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초능력자> 등에서 연기자 활동을 했고, 최근 JTBC <비정상회담>에 출연 중인 에네스 카야.

영화 <초능력자> 등에서 연기자 활동을 했고, 최근 JTBC <비정상회담>에 출연 중인 에네스 카야. ⓒ 에네스 카야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 한국에 온 지 12년. 대학 교육만 마치고 고국 터키로 돌아가려고 했던 그가 한국에 정착하고 있다. 아니 발목이 잡혔다. 어느새 터키인 에네스 카야는 한국 대중들에게 익숙한 방송인이 됐기 때문이다. 훤칠한 키에 밝은 갈색 눈을 가진 그가 "혼전 동거 안 돼! 부모님 허락 없는 결혼 안 돼!"를 외칠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들지만, 친근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 나이로 서른하나인 에네스 카야가 JTBC 예능 <비정상회담>을 통해 재조명 받고 있다. 4년 전 영화 <초능력자> 등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고, 이후 종종 방송을 통해 대중과 만났지만 예능을 통해 더 주목받기 시작했다. 함께 영화에 출연했던 강동원을 향해 "군대 다녀온 후 동원이 형이 연락이 잘 안 된다"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모습에서, "아버지, 어머니를 터키에 이민 보내고 왠지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 사는 느낌"이라고 말하는 것에서 한국과 사람에 대한 깊은 속정을 엿볼 수 있었다.  

수년의 한국 연예계를 경험하며 산전수전 다 겪었을 에네스 카야를 만났다. 우리나라 방송 현실에 대한 생각은 이미 관련기사('흑샘, 백샘, 터키유생 "우린 신기한 사람이 아냐"')에서 정리했으니 참고하자. 이번 인터뷰는 에네스만의 생각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비정상회담> 정말 이런 예능은 처음이야"

- 여러 예능이나 교양 프로에 출연했었는데, <비정상회담> 섭외 요청이 왔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에이전시를 통해 연락이 왔는데 방송국 이름도, 내용도 잘 모르고 외국인을 소개하는 프로라더라. 당시 영화 촬영 중이기도 했고, 토크쇼야 예전에도 했기에 건성으로 한 번 듣고 생각 않고 있었다. 신선함이 없지 않나. 사람들도 '쟤 또 나왔네?' 이럴 거 같아 부담이었다. 그러다 다시 연락이 와서 PD님, 작가님과 만났다. 출연하기로 했을 때도 별 기대 없었다. 외국인들 모아놓은 토크쇼로만 알았지, <비정상회담>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작가님들이 12명이나 되는데 내게 한국을 어찌 생각하는지 등을 묻더라. 그래서 나도 물었다. 이 프로가 얼마나 오래 갈 거 같은지 말이다. 색다른 걸 찾지 않으면 오래 못 갈 것이라는 말도 했다. 사실 맞지 않나. 한국에서 10년째 비슷한 프로들이 나오고 있고, 추석이나 설날이면 특집이라면서 외국인들 모아놓지 않나. 그렇게 가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취지였다. 사실 한국어 잘하는 외국인이야 이젠 흔하기도 하고."

- 그랬던 프로가 말 그대로 '빵' 터지지 않았나. 첫 방송 이후 시청률도 상승하고 있고.
"지금은 그런 질문을 PD님이나 작가님에게 한 게 후회되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웃음) 너무 솔직했던 거 같다. <비정상회담>엔 분명 예전 프로그램과 다른 게 있다. 토론을 하면서 웃음 포인트도 찾아냈고, 다들 재밌게 하고 있다. 나도 방송활동 한 지 7년이 됐는데 지금 같은 분위기는 처음이다. 그냥 가족 같다. 서로 다른 생각으로 스튜디오에서 부딪히다가도 대기실에서는 포옹하고 안부 묻고 기분 좋게 만나고 헤어진다."

- 그간 없던 별명도 생겼다. '조상님'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특히 '터키 유생'이란 별명이 있다.
"(크게 웃으며) 사실 기분이 되게 좋다. 학교 다닐 때도 평생 별명이 없었다. 이런 별명은 상상도 못했다. 처음엔 그 뜻을 몰랐다. 단순히 내가 보수적이라 유생이란 별명이 생긴 거 같진 않다. 한국에서 굉장히 중요한 브랜드지 않나. 조선 시대를 뒷받침하던 지식인이기도 하고. 그런 면에서 감사하고 기분 좋다."

 JTBC <비정상회담>의 한 장면.

JTBC <비정상회담>의 한 장면. ⓒ JTBC


- 보수적 발언으로 에네스를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지 않나? 사실 한국에서 찾기 힘든 건전한 보수성이기도 하다. 보수라는 말이 정치권 때문에 다소 왜곡돼서 문제지.
"보수적이라지만 내가 꽉 막힌 사람은 아니다. 그리고 세상이 너무 개방된 거 같다(웃음). 내가 마이크를 잡으면 불안하다고 하는 분도 있다. 에네스는 독설가라고 하기도 하고. 아마 외국인이라 용서되는 면이 있는 거 같다.

무조건 보수라며 출연자들과 싸우는 게 아니라 지킬 건 지키면서 할 말은 하는 게 내 생각이고 의무기도 하다. SNS를 통해서 여러 의견이 온다. 본래 개방적이었는데 내 말을 듣고 건전한 보수를 만나고 싶다는 사람도 있고, 엄마가 날 신랑 삼고 싶어 한다고 하시는 분도 있다.(웃음)

원래 한국 사람은 제가 말하는 대로 그런 보수성이 강했는데 사회 변화가 너무 빠른 거 같다. 어쩌면 줄리안이 더 설득력 있는 시대기도 하다. <비정상회담>의 재미가 그거다. 누가 공격하면 또 누가 수비하고. 방송 끝나면 서로 사과할 때도 있다. 중간에 말 잘라 먹어서 미안하다! 출연자들은 마이크 달면 적이지만 떼면 형제다. 줄리안이랑은 세 살 차이밖에 안 나는데 친하다. 가끔 고집을 부릴 때가 있는데 오히려 그런 면이 나랑 비슷하다."

한국 이미지 좋게 하는 프로그램? "NO! 우린 솔직하다"

 에네스 카야

"보수적이라지만 내가 꽉 막힌 사람은 아니다. 그리고 세상이 너무 개방된 거 같다(웃음). 제가 마이크를 잡으면 불안하다고 하는 분도 있다. 에네스는 독설가라고 하기도 하고. 아마 외국인이라 용서되는 면이 있는 거 같다. 무조건 보수라며 출연자들과 싸우는 게 아니라 지킬 건 지키면서 할 말은 하는 게 내 생각이고 의무다." ⓒ JTBC


- 사실 이런 프로가 편집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난번에 논란이 된 한국 서열 문화 방송도 그렇고, '한국 좋아요!'로 끝나는 식이 우려스럽다.
"절대 그런 걱정할 필요가 없다. 지킬 선만 지키면 고의적인 편집은 없는 거 같다. 줄리안도 '회식 문화 싫다'고 다 말하지 않았나. 우리가 얘기하는 건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토론이 될 만한 주제다. 동거나 성교육은 유럽에서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늘 토론거리다. 나 역시 서열문화가 싫다. 하지만 한국에선 문화가 돼버렸다. 그게 문제다. 회식 역시 술을 안 먹으면 친해지기 어려운 분위기가 된 게 문제다."

- 토론주제가 1주일 전에 주어진다고 들었다. 아무래도 토론인만큼 다들 준비를 열심히 할 거 같다. 
"월요일에 주제를 알려주고 인터뷰를 한다. 근데 크게 공부를 하고 그런 건 아니다. 어차피 찬반이고, 대학에서 강의하듯 말하는 건 아니지 않나. 출연자가 11명이니까 상대를 예측할 수 없어서 준비가 좀 어렵다.

- 한국 예능에서 외국인은 일종의 신선함이었다. <비정상회담>이 한 발 더 나갔다고 하지만 이런 흐름에 연예인을 하고 싶어하는 외국인도 많아진 게 사실이다.
"지금까지 방송활동을 하면서 '아싸! 대박쳐야지!' 이런 생각을 한 번도 한 적 없다. 길거리에서 알아보시는 분들이 '에네스가 요즘 대세!'라고 해주실 때마다 난 어색하다. 그냥 일반인이라고 답할 때도 있다. 지금 잘 나간다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나중이 더 힘들지 않을까. 과거를 돌아보며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다. 방송을 통해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생각도 없고.

다들 때가 있다. 지금은 유재석씨가 잘 나간다면 내일은 강호동씨일 수 있다. 또 모레는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욕먹지 않게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다. 로버트 할리씨를 보면 예전에 잘했으니 지금까지 이름이 남아 있는 거 아닌가. 나 역시 꾸준히 방송에 나가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유재석씨 역시 얼마나 오래 활동했나. 그 중에 터진 게 9년이다. 한국 사람도 오래 걸리는데 외국인은 어떤가. 분명 한계가 있다." 

 JTBC <비정상회담> 녹화현장.

JTBC <비정상회담> 촬영 현장. 벨기에 출신의 줄리안, 터키의 에네스 카야, 호주 출신의 다니엘의 모습. ⓒ JTBC


- 한국에서 연예활동이 어렵진 않나. 그간 힘든 과정도 있었다고 들었다.
"방송을 통해서 어려운 건 없었다. 다만 소속사 계약을 두 번했는데 해지 과정이 힘들었다. 큰돈은 아니지만 받을 돈을 못 받고 나왔다. 그때 깨달았다. 외국인으로 연예 활동은 한계가 있으니 마음을 비우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자고 말이다.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 내 분야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만족을 얻을 수 있다. 큰 기대감은 실망만 높인다."

어려웠던 점을 조목조목 전했지만 에네스 카야는 인터뷰 말미에 "한국에서 살게 된 걸 후회한 적은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는 어느새 자연스러운 우리 사회 구성원이 됐다.

반가운 소식은 최근 촬영을 마친 임수정, 유연석 주연의 영화 <은밀한 유혹>에서 에네스 카야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방송 활동 외에 터키 주스 수입 및 유통이라는 본업도 준비 중이다. 할 일은 하면서 건전한 생각으로 대중과 만나려는 그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진 말자. 마음은 누구보다 따뜻한 '형제의 나라' 사람이 아니던가.

에네스 카야 비정상회담 줄리안 터키 타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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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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