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중동 민주화 바람을 타고 시작된 시리아의 민주화 시위도 처음엔 소규모의 평화적 움직임이었다. 학생들은 튀니지와 이집트의 구호를 벽에 써놓았을 뿐인데, 잡혀가서 고문을 당하고, 이에 시민들이 석방을 요구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그런 국민들의 평화적 시위에 정부는 군을 동원했고, 4월 이후 전국적으로 시위대에 대한 발포가 이루어 졌다. 탱크가 주민들이 사는 지역에 진입하여 발포했고 5월 중순 이후 사망자는 1000명을 넘겨 버렸다. 결국 공분한 시민들과 군의 폭력적 진압에 반기를 든 군인들이 탈영하면서 비폭력적 저항은 전 국민적 폭력적 저항, 내전으로 변화되었다. 시위의 발원지 데라를 비롯한, 홈즈, 다카스커스, 베니야스, 하마 등이 반정부 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2014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가 현재 세계에서 가장 '희망'을 찾아보기 힘든 시리아에서 '희망'을 향해 몸부림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두 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바로 탈랄 덜키 감독의 <홈스는 불타고 있다>와 조 피스카텔라 감독의 < ID: 시카고 걸 >이다.

시카고에서 SNS로 시리아 상황 알린 대학생 알라

 < ID: 시카고 걸 >의 한 장면.

< ID: 시카고 걸 >의 한 장면. ⓒ EIDF


두 영화 모두 시리아 반정부 운동에 참가한 젊은이들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들 사이의 지리적 간극은 크다. < ID: 시카고 걸 >은 시카고에 사는 시리아 출신의 대학생 알라의 시선에 담긴 시리아 내전을 다룬다.

19살의 알라는 비민주적인 시리아가 싫어 미국으로 이민 온 가정의 딸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살고 있어도 자신이 시리아인이라는 정체성을 져버리지 않은 그녀는 만리타국 미국에서나마 시리아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자 한다.

그녀가 택한 방법은 가장 현대적인 문명의 이기인 핸드폰과 컴퓨터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시리아에서 반정부 활동을 벌이고 있는 활동가들의 소식을 전하고, 그들 간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또한 자신을 리트윗하는 전 세계의 이웃들에게 시리아의 현 상황을 전달하고자 한다.

그런 알라에게는 소중한 이웃들이 있다. 그녀 또래의 젊은이들로 시리아에서, 혹은 그녀처럼 시리아에 살지 않지만 시리아의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는 젊은이들이다. 일면식도 없는 그들이 지금 현재 그녀의 가장 친한 이웃들이고, 언젠가 그들과 함께 시리아를 방문하는 것이 그녀의 버킷리스트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시리아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턱이 부서져 형체조차 보존하지 못한 채 돌아가신 아버님의 유언을 따라 민주주의 도정에는 참여하지만 총을 들지 않은 채 시리아의 현실을 미디어를 통해 전달하려 했던 친구는 그 사실을 전하려 했다는 이유만으로 저격의 대상이 되어 숨을 거뒀다. 또한 그처럼 미디어 운동에 참여했던 시리아의 친구는 자신이 전하는 소식의 의미를 회의한 채 결국 무기를 든다.

알라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SNS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시리아의 소식을 전한다는 사명감은 시리아 내전이 깊어질수록 회의를 낳는다. 사람들이 안다는 것과 시리아 내전의 승패는 정비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친구들이 목숨을 걸고 찍고, 자신이 올린 유튜브의 동영상이 과연 어떤 힘을 가질 수 있는가.

다큐의 마지막, 알라도 그의 아버지와 함께 시리아 행을 택한다. 아직 무기를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SNS로 소식을 전하는 소극적 참여에서 조금 더 나아가 조국의 반정부군이 필요로 하는 각종 약품 등을 전하는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향한 것이다. 그것이 그녀가 택한 다음의 선택이다.

축구 유망주에서 총을 든 반정부군이 된 바셋

 <홈스는 불타고 있다>의 한 장면.

<홈스는 불타고 있다>의 한 장면. ⓒ EIDF


7,80년대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젊은이들에게 선택의 여지가 크지 않았듯이, 내전에 휩싸인 시리아에서도 역시 젊은이들의 선택에는 여지가 없다. 촉망받던 국가대표 골키퍼 바셋은 시위대에 참여하고, 그의 인지도는 곧 그를 시위대의 선두에 세운다. 그는 시위대를 이끌며 그만의 열정과 노래로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그런 그를 미디어 활동가인 오사마가 담는다. 2014년 선댄스 영화제 그랑프리를 받은 <홈스는 불타고 있다>이다.

하지만 시리아의 상황은 젊은 바셋을 그저 시위대의 선봉으로만 놓아두지 않는다. 정부군은 무차별 발포를 하고, 그 과정에서 그의 친구들과 친지들이 끊임없이 숨을 거둔다. 그들이 사는 홈스는 저항의 근거지가 되어 정부군으로부터 급습당하고, 반정부 시위대는 점점 고립된다.

결국 노래를 통해 시위를 선동하던 바셋은 총을 든다. < ID: 시카고 걸 >에서 카메라를 들었던 알라의 친구가 그랬던 것처럼. 탱크까지 동원하여 무차별 공습을 하는 정부군에, 그들의 평화 시위는 너무 무력하다. 정부군과의 대치, 정부군은 홈스의 시민들을 소개시키고, 반정부군을 고립시켜 진압하려 하지만, 바셋을 포함한 반정부군들은 정부군의 폭격으로 허물어진 집과 집 사이의 벽들 사이로 도망 다니며 게릴라식의 저항 활동을 펼친다.

하지만 결국 홈스는 고립되고, 지원을 위해 외곽으로 나갔던 바셋은 홈스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다. 정부군의 고립보다도 힘든 건, 바깥사람들의 패배감이다. 하지만 그와 함께 했던 벗들을 모두 잃은 바셋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다. 심지어 그를 쫓으며 그의 활동을 기록하던 오사마조차 정부군에 잡혀 행방이 묘연하다.

다큐의 마지막, 바셋은 그의 선택을 따른 탈출 군인들과 함께 홈스를 향한다. 기약할 수 없는 길이다. 한때 그가 장난스레 흥겹게 불러제꼈던 '순례자가 될게요'라는 노래가 마치 그의 미리 불린 장송곡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한때는 미래가 기대가 되는 축구 유망주였지만 폭격을 맞아 더 이상 축구를 할 수 없게 된 바셋. 그런 그에게 친구는 대신 코치가 되라고 말한다. 하지만 바셋은 고개를 젓는다. 그저 이 모든 상황이 종료된 후, 대장장이나 하고 평범하게 살 수 있으면 그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그의 소망은 힘이 없다. 그의 곁에서 수시로 죽어가는 친구들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더 이상 버틸 힘은 없고 사람들은 패배를 실감하지만, 바셋은 죽어간 사람들 때문에 멈출 수 없다. 마지막 다시 홈스로 돌아가는 상황에서도 노래를 불렀지만, 혼자 남겨진 그는 종종 고개를 떨어뜨린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는 지치지 않고 다시 싸우기 위해 일어난다.

비록 SNS를 통해서였지만 친구였던 사람들이 사라졌고, 촉망받던 엘리트 청년이 결국 무기를 들었다. 미국에서 중산층 가정의 번듯한 대학생으로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알라의 선택 역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의 미래는 기약할 길 없다. 대신 그들은 끝나지 않는 내전에 휩싸인 시리아의 희망을 싹틔운다. 이것이 '희망'을 주제로 한 EIDF에 이 작품들이 초대받은 이유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BS국제다큐영화제 시리아 홈스는 불타고 있다 ID: 시카고 걸 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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