고든다. '사실'이 가진 원초적 힘이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작가인 루이 아라공은 영화의 탄생에 즈음하여 "나의 친구들이여, 아편과 온갖 타락과 달콤한 술이여, 너희들의 시대는 이제 지났다. 우리 앞에 영화가 태어나고 있으니까"라고 읊은 바 있다. 유희의 수단으로서 그토록 매혹적인 장르인 영화. 하지만 그것이 다큐멘터리라는 이름을 다는 순간, 아픈 현실은 더욱 뼈저린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다큐멘터리를 마주한다. 날것 그대로의 감동을 세상의 많은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그리고 그 가치를 가슴 깊이 새기기 위해.

덧붙이는 글 기자의 개인블로그(http://blog.naver.com/han08101.do)에 중복 게재하였습니다.
다큐멘터리 EIDF EBS 국제다큐영화제 채식주의자의 고기 굽는 법 122번의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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